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뜯어내야 할 지붕 세 가지”(마가복음 2장 1~12절)
김철용 목사(청주지방회 증경회장, 큰나무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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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3-31 13:44본문
오늘날은 의술이 발달하고, 긴급을 요하는 환자를 위해서 119구급대 등이 있어서 좀처럼 중풍병에 걸려 누워계신 분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풍을 맞으셔서 옴짝달싹 못하시고 집에 누워 계시는 분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도 풍에 걸리셔서 누워계시다가 동맥경화까지 겹쳐서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소천하셨기에 누구보다 생생하게 중풍병에 걸린 분을 지켜본 바가 있습니다.
중풍병에 걸린 사람의 특징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중풍병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을 들라면 우선 그가 병든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대부분의 경우에 믿음으로 고침을 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풍병자는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함께 한 친구들의 믿음을 통하여 병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5절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보기도의 능력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 본문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던지 2절, “들어설 저리가 없게 되었는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와서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당연하게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냥 한 사람 비집고 들어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데 환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침상을 메고 온 이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수준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만나면 그 분이 고쳐주실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오늘은 때가 아닌가보다 하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이 친구들은 한가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이 사람들이 참으로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칭찬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지붕을 뚫어낸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 아무런 거치는 것이 없이 술술 풀려나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라는 찬송을 즐겨 부릅니다. 찬송가 후렴구가 이렇습니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문제를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나도 이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늘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주의 영이 함께 하는 자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결국 침상은 예수님 앞에 내리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 말씀하시고, 이어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11절)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으며, 중풍병에서 놓임을 받아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뜯어내야 할 지붕 세 가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뜯어내야 할 지붕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평판입니다.
이 사람들이 지붕을 뜯어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은 지붕을 뜯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지붕을 뚫을 때, 망치로 두들긴다면 큰 소리가 날 것입니다. 그냥 지붕의 기와를 걷어낸다고 하더라도 소란스러울 것은 불 보듯 뻔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붕이 뚫린다면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여 볼 것입니다.
누군가는 어찌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이런 소란을 피우느냐고 책망을 할 것입니다. 적어도 곱게 바라보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은 군대에서 30년을 근무하셨는데, 솔직히 점심시간에 군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제대로 된 식사기도도 못했다면서 부끄럽게 고백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본 사람의 특징은 사람들의 평판을 넘어서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소경은 예수님과 무리들이 있는 곳에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38년 된 혈루증 걸린 여인은 수많은 무리가 운집한 가운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감람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을 제쳐놓고 특별한 기적과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사람들의 평판을 염려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찬양할 때도 사람을 의식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담대해집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어집니다.
둘째, 게으름과 나태함이라는 지붕을 걷어내야 합니다.
중풍병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워서 손 쓰기가 어려운 병입니다. 중풍병자는 보통 몸이 말라 있지 않습니다. 잘 먹습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니까 비둔해집니다. 그러니 무거워서 똑바로 누워있거나 뒤집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듭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편하게 마실 가듯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나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중풍병자를 메고 나가야 하는 마음이 보통의 결심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이 떨어지면 게을러지게 됩니다.
모든 죄악의 시작은 게으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기도를 미루고 찬양을 미루고 예배를 미루고 봉사를 미루고 전도를 미루다가 만성이 되어버립니다. 말씀 한 장, 기도 한마디 하기조차 귀찮아집니다. 여기에 무슨 능력이 있나 싶어서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교회 가는 것 최대한 늦게 가고 싶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와서도 가만히 귀만 기울이면 되는 설교 시간은 좋은데, 박수 치며 힘을 들여 찬양하는 시간도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적 나태함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열정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게으름을 던져버리고,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시길 축원합니다. 이 게으름을 던져버리지 않으면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셋째, 불신앙이라는 지붕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친구들이 그토록 주님을 갈구하였던 이유는 주님을 만나면 이 친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주님을 불신앙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은 중풍병자만큼이나 무력하고 병들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지 모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평판이라는 지붕, 게으름과 나태함이라는 지붕, 마지막으로 불신앙이라는 지붕을 걷어내고,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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