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_maket_banner.png
순복음홍성교회 라동옥 목사가 직접 농사지은 벌꿀판매
이태근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묵상
본교단 업무협약 업체 / 기하성회원 특별우대
홍영건장로
하나로의료재단
종교인과세

번외 포로와 자유 (시편 126편 1~3절) > 설교

본문 바로가기

번외 포로와 자유 (시편 126편 1~3절) > 설교




최근에 많이본뉴스
오피니언
특별기고란
목자의 뜰

번외 포로와 자유 (시편 126편 1~3절)

정남두 목사(서울중부지방회 증경회장, 서울제일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4-11-13 13:20

본문

정남두 목사.jpg

1. 말씀 배경

 

시편 126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은 시온에서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끌려갔던 유다 백성들의 귀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포로 되어 잡혀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2. 포로가 된 사람은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창세기 17장 7절을 보면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포로 되어 잡혀간 그들은 다름 아닌 언약 백성 유다 사람들이었습니다.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우상 숭배를 거듭하다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그리고 4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 되어 끌려가게 됩니다. 첫 번은 기원전 605년(단 1:1-6), 둘째 번은 기원전 597년(왕하24:14), 셋째 번은 기원전 586년(왕하25:6-12, 렘25:9-11), 넷째 번은 기원전 581년이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 고통 속에 삶을 연명하다시피 하다가 귀환한 언약의 백성을 맞이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반응합니다.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잡혀갔던 언약의 백성들은 다시는 시온에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좌절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예레미야 25장 11~12절을 보면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라고 했습니다. 7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 엄청난 귀환을 보면서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 우리는 꿈을 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현실이 실감 나지 않아서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반응합니다.

본문 2절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웃음’과 ‘찬양’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종노릇 하면서 온갖 수모를 다 겪었을 사람들에게 웃음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생각으로 불가능하게 보였던 귀환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크게 웃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위치에서 자유롭게 귀환할 때도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데 죄의 포로가 되어 죄 가운데 죽어가던 사람들이, 죄의 포로에서 구원받은 자유인이 되었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포로에서 귀환한 그들은 또 다른 포로임을 알아야 합니다. 


3. 귀환한 그들은 또 다른 포로였습니다.

 

이들의 귀환은 스룹바벨(BC 538년), 에스라(BC 458년), 느헤미야(BC 445년)의 주도로 3차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다시 성전을 재건합니다. 에스라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다시 듣고 배움으로 영적인 회복과 부흥을 이루어 나갑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 생활 중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된 것에 감격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또 다른 포로입니다. 다름 아닌 죄의 포로인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기는 70년이었지만 죄의 포로기는 하나님의 사하심 없이는 영구합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에게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이 겪는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합니다. 포로 생활을 경험하고 귀환한 그들에게도 트라우마는 예외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 마음속에 평안이 없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그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레스의 또 다른 칙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참된 평안과 위로와 자유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에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고 하심을 얻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죄에 종노릇이라는 것은 죄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자유했으나 귀환한 그들은 죄의 포로였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자유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 죄에서의 자유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역사는 유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언약 백성이지만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잡혀간 이들도 역시 같은 민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대에 그들만이 존재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이외의 사람들을 상고해 봐야 합니다. 유다 이스라엘을 비켜나 있었던 민족과 사람들 말입니다.


4. 번외 포로는 누구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자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2절 하반 절을 보면 “뭇 나라 가운데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뭇 나라 즉, 열방, 이방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목격하고 외친 반응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민족을 비켜나 있었던 민족, 뭇 나라 사람들은 비록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잡혀가지 않았지만 이들 역시 죄의 노예, 죄의 포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약 백성을 제외한 당대 뭇 나라, 백성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과 모든 민족을 번외 포로로 칭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고레스의 칙령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포로 되어 바벨론에 끌려가지 아니한 사람들과 이방 민족, 열방 사람들을 번외 포로라 칭하는 이유는 바벨론의 포로는 아니었으나 죄의 포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잡혀간 포로는 결박이 채워진 육체적인 포로였지만 번외 포로는 보이지 아니한 올가미가 채워진 죄의 포로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포로가 된 이들에게 필요한 자유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으로 주어지는 죄 사함의 자유입니다. 로마서 11장 11-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이방인 중에서 구원의 섭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오히려 그들이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사명을 깨닫고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로마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9-30절을 보면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할례를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유대인의 의식 세계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사야 1장 18 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하얘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고백한 죄는 용서함을 받습니다. 모든 번외 포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참된 자유를 허락하십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을 보면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죄에서 자유를 주신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을 소중히 여겨 다시는 죄의 포로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큰일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소개구독안내광고안내고충처리안개인정보취금안내 및 이용약관홈페이지 제작안내공지사항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4649 / 등록일 : 2017년 08월 07일
발행인 : 양재철 목사 / 편집인 : 송시웅 목사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해로 81길 22-26(상계동) / TEL: 02-782-0933 / Fax: 02-782-3372 / 발행일 2005년 03월 02일
청소년보호 책임자 : 이은정 (02) 720-6839
Copyright ⓒ 2017 기하성총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