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1992년 지하에서 개척해 부흥의 역사를 일군 순복음참사랑교회 당회장 남천만 목사
“목회는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보다 성령이 주도해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기자 작성일17-09-19 14:08본문
목사는 하나님의 종, 종은 주인을 기쁘게 하는 일꾼
성령은 학문이 아닌 실재… 육이 아닌 성령으로 목회해야
교회, 다시 성령·초대교회 복음으로 돌아가야
참사랑순복음교회 당회장 남천만 목사는 성령의 사람이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후 성령으로 목회해 짧은 시간 안에 대 부흥의 역사를 일구었다.
남 목사는 성령을 학문으로 접근하거나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성령사역은 실재며, 복음은 예수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와 변화, 부흥의 역사를 일구기 위해서는 초대교회 오순절 성령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남천만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언제 예수를 영접했는가?
원래 종교가 없었다. 결혼을 하고 서른 살이 넘어 우연한 기회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교회 생활은 생소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다녔다. 성실하게 주일을 지키며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 성령의 임재는 어떻게 경험했나?
교회 다닌 지 4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담임목사님이 기도원에 가자고 했다. 이번에 큰 은혜가 임할 것이라고 독려했다.
처음으로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가슴이 뜨거웠다. “주여”라고 부르짖는데 저만치 작은 촛불 같은 것이 보였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불꽃이 점점 커지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마치 불꽃 속에 내가 타들어갈 것 같았다. 순간 두려웠다. 거부하다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사실 그때 형편이 굉장히 어려울 때였다. 그래서 차라리 불꽃에 태워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 저 불을 내게 주세요”라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그 뜨거운 불이 다시 내게 임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었고 머리에 구멍이 난 것처럼 시원한 바람이 머리 속을 통과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롭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아닌 성령의 이끌림으로 살았다. 하루아침에 술과 담배를 끊었고 내 자신도 모르게 이전보다 더 교회와 하나님께 몰두했다. 은혜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내게 임한 성령의 강렬한 임재였다.
- 성령의 임재를 경험 후 어떻게 목회를 하게 되었는가?
그날 성령의 임재 후 모든 것이 변했다.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었고 전엔 내 중심적이었지만 이후에는 모든 일이 하나님 중심이었다. 그리고 교회와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부흥회를 참석했는데 부흥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나를 보더니 “너는 참 좋은 주의 종이 되겠다. 다만 너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이제부터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00일 후에는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새겨져서 항상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엔 마음의 부담이 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내가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것이었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로웠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하나님을 의심한 것을 회개했다. 바로 모든 것을 정리하여 감사예물로 드렸다. 그리곤 실제로 100일 후 대전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거기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6개월 만에 파산했다. 오갈 데가 없었다. 그러다 기도원에서 봉사하면서 신학교도 다니고 대전역에서 전도했다.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는데 그들이 복음을 듣고 잘 따랐다. 그러던 중 은혜를 입은 한 집사의 도움으로 교회를 개척했고 그렇게 노숙인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
- 대전에서 노숙인 목회를 한 것인가?
대전역에서 전도하면서 성령의 역사로 노숙인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노숙인 목회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목회는 쉽지 않았다. 신학교 다니는 전도사가 뭐 얼마나 목회를 잘하겠는가? 여러번 아브라함 이야기를 중심으로 설교했었는데 어느 한 노숙인이 갑자기 “전도사님! 성경에 아브라함 이야기밖에 없습니까? 다른 설교도 좀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이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노숙인은 대충 설교해도 될 줄 알았었다. 그때부터 설교하는 것이 두렵고 떨렸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하나님께 3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부어주셔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경이 열리고, 설교에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했다. 술 취한 노숙인들을 가볍게 여기고 대충 목회하려했던 오만함을…. 한 1년 정도 그들과 목회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한 목회는 내 생명을 다해야 한다는 진정한 가치를 말이다.
- 대전에서 언제 전주로 왔는가?
대전에서 성실하게 목회를 하는데 하나님이 대전을 떠나라고 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후 모든 일들을 결정할 때 환경이나 내 생각보다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했다.
그래서 1992년 5월 24일 전주로 왔다. 아무 것도 없이 봉고차 한 대에 모든 것을 싣고 전주로 왔다. 100만원을 성도에게 빌려서 계약금으로 내고, 지하에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남기곤 목사가 회사를 다녀 그 돈으로 생활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녁마다 성령집회를 했는데 집회 때마다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교회에 오는 사람마다 치유되고, 성령을 받고, 은혜에 감격해했다.
17개월 만에 지하실에서 지상 2층으로 이전했다. 80평이었는데 그곳도 금방 차고 넘쳤다. 더 넓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전주 시내엔 그런 예배처가 없었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지금 교회가 있는 곳에 땅을 구입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다. 자연녹지에 절대농지여서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온 교회 성도들이 매일 힘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일하여 주시기 시작했다. 안 된다던 담당공무원이 다른곳으로 발령나고 새로온 담당자를 통해 성전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지금의 아름다운 성전들이 건축된 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 순복음참사랑교회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부흥을 일구었다. 원동력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성령운동이다. 초대교회 오순절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통해 회개의 영이 임하고, 수많은 신유의 역사가 나타났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 방언으로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찬양하면서 예배가 축제의 현장이었다.
무엇보다 저녁마다 기도회를 했다. 7시에 찬양을 시작해서 11시까지 기도가 뜨거웠다. 손만 얹으면 치유가 일어났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모두 새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이러한 성령운동은 교회를 넘어 세계 선교로 이어졌다.
특히 인도에서도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 매번 좋은 결실을 맺었었는데 결국 인도정부는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제는 인도 현지 목회자들을 교회로 초청해서 목회자 세미나를 하고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 교육받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돌아가서 현지에서 세미나를 하면, 소요경비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인도뿐 아니라 네팔, 캄보디아, 대만에서 성령집회를 실시하고 있다. 목회는 성령이 주도해야 한다. 사람의 지식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 오늘날 성령운동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자꾸만 성령을 학문화 시키려고 한다.
성령은 실재다. 복음은 신령한 하나님의 생명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못한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안수하고, 선교했다.
이 땅에는 하나님과 마귀 두 주인이 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서 섬겨야 한다. 하나님을 주인 삼아 섬기든지, 아니면 마귀에게 속해 세상의 풍습을 쫓아야 한다. 중간은 없다. 신앙은 진리의 문제다. 인간적인 학문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순복음교회가 살아나려면 다시 성령으로, 다시 초대교회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이 아닌 실재가 되어야 한다. 예수 복음은 신령한 사역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 성령으로 목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사람을 회심시키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성도들에게 신학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양육해야 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요6:63)는 말씀처럼 교회사역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사역이다. 생명사역은 성령 목회를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목사들은 방언을 부인하고, 방언기도도 못하게 한다. 심지어 찬양할 때 손뼉도 못 치게 한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세상의 트렌드를 따라 간다. 세상 방법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중요한 영의 일, 성령의 법에는 무지하고 둔하다.
목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했을 뿐이다. 성령보다 앞서지도 않았고, 뒤쳐지지도 않았다. 성령과 동행했더니 우리 교회를 이렇게 복되게 해 주셨다.
- 마지막으로 ‘목사’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다. 종은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주인이 명령한 일을 순종하여 이루는 자이지. 자신의 뜻대로 일하는 자가 절대 아니다. 종은 주인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세상에서 착한 일을 많이 했다 해도 나중에 주인이신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신다면 그는 결국 한평생 헛일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목사는 세상이나 양들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주인의 뜻을 잘 헤아려 명령대로 순종하여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끝까지 주의 종으로서 순종하고 순교자의 신앙과 그 반열에 서는 것이다. 세상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