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는 인생이 되려면 (막 14:3-9)
용성중 목사(경남지방회장, 진해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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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3-11-29 14:02본문
오늘 본문을 보면 시몬과 여자가 나오는데 여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시몬은 나병환자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이전에는 나병 환자였었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치료 받고 감사해서 예수님을 식사에 초청한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이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들어 있는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그 귀한 향유를 왜 그렇게 허비하느냐? 차라리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얼마나 좋으냐고요.
그런데요 이 모든 말을 다 들으시던 예수님이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책망하시고 오히려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의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옥합에 들어 있는 순전한 나드라는 것은 향나무 종류의 나무뿌리에서 추출되는 액체를 말하는데 냄새가 아주 좋습니다. 팔레스틴에서는 자라지도 않고 히말라야의 높은 고산지나 인도지방에서 자라기 때문에 수입해서 써야 했습니다. 그러니 가격이 무척 비쌌습니다.
5절에 보면 한 옥합을 300데나리온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값으로 계산하면 당시 노동자들의 1년 연봉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그 비싼 향유를 단번에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리는 모습을 보고는 화내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여자의 행한 일을 칭찬하시면서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여인과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삶을 통해서 보여지므로 주님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귀한 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인격이 커져야 합니다.
인격의 그릇이 큰 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크게 임합니다. 사울 왕은 잠재적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역량 이하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에게 백성들의 관심이 많아지니, 자신의 왕위를 빼앗길까 염려가 생긴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데 온통 관심을 쏟아붓게 되고, 자신을 왕위에 세운 하나님과 돌보아야 할 백성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사울은 복수심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실패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이 큰 인물이 된 것은 그의 성품이 대인의 인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을 두 번이나 결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된 사울을 살려줍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다윗은 지금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조카 롯과의 사이에서 짐승들을 키우는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롯을 불러서 네가 먼저 가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른이기에 먼저 선택할 수 있었지만 양보를 합니다. 롯은 에덴동산처럼 보이는 소돔 쪽을 선택하여서 잠시는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소돔에서 도망치듯 나와야 했던 결과의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보처럼 양보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던 가나안을 택하므로 지금도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음의 그릇을 키웁시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중요하지 않은 세상 것들은 양보하며 삽시다.
책에서 잃은 내용인데요. 이 땅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거미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은 땀 흘리거나 수고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얌체 인간입니다.
둘째는 개미 같은 사람입니다. 부지런하고 근면한데 자기중심으로만 사는 이기주의자입니다. 내가 번 것으로 내가 누리고 즐긴다는 일차원적 철학으로 살아갑니다.
셋째는 꿀벌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꿀벌처럼 열심히 일하고 활동합니다.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수술과 암술을 붙여주므로 꽃들로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그리고 자기도 꿀을 따먹습니다. 얼마나 고상하고 멋진 인생입니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거미인가요, 개미인가요, 꿀벌 인생인가요?
총회원 여러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큰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의 기초 인격부터 잘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인격의 크기가 일과 인생의 크기가 됩니다.
2.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다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예수님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닮아가게 될 것이고 생각과 인격의 크기도 예수님만큼 되어져 갈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하면서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뿌리를 통해서 공급되는 영양분을 흡수하게 되고 열매를 저절로 맺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는 말은 성령 충만한 삶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시면서 마지막 남기신 유언이 무엇입니까? 땅끝까지 증인이 되어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니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봅니다.
제자들도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전에는 자기 신앙 하나 지키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 완전히 달라진 것을 우리는 압니다.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고, 고넬료 가정에 성령님의 역사 하심을 본 후에는 자신들의 영역을 넘어서 열방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또한 자신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소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열매를 맺어 거룩한 부흥의 역사를 드러내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 생활에 충실함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3장에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 첫 번째 조건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였습니다. 그리고 전도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는 사역을 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인의 이름이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옥합을 깨드리는 똑같은 장면이 나오는 요한복음 12장을 보면서 같은 한 사건이라면 이 여인의 이름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입니다. 늘 예수님 옆에서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하며 가까이 했기에 주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늘 주님과 가까이 하십시다. 그럴 때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헌신하게 되고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을 크게 믿으십시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아브람이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 후인 99세 때에 처음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후 자손에 대한 약속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크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믿음의 분량이 곧 인생의 크기를 결정한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연약하지만 신앙의 사람은 자기 한계를 뛰어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인격과 기도와 믿음입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여 칭찬을 받았던 여인처럼, 우리들도 주님께 칭찬을 받으며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격의 크기를 키우십시요.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과 동행하십시요. 하나님을 크게 믿으십시오.
그러면 자기 역량보다 더 크게 쓰임 받는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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