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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디즘의 어머니 수산나 (1669-1742) > 한국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웨슬리운동의 역사와 사명,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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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디즘의 어머니 수산나 (1669-1742) > 한국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웨슬리운동의 역사와 사명,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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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디즘의 어머니 수산나 (1669-1742)

한국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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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4-06-11 14:57

본문

웨협.jpg

탁월한 청교도 처녀 수산나 

 

수산나 아네슬리(S.Annesley)는 1669년 1월 20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네슬리 박사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 부인은 첫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두번 째 부인이 낳은 자녀 중에 25번째 막내가 수산나이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가 19명의 자녀를 낳은 것은 모친의 다산(多産)을 물려받은 것이다. 만약에 아네슬리 박사가 아이를 24명만 낳았더라면 수산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존 웨슬리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존 웨슬리는 어머니 수산나가 낳은 19명의 자녀 중에 15번째이고 찰스 웨슬리는 18번째이니 만약에 그녀가 아이를 14명만 낳았더라면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엘의 말처럼 자녀가 많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유리하고 복된 일이 아닌가 싶다. 특히 요즘시대 같으면 애국자 중에 최고의 애국자로 칭송 받을 가정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당대에 가장 대표적인 청교도 목사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비국교도 지도자로서 1662년 2,000명의 비국교도 추방 때에 국교회에서 추방되어 많은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수산나의 외조부 존 화이트(J.wite) 박사는 옥스퍼드 출신이요 크롬웰의 청교도 공화국시대에 ‘종교위원회’와 ‘웨스트민스터 신학자 위원회’의 의장으로서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수산나의 어머니는 이와같이 신앙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수산나는 자신의 자녀교육에 어머니를 본받고 또 어머니의 방법을 발전시켜서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경건한 신학의 실험실(어린시절 수산나가 받은 가정교육)

 

수산나의 경건과 지식 특별히 그녀의 영어실력과 성경과 기독교 신학에 관한 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깊고 풍부하고 정확했다. 당시는 여성이 대학에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만약에 그녀가 신학교육을 받았다면 위대한 신학자나 목회자가 되었을 것이다.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의 가정교육 원칙 중에 경건의 원칙이 첫째였고, 둘째는 탁월한 비국교도 학생들과의 대화였으며 이론신학과 실천신학을 배우게 됐다. 셋째 수산나는 비공식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런던의 그래머스쿨(Grammer School) 중·고등학교 수준의 오늘의 대안학교와 같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넷째 수산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수산나가 받은 교육은 독서를 통한 것이었으며 경건의 훈련이었다. 그녀는 아들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신학을 지도하고 소통을 통해서 철저한 경건훈련을 하였다. 18세기 종교개혁의 완성자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탄생은 옥스퍼드의 지성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의 수준 높은 이론지식과 어머니 수산나의 탁월한 실천적 경건훈련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수산나의 가정종교(Family religion)

 

수산나의 자녀교육 정신은 청교도 신앙의 전통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청교도의 가정종교를 철저하게 실천하여 가정을 경건의 실험장으로 만들었으며 수산나는 바로 청교도의 가정종교로 훈련된 완전한 청교도 여성이었다. 청교도 신앙의 가장 중요한 실험장은 바로 가정이었다. 아네슬리 박사는 가정을 잘 훈련된 교회로 만들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으며 리처드 박스터는 기독교신앙의 실천의 장이 가정이며, 이런 의미에서 가정은 하나의 거룩한 “신도회”(society)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존 번연(John Bunyan)은 교회를 가정(Home)과 가족(Family), 또는 ‘신앙의 가족’( the household of faith)의 의미로 이해하였다. 번연은 이상적인 교회를 아름다운 궁전 (The place beautiful)의 의미로 그렸으며, 이러한 교회는 가정이 먼저 가정종교의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청교도에게 가족은 교회의 못자리와 같다. 가정종교는 청교도의 경건의 핵심이다. 청교도 신학자 조셉 알레인은 “당신과 함께 사는 모든 가족을 그리스도 교회가 되게 하고 모든 집을 기도의 집이 되게 하라”고 가르쳤다. 

 

수산나의 부친 아네슬리 박사는 리처드 박스터의 ‘참된 목자’(Refomed Paster)를 자신의 가정에서 실현한 전형적인 청교도 목사였다. 그는 “목사들은  먼저 자신의 가족에 신앙훈련에 집중해야 하고 교인들은 한가족 한가족의 신앙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한 그는 “종교는 가정생활에서 먼저 건실하게 건축되지 아니하면 결코 안전하게 세워지지 않으며, 신앙의 축복과 교회와 국가의 복지와 영광은 전적으로 가정이라는 의무를 얼마만큼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서 인류가 바라는 세상의 개혁(general reforma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박스터는 역설하였다. 수산나는 이와같은 청교도 전통의 가정종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녀는 청교도 전통의 가정종교를 자신의 가정생활과 자녀교육에 그대로 실천하였다. 존 웨슬리는 “가정종교에 관하여”라는 설교와 어머니에게 배운 “가정종교의 중요성에 관하여”라는 설교에서 어머니에게 배운 가정종교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가정생활에 뿌리를 내린 종교만이 진정한 부흥을 이루에 될 것이다. 만일 우리 가정종교에 실패하여 자라나는 세대를 양육하는데 실패한다면 그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부흥은  짧은 시간 내에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욱 중요하다(자녀교육에 대한 수산나의 사명감)

 

수산나는 가난한 엡워스교구 목사의 아내로서 언제나 많은 자녀와 함께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고, 잦은 출산에 몸은 쇠약했으며 예기치 않는 불행을 계속 당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대가족의 생활을 성공적으로 경영해 나갔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허둥대지 않았으며,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으며 가난이나 불운에 밀려 가정을 방치하거나 되는대로 살지 않았다. 그녀는 온갖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일보의 흔들림 없이 강철같은 신앙으로 가정을 잘 훈련된 행복공화국으로, 가장 행복하게 세워진 하나의 작은 교회와 같이 만들어 냈다. 특별히 그녀는  자녀의 영적 양육을 위하여 완벽하고도 모범적인 제도와 규칙을 만들어 냈으며, 자녀의 영적 양육을 위하여 최선의 방책과 가정환경을 준비하였다. 수산나는 리처드 박스터의 <성도의 영원한 안식처>라는 책을 읽고서 자녀의 영적인 복리(welfare)를 위한 깊은 책임감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수산나는 다음과 같은 박스터의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였다. 

 

“어머니들이여 당신들은 아버지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자녀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일찍 자녀가 배울 수 있을 때부터 당신들과 함께 있는 동안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고 돌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자녀의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의 몸을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더 많이 자녀의 영혼의 구원과 복리(welfare)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어머니들은 아버지들보다 천성적으로 훨씬 더 부드러운 애정을 갖고 있는데, 어머니의 부드러운 애정이 연약한 애정이 되어서 자녀를 멸망으로 가도록 내버려두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에게 촉구합니다. 자녀들이 당신들의 품에 있을 때에 가르치고, 훈계하고 감독하여 자녀들을 온전히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될 때까지 자녀들에게 세상의 유혹을 떨어질 수 있는 틈을 결코 내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녀는 1709년에 큰아들 사무엘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 나의 삶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한 가지인데, 그것은 내가 나의 자녀들을 몸으로 낳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처럼  내 자녀들의 영혼을 구원과 행복(welfare)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최선의 도구가 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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