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운동(17) / 영국의 존 웨슬리의 성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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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1-10-06 14:04본문
근대 성결한 성령운동의 아버지는 존 웨슬리(John Wesley)이다. 그로부터 감리교가 시작되었고 성결교회도 시작되었다. 그는 자기 인생의 목적은 ‘성결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이었다.
1. 존 웨슬리의 생애
존 웨슬리는 기독교 집안에서 19명의 자녀 중에 15번째로 태어났다(1703-1791년). 그는 6세 때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의 목사관이 화재가 발생하여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이 사건은 훗날 그의 묘비명을 ‘불 속에서 꺼낸 타나 남은 막대기’라고 기록하는 배경이 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영국 고교회의 경건주의 신앙을 이어 받았으며, 어머니 수산나로부터 교육과 청교도의 신앙을 배웠다. 그는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에 들어가 학업과 경건과 도덕성에 모범을 보였다. 그는 1725년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의지적 회심을 하고, 1738년 성령을 체험하는 복음적 회심을 한다. 그는 88세에 하나님을 부르심을 받는다.
2. 존 웨슬리의 신앙과 사역
1) 경건 생활
18세기 영국 사회는 총체적 위기 그 자체였다. 사회는 물론 교회마저도 부패하고 무기력했다. 국교(성공회)나 비국교를 막론하고 영적능력을 잃어버리고 형식주의에 안주한 채 부패한 사회조류에 흘러가고 있었다. 웨슬리는 1725년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하나님께 생애를 드리기로 결심한다. 그는 1729년 신성클럽(Holy Club) 운동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성경과 경건서적을 읽고 옥에 가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들의 엄격한 하루 일과를 보고 사람들은 그들을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불렀다.
2) 모라비안 교도와의 만남
1735년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로 선교 사역을 떠난다. 그는 배 안에서 풍랑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하고 찬송하던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믿음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는 선교사로 조지아에 머무는 동안 작은 신앙공동체를 운영 지도했다. 그가 씨를 뿌린 이 공동체는 미국의 부흥운동에 큰 역할을 감당할 중요한 그루터기가 된다. 그러나 그는 소피아 홉키와의 사랑이 걸림돌이 되어 선교사역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3. 웨슬리의 성령체험과 선교 비전
1) 성령충만의 체험
존 웨슬리는 동생 찰스 웨슬리의 복음적 회심에 자극을 받고, 1738년 5월 24일 저녁 올더스게이트 거리(Aldersgate St.)에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듣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739년 1월 1일에는 페터 레인(Fetter Lane)의 애찬회 겸 철야기도회에서 존 웨슬리는 동생 찰스와 죠지 휫필드 등 60 여명의 동료와 함께 통성 기도를 하는 가운데 다시금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새벽 3시경에 우리가 통성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우리에게 임하여 여러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얼마 후에 우리가 평정을 회복한 뒤에 우리는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주되심을 찬양하였다.”
2) 웨슬리의 성화와 사랑의 완전
그는 말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신다. 성령은 우리가 포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 영에 나타내며, 우리 영은 믿음의 눈과 믿음의 귀를 통해 그 세계를 보고 들으며, 그렇게 열린 영적 인식기관은 더욱더 성령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세계를 감지하면서 그분을 닮아가기를 점점 더 갈망한다. 또한 성령은 모든 측면에서 인간을 새롭게 한다.”
“성령은 구원의 참된 증인으로 우리가 영원한 복락을 누리도록 예정되었음을 확증해주신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아가므로 새롭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에 순응하게 된다. 성화는 인간의 힘이 아닌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수행된다. 성화의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그는 점진적 성화를 말하는데 그는 순간적 성화도 체험하였다. 또한 장성한 아들의 믿음은 사랑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영혼, 다시 말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장년의 믿음이다.
3) 온 세계를 교구로 삼는 비전
1739년 옥외설교를 시작으로 웨슬리는 말을 타고 다니면서 영국 전역,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수많은 섬들을 돌아다니며 설교하였다. 그는 여전히 영국 국교회 소속이었으나 영국 국교회에서는 웨슬리와 그의 메소디스트들을 위험한 열성주의자로 여겨 핍박했다. 그러나 그는 179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52년간 말을 타고 전도여행을 하며 4만 2천 번 이상 설교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존 웨슬리의 기념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다. 하나님은 그 일꾼은 장사하시나 그 사역은 계속하신다.” 존 웨슬리는 메소디스트 운동을 이끌면서 격동의 시기에 피의 혁명이 아니라 신앙 혁명으로 영국을 변화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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