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배우는 사람에게 삶은 늘 새롭습니다
김성진 목사(목회컨설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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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4-03-26 10:46본문
교회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한국교회의 정체와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질적 사역으로의 회귀를 통한 건강한 교회를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2001년 설립되어 23년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교회를 건강하게, 성도를 온전하게’라는 신념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컨설팅연구소(김성진 소장)는 이런 간절한 고민들을 돌아보고, 교회 공동체에 도움이 될 10가지 주제를 선정했다. <편집자 주>
세상은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뉘지 않습니다. 세상은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뉩니다. 배운다는 것은 겸양을 기르고, 낮은 자세를 견지하며, 경청하는 자로서 자신을 반추하는 태도와 자세를 말합니다.
또한 괴테는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배우기 때문에 유능할 수 있으며, 유능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으로 모든 이치를 이해하고 주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책과 위인들이 살아갔던 발자취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갖습니다. 배우는 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마음을 열고 경청합니다.
2500년 전 공자는 제자들에게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세 사람이 걸어가도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로, 장점을 가진 타인을 나의 스승으로 삼아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고치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배움은 우리의 삶입니다. 삶의 깊이와 너비를 더하게 하는 것이 ‘배움’입니다. 그래서 배움이란 지성의 능력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실력이 됩니다.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이며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입니다. 배움을 통해 가르치게 되고 가르침 속에서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배우는 것 ‘배움’ 그 자체가 참으로 좋습니다. 배우는 시간은 자신을 개발하는 시간으로.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앎’을 통해 새로운 사역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오히려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더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배우는 그 순간은 수많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여 때로는 ‘유레카’를 외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 자청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기꺼이 배움의 자리에 나아갈 때, 어김없이 공(空)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으며, 한 가지라도 큰 깨달음과 아이디어를 얻고 돌아옵니다.
귀 기울이면 반드시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정말 탁월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삶의 경륜과 체득화 된 지식을 듣노라면 한편은 기가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나도 저만치라도 따라가야지!’ 하고 다짐하며 다시금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태웁니다. 그러면 어느 날 배운 것들을 내 자신이 말하고 있고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아주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움이 주는 환희’일 것입니다.
배움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배우고 또 배우십시오. 특히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배움의 자리에 머무는 자세로 살아가면 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노년이 되어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도 배움의 자리에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숙해 갑니다. 멈춤이 없는 영적, 지적 성숙을 도모하며 살아가다 주님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이 배움의 종류를 이렇게 분류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 ‘가다 서다 할 수 있는 배움’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도모하며 취미 생활을 위한 배움. 둘째, ‘몰아서 집중해야 하는 배움’으로 독서, 영어, 운동을 말하며 셋째, ‘꾸준히 해야 하는 배움’으로 난이도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배움의 종류에 더하고 싶은 또 하나가 있습니다. 「영혼의 성숙을 위한 배움, 목양과 목회 철학을 위한 배움, 내면의 성숙을 이끄는 배움,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위한 배움, 사람을 이해하고 세워가는 배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배움」들이 영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연륜이 쌓이면 더 이상 상기 유형들의 배움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습니다. 배움은 지속적인 성숙을 이끄는 동력입니다. 배움이 멈추는 순간 성숙이 멈추는데도 말입니다.
배움은 ‘인풋(in-put)’입니다. 탁월한 인생과 사역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웃풋(out-put)’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웃풋은 인풋이 선행조건이 되며, 인생의 인풋은 바로 ‘배움’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배움은 평생을 이어가도 닿을 수 없는, 영원히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배움은 즐거움의 핵심 요소입니다. 남들보다 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고 익히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배워 봐야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또 하나는 배움은 결코 생산성을 만드는 것을 익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장을 위한 배움도 필요하지만, 내면의 성숙과 생각의 폭과 인생철학을 배우고, 목회의 본질과 질적 성숙에 대한 배움. 더 나아가 나와 무관한 것 같은 때로는 내 견해와 상반된 내용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경청하는 배움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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