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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설교 / 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 (눅 24:25~35) > 설교




부활절 설교 / 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 (눅 24:25~35)

유순종 목사(헌법위원장, 서울신광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2-04-15 14:3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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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주님은 거듭하여 자신의 죽음과 함께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힘없이 돌아가시자 절망하고 낙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믿음은 온데간데 없고 그들은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 본래의 생업에 종사하였고 어떤 이들은 숨어 지내며 되어지는 일들을 관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를 만나 그들은 더 이상 주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의 무기력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를 만나고 나서 완전히 변했습니다. 이렇게 부활에는 신앙인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경우는 모든 제자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샘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부활신앙이 우리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식었던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누구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열두 제자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칠십인의 제자 중에 하나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들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낙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부활을 거듭해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믿음이 죽은채 주님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주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들었습니다(21~24절). 그러나 이미 믿음이 식어버린 그들에게 주님의 부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믿을 수 없는 공허한 소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순간에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엠마오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이렇게 돌변하게 된 것일까요? 무엇이 싸늘하게 식었던 그들의 믿음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과의 만남이 두 제자의 식었던 믿음에 생명의 불을 지핀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식었던 믿음을 회복시켜 줍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식어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침체되어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새 힘을 얻고 믿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2. 사라졌던 소망이 회복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처음에는 절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분으로 믿고 따랐습니다. 

 

사실 죽은 자를 살리고 각종 병자를 치유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분명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자로 보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기대처럼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는 커녕 도리어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혀 반역의 수괴로 힘없이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던 소망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이 한순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이켜졌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사라진 소망이 다시 살아났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라져 버린 소망이 다시 회복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소망의 원천이었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고,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그들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면 사라졌던 소망이 다시 회복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부활 신앙을 가진자는 절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 신앙을 가진 자에게는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에 빠져있는 분이 있습니까? 부활의 주를 만나십시오. 그러면 산 소망을 회복 할 수 있습니다.

 

3. 잊어버린 사명이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당신의 사상을 가르치기 위해서, 말벗이 되게 하려고, 아닙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당신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님의 뜻을 받들어 주님의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자신들의 사명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에 급급하였고 자기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는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죽으셨다는 사실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자신들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제자도 그렇게 충격을 받고 모든 사명을 잊어버린 채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의 주를 만났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잊어버렸던 사명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함으로 초대 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를 만나면 사명이 회복됩니다. 여러분도 지금 혹시 잊고 있는 사명이 있다면 부활의 주님을 만나 사명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상급이 있고 면류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을 저버리고 절망 가운데 빠져 세상으로 향할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부활의 주를 만나지 못한 기독교는 무덤신앙, 무덤의 종교와 같습니다. 소망도 없고 사명감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와 동행하신 부활의 주님은 오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아직도 부활의 주를 만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근심과 절망 가운데 계신 분이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래서 믿음이 생명을 얻고 소망이 살아나며 사명이 뜨거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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