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_maket_banner.png
순복음홍성교회 라동옥 목사가 직접 농사지은 벌꿀판매
이태근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묵상
본교단 업무협약 업체 / 기하성회원 특별우대
홍영건장로
하나로의료재단
종교인과세

“누가 먼저 올라갈까” (사사기 1장 1~3절) > 설교

본문 바로가기

“누가 먼저 올라갈까” (사사기 1장 1~3절) > 설교




최근에 많이본뉴스
오피니언
=> '0', ), ), )?>
=> '0', ), ), )?>
특별기고란
=> '0', ), ), )?>
'0', ), ), )?>
목자의 뜰

“누가 먼저 올라갈까” (사사기 1장 1~3절)

유성민 목사(청주지방회장, 청주백양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4-10-07 10:09

본문

유성민 목사.jpg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변화될 것이요,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변화된다면 이 세상은 반드시 변화될 것입니다. 내가 바뀌면 가정이 바뀌고 내가 바뀌면 교회가 바뀝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여러분에게 필요한 기도는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헌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앞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 선교를 향한 아름다운 비전도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기도 제목들의 성취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사기 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요단강을 갈랐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가나안 땅 분배까지 은혜스럽게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죽은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가나안 부족들이 머리를 들고 일어나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불행스러운 것은 여호수아를 뒤이어 이스라엘을 영도할 지도자인 후계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의 불행이요, 교회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도자가 없는 국가는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사사기의 첫 말씀은 참으로 절망적인 탄식의 심정이 배어있습니다. 전쟁은 났으나 나가 싸워야 하는데 앞장설 지도자가 없습니다. 전쟁은 벌어 졌으나 먼저 나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누가 먼저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머뭇머뭇하고만 있습니다. 

 

당시의 가나안 족속들은 최신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힘이 장사인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싸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이미 결과가 예고된 죽으러 가는 일이며 앞장선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을 감수하고 앞장서 총대를 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유다를 부르셨습니다. 

 

(삿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유다를 부르셨습니다. 그것도 열두 지파 중에서 유다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네가 앞장서서 이 민족을 위하여 총대를 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지도자가 누구이며 일꾼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란 위기의 상황이 왔을 때에 뒤로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고, 방관하는 자가 아니라 희생의 총을 메는 자이며 희생을 각오하고 앞장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유다로 하여금 올라가게 하셨고 올라가서 치고자하는 땅을 손에 붙였다고 말씀하심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의 그들에게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입니다. 

 

오래 전 월삭예배에 아이들이 참석을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내일 아빠와 함께 월삭예배에 참석할 사람”

그랬더니 두 명만 “저요” 하면서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한 명은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월삭에 참석할 사람” 

그랬더니 역시 두 명은 들고 한명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아빠와 함께 월삭예배에 참석할 사람”

그랬더니 두 명은 변함없이 번쩍 손을 들었으나 한 명은 아주 천천히 손을 들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난데없이 월삭예배에 갈 것을 물어본 것은 가도 되고 가지 말아도 되는 선택을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월삭예배에 가자라는 권면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가는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성경은 유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삿 1:4a) 『유다가 올라가매 』

 

유다라고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더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들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도 다 사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는 것은 곳곳에 사랑하는 성도들의 목숨을 건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시간이 남아서, 할 일이 없어서, 한가해서 이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귀한 교회에서 헌신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기에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유다의 경우, 하나님께서 부르시니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전쟁터에서 선봉장으로 나갔습니다. 희생을 감수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유다에게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영적 공동체인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진정한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유다와 같은 결단을 하는 분이 많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희생을 각오하는 이 결단이 바로 헌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가을 철새인 기러기는 혼자 다니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무리를 지어 날아다닙니다. 기러기들이 이렇게 비행하는 것은 혼자 비행할 때보다 약 70여%가량의 에너지 절감의 유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둘씩, 셋씩, 무리를 지어서 날아가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앞서가는 기러기가 날갯짓을 할 때에 바람을 일으켜 뒤따르는 기러기를 돕고 앞에 가는 기러기의 도움을 받아 날갯짓을 하는 기러기는 그 뒤를 따라 오는 기러기를 도와줍니다. 도움받고 도와주면서 비행을 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날아가면서도 그들은 가볍게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하고 합심하였기 때문에 장거리 비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점점 추운 겨울, 사람은 따뜻한 집 안에서 보일러를 틀면 되지만 동물들은 이 추위를 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혹독한 추위가 와도 두 마리의 동물이 함께 있으면 그 어떤 추위도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예전 사택에 개가 새끼를 낳았을 때 살을 에는 추위에 걱정이 돼서 개집을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가면 후끈한 열기가 느껴집니다. 새끼와 함께 뭉치니 그 어떤 추위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름 받은 유다는 혼자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삿 1:3)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유다가 제일 먼저 올라간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 지파만이 아니라 시므온 지파도 함께 올라갔으며 함께 협력해서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유다의 12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는 가장 뛰어난 지파입니다. 그러나 함께 가자는 시므온 지파는 가장 보잘것없는 지파였습니다. 시므온이 아무리 잘 돕는다 해도 시므온의 힘은 어쩌면 있으나 마나한 지파였습니다. 그런 시므온에게 유다는 동역자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기 홀로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홀로 독불장군처럼 일을 하는 것보다 미약하지만 서로 힘을 합하여 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의 힘이 보잘것없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기쁨이 기꺼이 유다를 돕기로 결정하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도움 받는 맛도 괜찮지만 도와주는 맛은 더 좋습니다. 얻어먹는 맛도 좋지만 내 것을 남에게 주는 맛은 더 기분이 좋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교회 공동체가 다른 점입니다. 

 

이렇게 뭉쳐진 힘을 가지고 유다가 올라가 싸울 때에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으나 승리는 유다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협력하고 합심한 능력입니다. 

 

헬라어로 ‘협동’이라는 말은 ‘쉰들레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같이 싸워가다, 같이 투쟁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 하는 ‘전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부르시듯 영적 전쟁을 치를 동역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동역자는 누구입니까? “생사를 함께 할 전우”입니다. 함께 싸우고 함께 투쟁할 전우입니다. 함께 협력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함께 싸워 나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희생을 결단하고 힘을 모아 상부상조할 동역자가 필요하신 것입니다.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유다는 먼 곳에서 협력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이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곳에서 찾았습니다. 우리도 먼저 내 가족부터 그 다음에는 성도, 나아가서는 민족끼리 협력하게 되면 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면 됩니다. 두 겹줄보다는 삼겹줄이 더 낫습니다. 네 겹줄이면 더 좋습니다. 힘을 뭉치면 뭉칠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뭉치기만 하면 전쟁은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싫어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한마음을 품어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열시키고, 다투게 만들며 이간질을 시켜 깨어지게 만들고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이유와 핑계를 대서 일할 수 없게 만듭니다. 성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바로하기 위해서 보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더욱 헌신하기 위해서 힘을 하나로 묶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소개구독안내광고안내고충처리안개인정보취금안내 및 이용약관홈페이지 제작안내공지사항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4649 / 등록일 : 2017년 08월 07일
발행인 : 양재철 목사 / 편집인 : 송시웅 목사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해로 81길 22-26(상계동) / TEL: 02-782-0933 / Fax: 02-782-3372 / 발행일 2005년 03월 02일
청소년보호 책임자 : 이은정 (02) 720-6839
Copyright ⓒ 2017 기하성총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