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 하나를 찾아내기까지” (누가복음 15장 1~7절)
남기환 목사(전국지역총연합회 부회장, 옥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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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6-05-26 15:10본문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먼저 1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여기에 등장하는 세리와 죄인들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식사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식사까지 함께 하셨던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이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외면을 받고 있는 사람들, 기댈 곳이 없어서 외롭고 우울한 사람들 등,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새로 교회에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과거에는 사업이 잘 되고 경제적으로 부유했는데 갑자기 사업이 부도가 나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든지, 예기치 않았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중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한편, 2절에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이런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 장인 14장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들은 예수님에게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 소외되고 그들에게 무시 받았던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에 대해 수군거리며 투덜댔던 겁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3절). 이 비유에 주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성경을 잘 알고,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데, 이 비유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비유는 4절에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이스라엘과 같은 유목민족에게 목자와 양의 관계는 특별했습니다. 양은 한 가족이요, 목자와 양의 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도 같았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의 목자의 기쁨이 5절과 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상식적인 눈으로 볼 때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는 오늘 본문 말씀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언급했듯이 유목민족에게 있어서 양은 가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여러 자녀가 있는데, 그 중 한 자녀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자녀들이 여럿 있다고 해서 그 한 자녀를 찾아 나서지 않을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부모라면, 그 행방불명된 자녀에게 온 마음을 쏟게 됩니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너무도 기쁜 나머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잔치까지 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주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절)” 오늘 본문의 결론과 같은 말씀인데, 주님의 관심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잘 드러나 있는 구절입니다. 한 영혼이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 바로 여기에 주님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의 비유 외에도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이야기가 나오는데(11-32절), 이 역시 잃었다가 되찾았을 때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상속분을 달라고 하여 그 몫을 나눠 주었는데, 그는 먼 나라에 가서 방탕하게 살면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맙니다. 재산 탕진 후 돼지 치는 일을 하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를 찾아가서,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으므로,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19절)라고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절)” 그 장면이 아주 감격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이제나저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이미 용서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혹시 지금 주님을 멀리하고 있다면, 이제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로든지 주님 곁을 떠나셨다면, 속히 다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집 떠난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 심정으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기쁨으로 맞아 주실 것입니다.
2. 자기 의, 도덕적 교만을 내려놓으십시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잣대로 자기 의를 내세우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했던 사람들입니다. 2절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자기들은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여기면서, 그 잣대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언급한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에 등장하는 큰 아들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큰 아들이 밭에서 돌아오는데 집 안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무슨 일인지 종에게 물어보니, 집을 나갔던 동생이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동생이 돌아온 것을 반기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29-30).”
큰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께 철저히 순종하며 그 곁을 계속 지켰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가서 방탕하게 살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아버지가 반기고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화가 날 법도 합니다. 형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집 나간 동생을 이제나저제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지 못했던 큰 아들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자기 의를 내세우며 아버지의 처사를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래서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에서는 큰 아들도 똑같이 잃어버린 아들로 다루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큰 아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합니다.
혹시 나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지 않은지,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것도 자기 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 의와 도덕적 교만을 십자가 앞에서 모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3.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잃은 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5절 이하에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느라 이리저리 찾아 헤매며 지쳤을 텐데도, 목자는 그 양을 찾고 너무나도 기뻐서 어깨에 메고(5절) 돌아옵니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이며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6절). 이것이 목자의 심정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7절에서는 한 영혼이 돌아올 때의 기쁨을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투덜거리고 수군거릴 것이 아니라, 자기들도 예수님 곁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함께 협력해야 했습니다.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에서 큰 아들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집 떠났다가 돌아온 동생을 반기며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에게 자기 의를 내세우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온 동생을 아버지와 함께 반겨야 했습니다.
사실 집 나간 동생을 찾아 나서야 할 사람은 형이었습니다. 또한, 세리와 죄인들을 돌보고,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써야 할 사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원망과 불평을 멈추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나서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요, 그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령 충만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것을 깨닫고 이 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그 희생과 헌신, 순교의 터 위에 오늘 우리 교회가 있게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이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적용과 관련하여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주님 품으로 속히 돌아오십시오. 둘째, 자기 의, 도덕적 교만을 내려놓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요,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소원임을 마음에 새기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가치 있는 이 일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으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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