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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대하는 세 종류의 사람 (요 19:23-27)

양재철 목사(증경총회장, 광장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19-05-01 09:41

본문

양재철목사.jpg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날마다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를 마땅히 지며,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을 당하실 때, 그 십자가 앞에서 각각 다르게 행동했던 세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우리도 어떻게 십자가를 져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로마 군병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단지 상관의 명령에 따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이행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이 겪는 십자가 고통은 외면한 채, 그 앞에서 예수님이 입었던 옷을 제비뽑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죄를 위해 죽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그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마저도 너무도 무성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도 이미 오래 전 구약에 예언하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메시아 예언의 성취 중 하나였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 22:18)


이렇게 로마 군병처럼, 당시에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가 없음을 알았음에도, 또한 그를 보호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 언도를 내리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한 편에 있던 강도는 예수님께 죄를 겸손히 고백함으로써, 죄를 용서함 받고 구원을 얻었지만, 다른 한편 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조소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결국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십자가 곁에서 교회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에는 관심이 없는 수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진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이권에만 눈이 밝고, 오만함으로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정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소소한 이익만을 탐하는 로마 군병들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집행한 로마 군병들은 총독의 명에 움직였지만, 정작 그 총독을 배후에서 조종한 것은 유대 교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로써, 구약에서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 랍비라 칭함 받으며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로마의 압제에 벗어나게 해 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던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기대치와는 너무도 다르다며 배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크신 권능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방해하고, 심지어 귀신들렸다 모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교권이 무너질 것을 염려한 그들은 적절한 시기에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게 됩니다.

 

이를 위해 당시 유대교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함께 모략을 꾸몄습니다. 원래 이들은 교리적 차이와 정치적 알력도 있었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전적으로 합력함으로써, 사형 집행권이 있는 로마의 형법을 악용해 예수를 죽이자고 모의했던 것입니다. 이에 당시 집권자인 로마 총독에게 찾아가,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도록 아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위협까지 감행하면서 십자가형을 독촉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21장에 기록되어 있는 ‘포도원 비유’의 내용처럼,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몰아내 내쫓아 죽인 사람들과 같았습니다(마 21:33-41).


이런 대역죄를 감행한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메시아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메시아관에는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들의 유익만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의 생명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지만, 사소한 이권에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세상에 악을 행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몰랐던 군병들과 다를 바가 없고, 더 악하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 속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때, 십자가 곁에는 그의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23절). 아들의 처절한 죽음을 ‘칼이 자신의 마음을 찌른 듯’ 바라보는 어머니와(눅 2:35), 마음 속 깊은 연민의 정을 느꼈던 세 여인들이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며 피를 흘리는 예수님의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열과 성의를 다하며 예수님을 따랐던 남자 제자들 모두 떠나 버린 마당에 예수님의 곁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 외롭고 쓸쓸해 보였을 것입니다.


이들이 보여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이때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셨지만, 부활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의 주검에 향유를 붓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막달라 마리아가 찾아갔습니다(마 28:1, 눅 24:10). 두려움도 이기고 사랑으로 그 무덤을 찾은 것입니다. 가보니 무덤 문이 열려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 도둑맞은 것으로 알고 너무나 놀랐는데, 그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십자가에 대한 사랑이 십자가를 따르게 했고, 결국 부활의 주님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권세를 자랑했던 사람이 아닌 십자가 앞에서 성경 지식을 자랑했던 사람이 아닌 이 여인들처럼 그저 십자가 앞에서 겸손한 사랑을 나타냈던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게 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이는 십자가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2대 지주를 먼저 체험한 이들은 제자들에게 기쁨으로 전할 수 있었고, 모든 이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사랑하고 추종하는 역대 모든 성도들의 그림자가 되었ㄸ습니다.


이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말하며, 십자가의 사랑만이 완전한 것임을 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를 대하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어떤 부류의 속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은 오직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도 내가져야 하는 십자가를 사랑함으로써, 어떠한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 의지하며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 사랑만이 우리를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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