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_maket_banner.png
순복음홍성교회 라동옥 목사가 직접 농사지은 벌꿀판매
이태근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묵상
본교단 업무협약 업체 / 기하성회원 특별우대
홍영건장로
하나로의료재단
종교인과세

믿음과 양심 (딤전 1:18~20) > 설교

본문 바로가기

믿음과 양심 (딤전 1:18~20) > 설교




최근에 많이본뉴스
오피니언
=> '0', ), ), )?>
=> '0', ), ), )?>
특별기고란
=> '0', ), ), )?>
'0', ), ), )?>
목자의 뜰

믿음과 양심 (딤전 1:18~20)

양군성 목사(충서지방회장, 광천순복음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3-10-04 10:13

본문

양군성목사.jpg

우리는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을 대비하여 참된 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신앙의 필수적인 요소인 믿음과 아울러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은 믿음 절반 양심 절반이란 말이 아니라 믿음을 받쳐 주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행 23:1에 보면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지 않고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아는 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십자가의 구원의 도리를 가장 명확하게 가르쳐 준 분이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어 보려고 하는 모든 행위를 헛된 일이라고 말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의 도리를 가장 명확하게 가르치신 이가, 여기서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느끼기에 양심은 도덕과 관계가 되어있고 율법과 관계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양심은 믿음과 절대적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을 담는 그릇

 

오늘 본문 19절을 봅시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여기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믿음과 함께 착한 양심도 있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더니 그 믿음이 파선되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알렉산더라는 사람과 후매네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단교리를 설파하고 망령되고 헛된 말을 멋대로 해대며 양심을 버린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외면을 당하는 이유는 양심 없는 짓을 너무나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열심히 잘 나오는데 양심 없는 짓을 너무 많이 합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을 욕되게 만들고 교회를 외면하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믿음이 온전하게 되려면 반드시 착한 양심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오늘 신자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이 ‘믿습니다’만 하면 구원 받고 천국 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참 모습을 모르고 일부분만을 크게 부풀린 것입니다. 의무는 빼 버리고 권리만 주장하는 것입니다.

 

딤전 3:8~9에 보면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말씀은 헬라어 원어에는 깨끗한 양심 안에 믿음을 담은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선한 양심은 믿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물을 담는데 바가지가 깨졌다면 물이 그 속에 남아있지 못합니다. 돈을 주머니에 넣는데 주머니가 뚫어졌다면 그 돈은 남아 있지를 못합니다. 보석을 담는 보석상자가 깨지면 그 안의 보석들은 다 쏟아져 버리고 맙니다. 믿음은 선한 양심 안에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2.믿음의 파선

 

19절 하반절에 보면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몸의 기능 중에 양심만이 영에 속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완전히 영의 기능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영과 혼의 출입구라고 합니다. 완전히 영의 기능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말씀이 영의 기능인 양심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영과 혼의 출입구라는 것은 하나님이 영 안에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양심을 통해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사람입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며, 믿음이 있다면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딤전 1:5에 보면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여 사랑도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어야 참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청결한 마음도 더하여져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독일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목사님을 안내하던 집사가 차를 몰면서 “목사님, 바로 저 집 대문 있잖아요. 언젠가 오밤중에 차로 대문을 받아 부서졌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기에 천만다행이었지요. 운전이 서툴렀던 때인데….” 작은 농촌의 마을을 지나면서 하는 말입니다.

 

마을이 수백 년 되었기 때문에 길이 꼬불꼬불해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대문만 보면 늘 생각이 나지요. 주인이 어딜 갔는지 인적도 없고 해서 무사했죠. 참으로 ‘할렐루야’지요.”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꺼림직한 마음이 들어 “집사님, 안 들킨 것이 어째서 할렐루야입니까?”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다고 합니다. 남의 집 대문을 부수어 놓고 들키지 않은 것이 ‘할렐루야’라니 신앙양심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또 목사님들 중에는 교통법규를 어겨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떼게 되었을 때 자기 신분이 목사라는 것을 밝히고 눈감아 달라고 불의한 부탁을 하는 일도 많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자기의 거짓된 양심을 가리는 커튼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구원파 고등학생이 남의 집 대문에 놓여있는 우유를 꺼내 먹으면서 “나는 회개하고 용서받았으니 괜찮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비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예수 믿으니 없어졌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려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신자들이 생활 속에서 잘못과 실수를 범하고도 윤리적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입버릇처럼 ‘할렐루야’와 ‘은혜’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변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거짓말을 잘하고 더욱 엉터리라는 말을 듣습니다. 

 

모 유명인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가짜 꿀을 만드는 부모 때문에 교회를 멀리했다고 합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조금도 가책이 생기지 않습니다. 양심이 마비되었기에 짐승과 같이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인간화라고 합니다. 

 

딤전 5:22에서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이것은 믿음과 착한 양심이 있어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간섭하게 됩니다. 자신의 정결을 유지하지는 못하면서 남의 죄에 간섭하게 되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리게 됩니다. 착한 양심이 없고 믿음만 있으면 남의 죄만 크게 보입니다. 착한 양심이 있어야 자기의 죄가 더 크게 보입니다. 자기 죄가 더 크게 보이면 남의 죄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은 사실 모두 비슷합니다. 비슷한 죄 속에서 먹고 마시며 숨 쉬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 크기의 차이만 다를 뿐,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걸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착한 양심입니다.

 

19절에 보면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한다!’하나님은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뒤에서 전능자가 되어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살면서 양심대로 하면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볼지라도 양심을 지키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언제 교회가 망하는가? 선한 양심을 외면하면 망합니다. 교인이 많고 프로그램이 거창하고 찬송이 불붙고 기도가 뜨거워도 선한 양심을 외면하면 그 교회는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목회에서 성공한 잘난 사람들 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 정직하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잘난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에 유황불구덩이가 되었습니다.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합니다. 양심을 지키는 신자들이 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소개구독안내광고안내고충처리안개인정보취금안내 및 이용약관홈페이지 제작안내공지사항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4649 / 등록일 : 2017년 08월 07일
발행인 : 양재철 목사 / 편집인 : 송시웅 목사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해로 81길 22-26(상계동) / TEL: 02-782-0933 / Fax: 02-782-3372 / 발행일 2005년 03월 02일
청소년보호 책임자 : 이은정 (02) 720-6839
Copyright ⓒ 2017 기하성총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