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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統一)보다 평화(平和)가 먼저 통합(統合)을 넘어서 화합(和合)”(시편 133편 1절-3절)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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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統一)보다 평화(平和)가 먼저 통합(統合)을 넘어서 화합(和合)”(시편 133편 1절-3절)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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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統一)보다 평화(平和)가 먼저 통합(統合)을 넘어서 화합(和合)”(시편 133편 1절-3절)

최성규 목사(증경총회장, 인천순복음교회 원로)

페이지 정보

작성일19-01-17 15:33

본문

  

최성규 목사.jpg영어 성경의 많은 번역본들 중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추천하는 영어 성경이 있습니다. ··(NLT: New Living Translation) 영어 성경입니다.


J. I. 패커 박사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나온 번역 중, 가장 표현이 매끄럽고, 가장 성공적으로 번역된 성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성경에 보면, 시편 133편에 하모니라는 말이 1절에도, 2절에도, 3절에도 나옵니다. “형제가 하모니를 이루며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즐거운가! 이 하모니는 아론의 머리 위에 부어져 그의 수염과 옷 가를 흘러내리는 기름과 같이 귀하다. 하모니는 시온 산들로 흘러내리는 헤르몬 산의 이슬처럼 상쾌하다. 거기서 주께서 그분의 은총, 곧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셨다.”


다른 영어 성경에서 ‘연합’은 흔히 ‘unity’로 번역됩니다. NLT 성경은 생활성경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려는 의지가 단어 선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harmony’라는 단어의 선택입니다. 단순히 하나가 되고 함께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구성원 각자의 개성을 발현하면서도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질서의 극치를 잘 전달해 주는 단어가 ‘하모니’인 것입니다.


또한 본문을 통해 하모니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한 단어를 놓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한글개역성경에서 “어찌 그리!”라는 감탄사는 하나님의 감동, 사람들의 감격이 그대로 담겨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리고 사람이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뽑으라면 단연 ‘하모니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모니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모니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건강한 신앙이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길입니다.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건강한 시민이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입니다. 하모니를 이루는 삶에 대해 알아봄으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복을 누리며 사는 한 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통일보다 평화가 먼저

 
대한민국의 역사는 온 국민이 평화의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1919년 3.1운동 정신은 하모니 운동이었고 평화운동이었습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이 종교를 초월하여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지역과 세대와 계층을 초월하여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도 화합하여 참여했습니다. 북간도, 서간도, 연해주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에서는 모금과 홍보활동으로 참여했습니다.

 

3.1운동의 하모니 정신은 민족을 초월하여 인류평화에 이바지했습니다.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 1항에 보면 “오늘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한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나타낼 것이며, 남을 배척하는 감정으로 그릇되게 달려 나가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은 하모니의 씨를 뿌렸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의 열매를 거두었고, 1948년 8월 15일 우리는 독립과 건국의 열매도 거두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거두어야할 하모니의 열매는 남북평화통일의 열매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예물을 드리는 일에는 열심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열심을 내야할 일이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는 일입니다. 북쪽에 우리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한반도에는 핵무기의 위협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필요한 것은 정치 논리가 아니라 신앙의 논리이며, 외교와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화목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은혜입니다. 남북의 화해 없이 동아시아 평화도 세계 평화도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남북화해와 평화와 협력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 인류구원, 인류행복이 이어집니다.


통일은 대박도 아니고 환상이나 낭만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박물관에 가면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첫째, 과거를 기억하라. 둘째, 현재를 살라. 셋째, 미래를 확신하라.” 우리가 반드시 듣고 실천해야 할 말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6.25북한남침전쟁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다가올 자유, 평화, 복음으로의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은 대립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조화를 통해 하모니를 이루어 나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군사적 경제적 우열관계를 바탕으로 해서는 결코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평화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험한 6.25전쟁 세대는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후 세대는 전쟁의 참혹함을 잘 모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나라에 내일이 있습니다. 신명기 4장 9절에서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1950년 6.25 당시에 대한민국은 혼란과 분열에 빠져 있었고 정치 지도자들은 분쟁으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국익은 간데없고, 이념과 자기주장만 넘쳤습니다. 교회도 신사참배와 신학 노선 문제로 분열되었습니다. 국민들도 나라보다 자기 자신을 앞세웠습니다. 결국 주한 미군이 철수했고, 철수 1년 후 북한은 남침했습니다. 화합하지 못하면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물리적 통일은 평화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남북한의 통일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될 2019년도에 한국교회의 화두는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보다 먼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것은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2. 통합(統合)을 넘어서 화합(和合)  


현대는 통합의 시대입니다. 과거 왕정 시대에는 정치가 아니라 왕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시대입니다. 민주주의는 통치가 아니라 정치의 시대이며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회의 구성원은 생각과 의견과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어내는 일입니다. 이해와 소통, 타협과 화해가 없다면 협치가 아닌 힘에 의한 통치나 독재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작년에 저는 그동안 효운동을 하면서 설립했던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개교 21주년을 맞이해서 올해 100세를 맞이하신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님의 효(HYO)특강을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특강에서 세 가지 사회를 설명해주셨습니다. 후진국가, 신생국가는 힘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이며, 그보다 발전한 사회가 법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선진국가는 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개개인의 특성을 억압하고 말살하지 않으면서 공공의 선과 정의를 획득해나가는 선진사회는 질서가 지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지난 2012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이 포럼의 창설자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말했습니다. “나는 자유시장 경제체제 신봉자이지만,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통합이 빠져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죄를 지었다. 이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때가 됐다.” 봉사 없는 자본주의는 결코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통합, 세대와 계층 간의 연대가 더욱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시편 133편에서 제시하는 사회는 하모니공동체입니다. 하모니는 오직 성령으로 됩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이 성령의 역사는 생명과 평화로써 만물을 회복시키고 소생시킵니다. 제가 한국기독교총연합 대표회장이었을 때 ‘화합, 부흥, 섬김과 나눔’이라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통합’을 넘어서는 것이 ‘화합’이기 때문입니다. 통합은 현상이고 화합은 본질입니다. 본질은 마음에 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공동체의 하나됨은 오직 성령으로 되며,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그 하나됨을 지켜야 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서 4:3). 

 
2019년 우리 교단은 성령으로 시작합시다. 통일보다 평화가 먼저, 통합을 넘어서 화합을 이루는 대한민국, 한국교회, 우리 교단, 우리 교회, 우리 가정이 됩시다. 우리의 영이 성령으로 새로워질 때 거짓과 게으름, 이기주의가 떠나고 성실과 정직, 책임과 이타주의로 새롭게 됩니다. 우리의 영이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되고 진리의 영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 그리하여 사랑과 화합의 영으로 하나 되어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지체가 꾸는 아주 작은 꿈이라도 큰 열매로 맺혀지는 한 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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