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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패트릭과 콜럼바 > 한상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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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패트릭과 콜럼바 > 한상인 목사




선교사 패트릭과 콜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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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oriell 작성일20-02-24 15:40

본문

로마제국의 서쪽 영토였던 영국에서 태어난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그가 선교한 아일랜드에서 두 세대가 지난 후 콜럼바가 탄생하였다. 그는 왕족이었으나 세상의 왕이 되는 길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스코틀랜드 선교사가 되었다.

 

 

1. 아일랜드 선교사 패트릭

 

 

1) 패트릭(Patrick, 389-461)의 생애

 

 

패트릭은 영국 로마-브리튼의 성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에 해적들에게 잡혀 아일랜드에 노예로 팔렸으나 6년 후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꿈속에서 패트릭은 아일랜드 사람들의거룩한 소년이여 돌아오라라는 간절한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그들의 말을 따라 지긋지긋했던 노예의 땅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그는 노예생활의 고통을 통해서 명목상의 모태신앙으로 부터 진정한 신앙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것이 자기의 사명임을 믿게 되었다.

 

 

43세에 선교를 시작한 패트릭은 30년 후 461317일 아일랜드의 다운패트릭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중세 가장 독보적인 선교사로서 널리 인정받으며, 아일랜드 기독교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됐다. 아일랜드에서는 317일을 세인트패트릭스 데이’(St. Patrick's Day)로 삼고 있다.

 

 

2) 패트릭의 선교 사역

 

 

문명화된 로마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당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에 거주하던 켈트족은 야만인이나 다름없었다. 로마 교회에서는 켈트족에 대한 선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때까지 켈트족은 태양과 땅 등 자연을 숭배하는 드루이드교(Druidism)를 믿었으며, 미신과 마술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패트릭은 아일랜드에서 노예로 지내면서 배운 켈트족의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였다. 그는 그들이 숭배하던 태양을 관통하는 십자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 가운데 원이 있는 켈트 십자가이다. 또한 그는 토끼풀의 세 잎이 하나의 줄기로 되어 있는 것을 비유로 삼위일체를 설명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아르마(Armagh)에서 감독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지방의 왕들과 귀족들에게 보호를 받았고, 그 사회의 모든 계급으로부터 개종자를 얻었다.

 

 

3) 사역의 특징

 

 

패트릭의 저서로서신신앙고백이 있다. 그는 청소년 시절 노예로 팔려가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항상 가슴아파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부끄러워하던 라틴어와 수사학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의 말은 단순하고 감동적이었으며, 용기와 겸손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성경의 인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켈트인들의 성향에 맞춰 무용담과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2.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콜럼바

 

 

1) 콜럼바(Columba, 521-597)의 생애

 

 

콜럼바는 521년 아일랜드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조부는 패트릭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부모는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셌으며 머리도 영민하고 배움의 열정도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아일랜드 고왕(high king)의 가까운 친척이었으므로 왕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종교적인 삶에 더 몰두하였다. 그는 영적 학문적 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클로나드에 있는 피니안에게 가서 공부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인정을 받아 사제로 임명되었고 선교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2) 선교사로서의 헌신과 사역 콜럼바는 그의 스승이 고왕에게 유죄판결을 받음으로 분노하였다. 마침 시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자신의 친척들을 부추겨 고왕을 공격하였고,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3천 명의 희생자를 낸 전쟁의 책임을 통감하고, 아일랜드를 떠

나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56342세의 콜럼바는 자진하여 유형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최소한 전쟁 중에서 죽은 3천명만큼은 전도하고 구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예수님을 본받아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선교지로 떠났다. 그는 스코틀랜드의아이오나섬에 정착하여 그곳에 선교기지를 세웠다. 수도원장으로서 콜럼바는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바위 위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다. 75세의 콜롬바는 주일 이른 아침 평화롭게 사역을 마감하였다. 그는 34년의 사역기간 동안 3천 명의 여러 배가 되는 영혼을 구원하였다고 한다.

 

 

 

 

3) 업적

 

 

콜럼바는 스코틀랜드 아이오나에서 선교사들을 훈련하여 스코틀랜드 동부와 북부로 파송했다. 그는 성경을 사랑한 사람이었으며, 그로 인해 단순하고 성경적이며 직설적인 설교를 하였다. 그의 가장 위대했던 점은 선교의 열정이었으며, 어느 곳에서도 분쟁을 해결하고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시편을 사랑하고 음악에 대한 애호가 남달랐다. 그는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으로노동과 기도와 독서를 강조했다. 그것은 수도원 생활의 핵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종자들의 삶의 지침이었다. 이러한 경건한 삶이 많은 권능의 기적과 예언, 신유의 역사를 나타내었다. 그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켈트족 기독교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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