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_maket_banner.png
순복음홍성교회 라동옥 목사가 직접 농사지은 벌꿀판매
이태근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묵상
본교단 업무협약 업체 / 기하성회원 특별우대
홍영건장로
하나로의료재단
종교인과세

종말의 축복 (계 19:7-10) > 설교

본문 바로가기

종말의 축복 (계 19:7-10) > 설교




최근에 많이본뉴스
오피니언
=> '0', ), ), )?>
=> '0', ), ), )?>
특별기고란
=> '0', ), ), )?>
'0', ), ), )?>
목자의 뜰

종말의 축복 (계 19:7-10)

조태석 목사(전라지방회장, 여천은현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3-12-18 09:41

본문

조태석 목사.jpg

오직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종말의 축복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계시록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 장차 될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계 1:19). 먼저 본 것은 요한 당시 초림 때 있던 일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 있는 일은 7교회 시대, 즉 신약 교회 시대를 그 내용으로 합니다. 최종적으로 장차 될 일은 대환난과 재림, 천년왕국 축복을 다룬 말씀입니다. 

 

종말의 축복은

 

첫째, 세마포 옷을 입게 해주심(8)= 행함의 신앙을 축복해주심.

 

8절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세마포 옷을 입게 해주신다는 것은 행함의 신앙을 축복해주심을 뜻합니다.

 

본문에서 ‘허락하사’는 헬라어로 ‘에도테’란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건네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세마포 옷을 입게 허락하시는 일이 어린양께서 친히 주도하신 일임을, 은혜로 주신 일임을 뜻합니다. 

 

이 일이 궁극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은 바로 재림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림 때 예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그들의 부족함, 연약함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세마포 흰 옷을 주십니다. 이는 혼인식 때 입게 하기 위한 신랑이신 예수님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는 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가장 깨끗한 옷을 뜻합니다. 

 

구약시대 제사장 직분이 거룩한 만큼 세마포는 지극히 거룩한 예복으로 여겨졌습니다. 옷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그 신분과 관련됩니다. 즉 세마포를 입게 해주신다는 것은 그 행함의 신앙을 복주시고 그 신분을 확실히 함을 뜻합니다. 

 

궁극적으로 세마포 옷을 입게 해주신다는 것은 계시록에서 묘사하는 종말 때 성도의 행함의 신앙을 축복해주심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22:1-2).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1-14).

 

위 말씀에서는 혼인 잔치에 무수한 사람들이 청함을 받았는데 그 중 예복이 없는 자가 있었고 주인은 그를 추궁하고 그를 묶어 바깥에 던졌다고 합니다. 이는 재림 때 예복 없는 자, 거짓 성도는 추수 때 불태워질 가라지와 같이 멸망받게 됨을 뜻합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예복을 예비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최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신앙의 삶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세마포 옷을 입혀주십니다. 어린 양 혼인 잔치에 기쁨으로 참예케 하십니다. 

 

계시록 종말의 축복은 행함 신앙, 산 신앙에 축복을 베푸신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앙드레김을 아시죠? 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입니다. 그가 만든 옷은 수백, 수천만원에 달합니다. 그만큼 명품으로 이름 나 있고 그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명예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최후 그는 양자를 두고 그 아들에게 돈을 주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거 아모레퍼시픽에 근무할 때 돈만 있으면 양복을 사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이가 있었습니다. 양복 사서 입는 것이 삶의 낙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이혼하고 가정이 파탄 나고 마침내는 죽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세상 부귀 영화를 누리고 권력을 누림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살기를 바랍니까? 무엇을 구하고 있나요? 천국의 옷입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것을 구합니까? 세마포가 최고의 옷입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딤전 2:9).

 

정결함, 의의 행실로 단장해야 우리는 구원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 그 행실을 기억하심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를 기억하고 온전히 천국 구원을 누리고자 몸부림치며 살아야 합니다. 행함 신앙에 임하는 축복을 기억하고 행함 있는 산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어린양 혼인잔치에 청함 받음(9)= 재림 구원의 축복.

 

9절 “…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종말의 축복 첫 번째는 세마포 옷을 입게 해 주심 즉 행함의 신앙을 축복해 주시고 두 번째로는 어린양 혼인 잔치에 청함 받는 신앙이란 재림 구원의 축복을 뜻합니다. 

 

‘복’이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로 기록됩니다. 이는 계시록에 7번 나옵니다. 성경에 사용된 복은 ‘일시적 복’도 있지만 ‘영원한 복’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원한 축복으로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는 어린양과 그 신부인 교회의 완전한 연합이 이루어지는 최후 천국 혼인 잔치를 뜻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는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축복이요, 더 이상 죄도 슬픔도 눈물도 죽음도 없는 완전한 축복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대한 축복인가요? 우리 모두는 다 계시록이 약속하는 이 축복,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니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6-8).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같은 축복 예언은 이미 구약시대, 지금으로부터 27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됩니다. 곧 우리가 읽은 이사야 25장 6-8절입니다. 이를 보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는 것, 눈물을 씻고 수치를 제하신다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만 7일을 베풀었는데 이는 천국의 영원한 기쁨과 희락을 예표합니다. 이 복을 계시록은 더욱 뚜렷하게 약속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누리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복, 계시록이 약속하고 이사야서에 미리 예언된 재림 구원의 복을 사모하고 또한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실로 지상 낙원을 지향하는 시대입니다. 소위 말하는 인공지능 발명품들이 나타나고 점점 더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인 자동차 시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최근 소위 ‘딥러닝’이란 것이 나타나고 발달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계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을 가진 것입니다. 1~2년 전에 이미 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듣고 읽는다고 합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사람이 결코 기계와 경쟁할 수 없고 기계에게는 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상 낙원 시대가 이르렀는데 사실 이는 스스로 멸망하는 길이요, 파멸에 이르는 상황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루는 지상 낙원이란 것은 사실상 허구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이르고 죽음은 누구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의 말씀, 성경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시록에 예언된 바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재림 구원의 축복을 바라고 고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축복이 임하기를, 그리고 그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하며 그 축복에 온전히 합당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아내가 됨(7)= 성도가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는 축복.

 

7절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종말의 축복 첫 번째는 세마포 옷을 입게 해 주심 즉 행함의 신앙을 축복해 주시고 두 번째로는 어린양 혼인 잔치에 청함 받는 신앙이란 재림 구원의 축복을 주시며 셋째로 예수님의 아내가 되어 즉 성도가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는 축복을 주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아내로 성도를 묘사합니다. 이는 성도가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는 축복을 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준비’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 표현은 ‘헤토이마센’입니다. 이는 ‘단장하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즉 이는 신부가 신랑을 위해 자기를 가장 아름답게,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최고의 미인으로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단장하는 미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의 미인입니다. 여기서 아내가 준비되었다는 것은 바로 재림 신앙을 뜻합니다. 예수님 맞을 준비, 신랑이신 예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자기를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재림 직전 대환난에 승리하여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이는 적그리스도와의 싸움에서 승리함을 뜻합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10).

 

이들은 대환난이라는 엄청난 싸움을 통과해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연합하는 강렬한 재림 신앙으로 온전히 승리하였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핍박에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신부로 온전히 단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자, 단장한 자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구약 성경 호세아서를 보면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내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호세아서 본문에 기록되었듯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장가드시겠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약 성경은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요 3:29). 

 

여기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는 ‘쇼쉬벤’입니다. 예수님이 신랑이요, 교회는 신부이며 아내입니다. 그리고 쇼쉬벤은 주의 종 목사를 지칭합니다. 그저 옆에서 보는 이들, 그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한다면 그 결혼식에 참예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우리는 계시록에 기록된 바 예수님의 아내가 되는 은혜로운 축복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7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결혼식 단계는 사실상 하나님의 구속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부터 일곱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약혼단계입니다. 이는 주의 종이 중매하여 예수님을 알게 하는 단계입니다. 둘째는 빙폐단계입니다. 이는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예물과도 같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를 아내 삼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뜻합니다. 셋째는 할례단계입니다. 이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넷째는 혼인식입니다. 이는 재림 사건을 뜻합니다. 다섯째는 초야입니다. 이는 예수님과 한 부부가 됨을 뜻합니다. 여섯째는 혼인축하잔치입니다. 이는 천년왕국을 뜻합니다. 일곱째는 결혼생활로 아버지 집에 가는 것, 영원 천국을 누리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사도 바울은 이를 기뻐하고 이 진리를 깨닫고 우리를 열심을 다해 예수님께 중매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고 붙들며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는 축복을 늘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 우리를 위해 약속하신 축복을 깨달으십시오. 종말의 축복, 첫째, 주를 위해 살고자, 행하고자 몸부림치는 성도들에게 예복을 입게 하시는 이 축복을 깨달으십시오. 또 재림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는 축복을 깨달으십시오. 이 위대한 축복을 마음에 새기고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이 축복을 온전히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소개구독안내광고안내고충처리안개인정보취금안내 및 이용약관홈페이지 제작안내공지사항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4649 / 등록일 : 2017년 08월 07일
발행인 : 양재철 목사 / 편집인 : 송시웅 목사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해로 81길 22-26(상계동) / TEL: 02-782-0933 / Fax: 02-782-3372 / 발행일 2005년 03월 02일
청소년보호 책임자 : 이은정 (02) 720-6839
Copyright ⓒ 2017 기하성총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