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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를 알고 행하라”(롬 13:11~14)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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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를 알고 행하라”(롬 13:11~14) > 설교




“이 시기를 알고 행하라”(롬 13:11~14)

양재철 목사(선거관리위원장, 광장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2-03-14 13:4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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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바울은 종말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깨어 신령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즉, 성도는 천국 시민이라서 세상 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삶,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최종 구원이 임박한 줄 알기 때문에 어둠의 일을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시간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시기’란 헬라어로 ‘톤 카이론’, 영어로 직역하면 ‘the present time’. 바로, 현재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단순히 시간 자체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특정한 때’, ‘의미 있는 시간’인 ‘카이로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의미 있는 시간을 확실하게 안다는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의 삶의 모든 공식에 적용되며 가치의 기본입니다. 그렇다고 자본, 지식, 경험, 노력, 능력, 이런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가치가 시간 안에서 새롭게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에는 수평적인 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수직적 특성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과의 관계성에 큰 의미를 두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그 기준은 언제나 현재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재에 매여 살기보다, 미래를 바로 보고 바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는 과거의 경험이나, 혹은 이성적 비판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그 말씀에서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하나님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믿음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남이 생각지 못하는 면을 생각합니다. 남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멀리 보고, 깊이 보고 결정적인 미래를 아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2. 고난을 의미하는 ‘밤’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의 ‘밤이 깊었다.’라는 말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합니다. 

하나는 대부분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이란 의미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밤에 자고 낮에 일하는 습관이 있어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깊은 밤이면 잠에 빠집니다. 

 

또 하나는 아침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밤이 계속 지나면, 결국 아침이 오는데, 바울은 밤이 깊었다고 표현함으로써, 이미 밤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임을 시사합니다.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가장 깊은 밤은 의인의 고난입니다. 

 

위대한 선교사요 탐험가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선교사업에 성공하고 뭇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한창 명성이 높아져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를 칭송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항로를 항해하는 우리의 배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배 밑에 있는 바닥짐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닥짐’이란? 이것은 전문 용어로 ‘밸러스트(ballast)’라고 하는데, 배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배 바닥에 채워 넣은 돌, 물 따위를 가리킵니다. 이 ‘짐’ 때문에 배가 거친 바다 위에서도 중심을 잡게 됩니다. 배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순풍에 돛단 듯이 평화로워 보여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의 무거운 이 ‘바닥짐’ 때문입니다.

 

‘리빙스턴’은 이 이야기와 함께 자기 아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바닥짐이 방탕한 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아들 때문에 애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할 수밖에 없었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희생과 무서운 고통, 그리고 뼈를 깎는 아픔이 마치 배의 바닥짐처럼 깔려 있어 버겁기도 하지만, 이 ‘밸러스트(ballast)’가 거친 바다에서 배의 중심을 잡듯이 우리가 탄 배는 요동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서도 ‘이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우상숭배와 부도덕과 폭력, 헐뜯고 수군수군하는 입, 질투와 시기, 떳떳하지 못한 부끄러운 일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을 낙심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밤은 밤으로 끝나지 않고, 아침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밤의 끝은 동이 트는 새벽으로 연결됩니다. 극단과 끝이라고 하는 이 시간은 새로움의 시작입니다. 인생의 깊은 밤, 인생의 궁극에서 하나님의 아침,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present time”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저 아침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지나면 동쪽 하늘이 다시 훤히 밝아오면서 새벽 별이 떠오르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이 ‘코로나19’라는 어두움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깨어야 합니다. 이제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갑옷은 전쟁할 때, 활이나 창이나 검 같은 무기로 생명을 위협하는 적군의 공격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입습니다.

 

그러면 빛의 갑옷은 무엇입니까? 빛은 어두움과 대조되는 것으로 빛의 갑옷이란 도덕적, 신앙적으로 성결한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악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을 때,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에 매이지 맙시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깊이 빠져들지 맙시다. 곧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삽니다.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아직은 어둠이 깊은 현실 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아침을 바라보면서 새벽을 깨우고 밤을 낮같이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긴박하게 닥칠 주님의 날을 위해 기름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는 정결한 신부처럼 영적인 잠에서 깨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복된 교단과 교역자,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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