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신 이유 (눅 19:1~10)
김종남 목사(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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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1-12-22 13:29본문
우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목회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모든 주의 종들의 하는 일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너무나 귀한 분들입니다. 교회가 크고 작고, 성도가 많고 적고, 거기에 마음두지 마십시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생명의 길로 가게 할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자가 누구이든 한 영혼이라도 구원의 길로 잘 이끌고 인도하여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오신 이유이며,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장 1절 말씀에서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특별히 삭개오를 만나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많은 길을 다닙니다. 우리의 행선지가 어디이든 그 길목에서 예수님과 같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그리스도의 종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죄인을 부르러 오시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갑니다. 사람도 많았고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뽕나무위로 올라간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다가오셨고,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순결입니다. 누구나 이름에 뜻을 담는 이유가 그렇듯이, 삭개오의 아버지는 삭개오가 순결하게 살기를 소망하고 그 뜻의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세리로 살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가 환경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세리인 삭개오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세금을 많이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일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맡은 일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고, 외면당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간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어찌보면 삭개오로 인해 예수님이 비난받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사실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의 집에 유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죄인이라 부르는 그대로 그가 죄인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둘째, 죄인을 회개케 하러 오시다
사람들이 삭개오를 죄인이라 지칭하였으니, 삭개오는 늘 마음에 상처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 삶이 늘 고통스럽고, 외롭고, 공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뽕나무위에 올라간 것입니다.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도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들어가기에도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많은 사람들의 눈총이 무섭고 두려웠을런지 모릅니다. 그런 모든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다가가셔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삭개오의 집에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 불렀지만, 예수님은 순결이란 뜻의 그의 이름, 삭개오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음성에 삭개오의 모든 고통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의 공허한 마음은 채워졌을 것이고, 외로운 마음은 따뜻해졌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어느새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으심에도 자신의 집에 유하시는 예수님께 삭개오는 고백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8:18-25에 어떤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말씀에 관원은 심히 근심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유는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8:24-25에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도 부자라고 성경은 소개합니다. 삭개오는 자기의 재산을 손해보는 것에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자원하여서 그는 결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그 마음이 회복되었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회개케 하기위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셋째, 구원의 길을 가르치러 오시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며, 토색한 것은 사배를 갚겠다는 삭개오의 결단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삭개오를 매국노와 같이 취급하고 미워하였으나, 예수님은 삭개오가 구원 받았음을 선언하셨고, 또한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삭개오에게만 필요한 말씀이 아닙니다. 다른 듣는 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곧 삭개오에게 죄인이라고 비판하던 그들도 죄인인 것입니다. 삭개오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 하였지만 본인들의 죄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땅에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상대는 죄인이고 자신은 의인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너희 모두가 죄인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곧 너희 모두가 죄인이며, 너희 또한 회개하여 구원받아야 하는 자들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12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예수님은 11절에서 비유의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누가복음 19: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중략
열명의 종을 불러 한 므나씩 나누어준 비유의 말씀을 더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구원의 길,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기 위하여서 오신 것입니다.
넷째,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 잃어버린 자입니까? 죄인이라 불리운 삭개오가 잃어버린자입니다. 또한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죄인이며 잃어버린 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잃어버린 자들을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고, 죄와 교만에 빠져 살았고. 곧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들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주의 종들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말씀을 깨달아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전하는 주의 종으로 삼으셨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맡은 사역이 예수님의 오신 이유와 동일합니다. 성탄절을 맞아 다시한번 마음에 새겨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더욱 힘있게 감당하는 신실한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의 은혜가 전파되기를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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