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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산상의 십자가 _누가복음 9: 22~36절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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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산상의 십자가 _누가복음 9: 22~36절

손소개 목사(십정중앙순복음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17-09-07 14:05

본문

손소개목사.jpg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사 낮이나 밤이나 새벽이나 기도하셨습니다.(마 14:23)
그 분은 기도 없이 설교하지 않으셨고, 기도 없이 가르치지 않으셨고, 기도 없이 병자를 고치시거나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와의 통로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자리요, 아버지 뜻을 순종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김준곤 목사는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보다 앞서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기도 중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고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눅 9: 18~20)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하시고,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였습니다.
주님 예수께서도 기도하실 때마다 아버지께 물으셨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요 8: 28·38)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수난고지’를 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 9:22)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심지어 그리 마옵소서. 죽지 마옵소서. 자기가 예수의 죽음을 막아 드리겠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는 돌아보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 16: 22~23)하시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눅 9:23)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숙하지 못하였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첫 번째 수난고지를 하신 후, 의사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지고 광채가 나더라.”(눅 9: 28~29) 하였습니다.


하늘나라가 산상에 임하였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도 천국을 보는 자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입니까?
그야말로 초막이나 궁궐이나 산이나 들이나 광야나 주님 계신 곳이 천국이 된 것입니다.


변화산에 율법의 대표자 모세도 임재하고 예언자의 대표 엘리야도 임재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야 말로 율법과 예언의 완성자요, 복음의 온전자 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대화하고 있는데 그 말씀의 주제가 무엇인가 살펴봅시다.
누가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하였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의사 누가만이 ‘별세’를 말하였습니다.(눅 9:31)
단 한 단어 입니다. 단 한 마디였습니다.
주님에게는 침묵도 설교가 되시고, 한마디 말씀도 깊은 설교가 됩니다.


‘별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떠남’이요, ‘탈출(엑소도소)’, ‘세례(눅 12: 50)’, 그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는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가 오신 목적은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서입니다.


늙어 노쇠해서 죽는 죽음도 아니고, 사고사로 죽는 죽음도 아니고,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폭력에 의한 십자가의 별세, 십자가의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속죄함 때문입니다.
즉,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도 없기 때문입니다.(히 9:22)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요, 부활입니다.
이중표 목사는 ‘별세’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처음으로 십자가 죽음을 고지하였지만, 제자들은 성숙지 못하여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자, 세 제자만을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에 오르사 기도 중 용모가 변하여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영광은 거룩합니다. 영광은 아름답습니다. 누구나 그 영광을 보기 원하고 그 영광 중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천국을 소망하고 하늘 나라가 임재하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는 얼마나 좋은지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살자고 했습니다.


그 때 구름이 그들을 덮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 하십니다.


영광 중에서도 들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영광만 보고 세미한 음성을 놓치면 복음의 본질을 잃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영광 속에서도 그의 사랑하는 자, 그가 기뻐하시는 그의 소리, 예수님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의 말, 주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별세’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이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변화산상의 십자가 말씀입니다.


변화산상의 영광을 얻으려면 십자가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승리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전도도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평화도 없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나타나야 합니다.
십자가는 영광 중에 영광입니다. 십자가 지는 곳에 영광이 있습니다. (요 12:23)


십자가 죽음만이 부활의 영광, 변화산의 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해야합니다.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가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고(고전 2:2)” 십자가만을 전파하리라고 하였으며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14)라고 하였습니다.


뉴욕 맨하턴의 ‘팀 켈러’목사는 그의 저서 ‘왕의 십자가’에서 21세기 교회가 십자가 복음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변화산상의 경험 이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 앎이라.”(벧후 1:14)
여기서 ‘이 장막을 벗어남’은 예수님의 별세의 뜻과 같은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후 자신의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서 장렬한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것이 별세요, 자신의 장막을 벗는 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막 벗어남은 베드로의 십자가 영광이요, 별세였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신 말씀에 온전한 순종자였습니다.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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