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며 감사하는 삶 (단 6:6~10)
양병열 목사(순복음성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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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7-11-01 11:35본문
동갑내기 칠순부부가 있었는데 칠순 잔치를 같이 동시에 했습니다. 그리고 칠순선물로 요술램프를 받았습니다. 이 요술램프는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소원은 생 남편과 은혜 가운데 살았으니 마지막 여생을 남편과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러자 뿅 하는 소리와 함께 각종 항공사의 비행기 표와 각 나라에서 먹고 잘 수 있는 숙박권도 떨어졌습니다. 할머니는 너무 좋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너무 신기하다 싶어서 평생의 한 가지 소원으로 할머니보다 30살 어린 여자를 주시옵소서! 라고 말했는데 요술램프에서 뿅 소리가 나더니 할아버지 나이가 100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욕심 부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매 순간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B. C 605년경에 그는 왕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 시기의 1차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에 입각해서 자기의 몸을 더럽히지 않고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합니다. 그리고 느부갓데살왕 시절에 높은 벼슬에 올라갑니다. 느부갓네살왕이 죽고나서 벨사살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도 다니엘은 연회장 벽에 나타난 사람의 손이 쓴 글자를 읽어주고 그 뜻을 해석함으로써 그가 바벨론의 둘째 치리자, 총리까지 등극합니다.
신앙인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반드시 변함이 없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니엘서 6장 1절에서 5절을 보면 그가 120명의 고관들과 3명의 총리를 세웠는데 그 총리 3명중에 하나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힌 사람이었지만 철저히 자기의 신앙을 지켜나가며 다니엘서 6장 3절의 말씀처럼 마음이 민첩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민첩했다는 말은 다니엘은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제 2인자로 삼은 것입니다.
하지만 120명의 고관들과 나머지 총리 둘이 다니엘을 음해하고 흠을 잡으려 하지만 아무 허물을 얻지 못했으며(6:4), 윤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아무 약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고든 것이 그의 신앙관을 잡은 것 입니다. 다니엘서 6장 6절 말씀에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아부하는 것입니다. 아부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총리들과 수령들과 방백들과 무사들이 하는 말이 왕의 자리가 든든하고 튼튼하려면 어떠한 사람에게도 어떤 신에게도 경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령을 만들고 어인을 찍어 선포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지 않습니까? 그 법이 개정 전까지 살아 있는 것처럼 다리오가 어인을 찍어 선포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법을 고치지 않고자 함이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 8절 말씀에 보면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 메데와 바사에 변개치 않는 규례를 따라서 그것을 다시는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그 금령의 내용은 30일 동안은 아무에게도 절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 7절 하반절의 말을 보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절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며칠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30일입니다. 다니엘서 6장 4절에 보니까 다니엘은 아무 흠이 없으며, 고소할 흠이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하든 다니엘을 죽이고 싶은 자들이 다니엘을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생각한 끝에 내린 것이 다니엘의 신앙관을 걸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6장 7절에 보니 어떤 신에게든지 왕에게든지 사람에게든지 기도하거나 경배하면 사자굴에 던지는 걸로 조서를 만들어 어인을 찍어 선포하자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계략은 다니엘을 죽이려는 목적입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오왕의 총리입니다. 다리오왕의 신하들이 자신을 질투하여 죽이려고 하는 이 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기면 사자굴로 끌려 들어가 결국 사자밥이 되어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법을 알면서도 자기의 신앙관을 그대로 지켜 나갑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이 그 내용입니다, 10절을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그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 하였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윗방에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행위는 죽는 행위입니다. 다니엘은 단 며칠간만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다리오왕이 정한 금령은 30일 간입니다, 그 30일간만은 묵상기도를 하거나 사람들 눈을 피해 할 수 있습니다. 30일간만 속으로 기도 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단 30일만 지나면 되는 것입니다. 속으로 기도하면 되고 속으로 묵상기도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거기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다니엘은 속으로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묵상기도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단 며칠간만 참으면 되면 사자굴에 던져지는 일은 피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의 밥이 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경배하는데 있어 스스로의 안위와 목숨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평소대로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사자밥이 되어 죽는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의 이런 모습은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의 바울과 실라의 일행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나서 2차 전도여행은 1차전도 여행 했던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가 보기 위하여 방문하려 했지만, 성령께서 이것을 원치 않아서 2차전도 여행의 방향을 유럽쪽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유럽에 있는 빌립보라는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점치는 귀신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점을 잘 치는데 이 소녀 속에 귀신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소녀가 점괘를 잘 맞추니까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섰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이 어마 어마한 돈을 쟁취했습니다. 소녀는 점만 치면 되고 주인은 돈만 받으면 되니까 그 소녀의 주인은 점친 돈을 모두 주인이 갈취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었지만 바울일행이 그 소녀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버립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점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일행이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더 이상 돈을 벌수 없게 된 점치는 소녀의 주인은 로마의 관청에 신고를 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그들이 뭘 잘못했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하염없이 원망과 불평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매를 맞고도 무엇을 말하였습니까? 사도행전 16장 23절에서 보면 매를 맞고 나서 그 다음에 어떠했습니까? 24절 말씀을 보면 깊은 옥에 두고 발에 착고를 든든히 채웠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망과 불평을 할 상황에서 25절 말씀을 보니까 그들이 밤중에 기도와 찬송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더니 큰 소리로 한 기도를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6절 말씀을 보니까 바울과 실라가 찬양하며 기도하니 옥문이 열리고 지진이 나 움직이면서 문이 다 열리고 매인 것들이 다 벗어졌습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일부만 벗어지고 열린 것이 아니고 다 열리고 다 벗어지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기도는 감사하는 능력과 이적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이라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영적 교훈은?
첫째,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라.
여기서 주님이라는 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벨론 포로로 잡혀 와서 페르시아가 정복한 시점에서 유대나라에 있던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변함이 없이 기도하라.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니까 전에 행하던 대로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꾸준해야 역사가 일어나지 환경 따라 변하고 무엇 따라 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셋째,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라.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총리가 얼마나 바쁩니까? 그런데도 다른 거 다 빼고 기도에 힘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넷째, 감사하는 기도하라.
지금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니 그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로 다니엘 6장 23절, 24절에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전화위복을 시켜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은혜가 있어서 다니엘처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매 순간 하나님께 기도해서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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