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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응답은’(엡 1:7~10)

김영근 목사(전라1지방회장, 곡성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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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12-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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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 믿음을 가진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채득할 수 있는 인간의 이해의 폭은 어느 정도일까요? 

 

현재 과학의 발전은 우주공간에 인공위성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우주공간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정도까지입니다.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신 그 우주전체를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티끌과 같은 존재라고 기록하신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1장 5절 말씀에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라고 나옵니다. 그분과의 자녀의 맺음 언약을 이미 태중에 잉태되기도 전 우리를 알고 계셨다는 놀라운 사실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넓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 중 어디를 찾으면 가장 가깝고 긴밀하게 계시해 주실까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만남)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원리에 입각하여 시편을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시편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해 보면 죄, 칭의, 기도, 신앙의 의미에 관해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 해석 의지의 부자유를 말하고, 죄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계시 되고, 우리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부르짖으신 말씀,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고통과 두려움을 아들이신 예수님의 몸으로 경험케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살아가는 세상에서 상처 입었던 우리가 그 아픔들을 기억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한 시간의 10분의 1도 견딜 수 없어서 죽을뻔 했노라 라는 철저한 황량감을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시면서 이미 체험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면서 동시에 하나님께도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채찍질, 가시 면류관, 그 못질보다 얼마나 더 고통스러우셨을까요! 십자가에서와는 달리 동산에서는 땀방울 대신 피로 흥건히 적시셨던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고, 완전히 격리된 상태로 떨어져 주셨으며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할 것을 이미 당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런 절망을 겪으셔야 했을까요? 그리스도는 왜 버림을 받으셨는가요? 그것은 죄 없으신 그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으며, 그로 인하여 죄에 가득한 인간들과 스스로를 동일시 하셨고, 이를 통하여 인간들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상태에 스스로 뛰어드심으로써 우리들과 하나가 되셨던 것입니다.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불의를 짊어지셨다는 사실, 죄가 없지만 우리를 대신해서 죄가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들과 한 몸이 되고, 인간들이 겪는 소외감에 참여하셨던 분이십니다. 참으로 사람이었던 분이시기에 그는 자신이 인류와 함께 온통 거룩한 분에게서 떨려 나가는 것을 느낄 정도로 인류와의 일체감을 의식하여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 엄청난 은혜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죄의 흉악함을 부정하거나 잊을 수는 없지만 죄인이 죽는 것보다는 돌이켜서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쓰라린 죽음의 고통 속에서 화해를 발견하신 것을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 죄와 사망의 멍에로 인해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를 가르키십니다. 그러므로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하나님을 새롭게 은혜롭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결과는 ‘하나님의 의’라고 하십니다. 즉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셋째로, 복음에 대한 응답은 곧 신앙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복음의 의를 깨닫고 받아들여 선택과 결단과 신뢰에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신앙은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은혜의 말씀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우선 지적 기능과 양심의 조명과 감화를 통하여 일어나며 정서와 의지와도 연결이 됩니다. 

 

말씀을 받은 저희는 하나님의 율법 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자기 자신의 죄를 철저히 깨닫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복음의 의를 깨달아야 합니다. 양심의 위로와 안위를 얻고 정서가 안정과 평화를 얻음과 동시에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동시에 자유를 얻어 새로운 선택, 새로운 결단, 그리고 참된 신뢰에 이르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서 그 분의 피로 구속 곧 죄의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엡 1:7~10).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전능하신 사랑의 그 말씀 속에 여러분이 담기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이 바로 주님의 품 안이 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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