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 (요 11:17~27)
류기서 원로목사(진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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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4-01-15 13:45본문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생각을 전환하길 원하십니다. 특히 우리 예수님께서는 능력을 행하시기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생각의 전환과 믿음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1. 마르다와 마리아 가족에게 진정 사랑하시는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셨습니다(17~18).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하는데 당장 좇아가지도 아니하시고 나흘이나 머뭇머뭇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계셨는데, 예루살렘에서 베다니까지는 5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2Km정도의 거리입니다. 걸어서 15~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이틀이나 그 계시던 곳에 더 유하시다가(11:6) 천천히 나사로의 죽음에 위문을 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병들어 누웠다면 뛰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나흘이나 걸렸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21절에 고백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원망 아닌 불평 아닌 하소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은 진정 사랑이신가요? 라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신다면서 어찌 이제야 오십니까 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5절에 ‘사랑하시더니’ 라고 성경에 여러번 예수님이 너무나 사랑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어 죽을 위기에 있는데도 마르다와 마리아의 급한 소식에도 느긋하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가 보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선순위가 없으시구나!’, ‘정말 예수님이 우리 사랑하시는거 맞아?’라고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 가운데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4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도마의 눈에도 제정신 아닌 행동이었기에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말합니다. 무덤에 있은지 나흘입니다. 이미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11)’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돌맞아 죽을 일입니다. 사람들이 수군수군 거릴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예수님은 예수님의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고 있습니까? 너무나도 절망적인 상황입니까? 조금 더 기다리세요. 믿음으로 나아가세요. 진정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2. 예수님께서는 생각이 바뀌어지길 원하셨습니다(23~27).
믿음의 언어로 믿음의 생각으로 바뀌어지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능을 행하시기전, 기적을 행하시기전 먼저 생각이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23절에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는 24절에 ‘마지막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24절 마르다의 고백의 의미는 ‘오라비가 살 것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그 질문에 마르다는 27절에 생각을 바꾸어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다시 표현하면 믿어지지 않았지만 저의 생각을 바꾸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 먼저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고칠 때에 ‘네게 무얼 하여 주길 원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르셨을까요? 소경은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소경에게는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도 물으십니다. 소경은 ‘주여 그러하외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에게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왜 물으시는 것일까요? 모르셔서 물어보시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입술로 고백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언어를 바꾸길 원하십니다. 긍정적인 언어로 바뀌어지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사상이, 생각이 바뀌어지길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바뀌어지길 원하십니다.
생각은 인간의 모든 것에 작용하게 합니다. 좋은 생각은 좋은 말을 하게 하며, 나쁜 생각은 나쁜 말과 나쁜 행동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그 사람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적인 생각,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현재의 우리의 상황을 보면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은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생각을 바꾸길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13:8). 2000년전에 역사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생각으로 삶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골리앗은 ‘나를 개취급 하느냐?’이고 다윗은 ‘나는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라는 믿음과 언어와 생각의 차이인 것입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가나안 정탐꾼들의 차이는 메뚜기 자아상과 밥(먹이)의 자화상의 차이입니다. 불신의 열 사람은 ‘우리는 메뚜기입니다’이지만, 믿음의 두 사람에게는 ‘저들은 우리의 밥(먹이)입니다’, ‘그냥 먹기만 하면 됩니다’라는 믿음의 차이, 생각이 차이, 언어의 차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원한다면, 생각의 변화, 생각의 전환, 언어의 변화,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39~41).
그런데, 아직도 연약한 마르다의 모습을 보십시오. 분명히 27절에서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마리아는 또 다시 의심합니다. 3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실 때,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40절에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라면서 ‘왜 또 의심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서야 41절에 돌을 옮겨 놓았다고 기록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 모습이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변화된다고 하면서도 또 의심하고 불신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르다를 다시금 변화시키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뀔 때, 믿음으로 나아갈 때 권능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아만에게 왜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치실 때 땅에 침을 뱉어 흙에 비벼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까지 가서 씻으라 하셨을까요? 그건 진정 순종하느냐 라는 시험인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길 때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2002년 월드컵에 4강으로 이끈 히딩크 감독은 계약 사인에 앞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게 ‘내가 만약 지금 한국선수들에게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저 나무에 올라가라고 한다면 올라가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축구협회 관계자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때 비로소 히딩크는 사인을 했습니다. 나중에 결국 한국선수들도 히딩크의 신도가 됐습니다. 히딩크가 죽으라면 죽을 정도로 한 몸이 됐습니다. 그것이 월드컵 4강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비록 그가 월드컵전에 치루었던 시범 경기 가운데 ‘오대빵(5:0)’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훈련 가운데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담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사로잡혀 희망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음을 강하게 압박하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생각인 평안을 외칩니다. 하나님의 생각인 미래와 희망을 선포합니다.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13)’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긍정의 생각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인 긍정이 찾아오면 삶은 확실히 달라집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찾아야 합니다. 긍정으로,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생각의 전환을, 생각의 변화를 원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뢰합시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되신 오직 하나님만, 오직 예수님만, 오직 성령님만을 의뢰하고 생각을 전환하고 순종함으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부정적인 것이 긍적적인 것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변화되어지는 귀한 삶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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