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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 믿음의 유산 계승 > 목회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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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 믿음의 유산 계승 > 목회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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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 믿음의 유산 계승

군산 최초의 순복음교회로 개척된 순복음중앙교회 (최병일 목사)

페이지 정보

작성일18-10-26 14:11

본문

최병일 목사.jpg

순복음중앙교회는 군산시에서 순복음교회로는 최초로 개척된 역사적인 교회다.

최경락 목사가 1971922일 미원동에서 2주 동안 천막부흥성회를 한 후 개척했다. 천막부흥성회를 통해 예수를 믿은 14명 성도를 중심으로 103일 감격적인 창립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후 교회는 안정적으로 부흥하면서 지역에서 순복음교회의 뿌리를 내렸다.

 

최경락 목사는 2005년 장남인 최병일 목사에게 목회를 계승하기까지 군산시 복음화를 위해 한 평생 헌신했다. 순복음교회의 불모지 군산시에 순복음의 깃발을 드높이며, 순복음교단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강화했다.

 

군산시에 첫 순복음교회를 개척하다

 

군산은 대한민국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30% 정도가 예수를 믿는다.

초기 선교사들이 항구를 통해 선교를 시작하면서 군산은 복음의 통로가 되었다. 감리교, 장로교가 대부분이다. 1970년도만 해도 순복음교회는 생소했다. 성령운동에 대한 몰이해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경락 목사는 오순절 운동의 불모지 군산에서 강력한 성령운동을 전개했다. 젊은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순복음운동을 개척해 나갔다.

 

최경락 목사는 19381010일 출생했다. 순복음신학교 7회를 졸업하고, 22세에 전도사 임명을 받았다. 첫 부임지는 1961년 홍성군 송강교회다. 1963년에는 괴산군 청천교회에서 사역했다. 28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1966년에는 부여군 합송교회를 담임했다.

 

일생의 황금기 30대에 군산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순복음교회가 전무한 때이다. 천막을 치고 성령부흥성회를 인도했다. 그 놀라운 역사 속에서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들이 일어나고, 그들을 중심으로 1971103일 교회를 개척했다.

 

 

순복음중앙교회1028.jpg

 

순복음중앙교회 집사안수식.jpg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며 전도하고, 복음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1972720일 군산시 삼학동 275-7번지에 125평을 대지를 구입하고, 이듬해 17일 교회를 건축하고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다.

 

장로교, 감리교 텃밭에 순복음교회가 첫 깃발을 꽂은 것이다. 교회가 건축되고 안정적으로 부흥해 나가자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부산으로 떠났다.

 

19731115일 부산 순복음안락교회 담임으로 청빙 받은 것이다. 부산에서도 그의 성령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장로교고신측이 뿌리 깊은 곳에서 성령운동을 일으키고, 당당하게 1976년에는 부산시기독교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역동적으로 사역을 펼치고 있던 때에 군산에서 뜻하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회가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군산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순복음교회가 분열되면 다시 순복음교회를 개척해 나가는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눈물과 땀으로 개척한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다시 군산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1976820, 최경락 목사는 부산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척박한 땅 군산으로 다시 부임했다. 그리고 평생 오직 한 교회를 목숨처럼 섬기다 200575일 장남인 최병일 목사에게 목회를 계승해 주었다.

 

 

최경락 목사는 아버지 같은 목사였다.

복음에는 양보가 없었지만 목양사역에서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덮어주고, 싸매는 아버지였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성도들을 목양하는 일에 쉼이 없었다. 어려운 가정들을 돌보면서도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62살까지 교회 안에 있는 작은 사택 방에서 기거했다.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마루바닥에서 자며, 고단한 사역을 감당했다. 개인 자가용도 없었다. 모든 사역의 우선순위는 교회, 성도들이었다. 그렇게 목사처럼 일하고, 목사처럼 사시다 하늘로 가셨다.

 

목양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사역하셨지만, 지역 교계와 사회에서는 한 치 양보 없는 원칙주의자였다. 순복음교회 목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일했다. 88년 군산시 경목회장과 시목을 하면서 군산시 성시화를 위해 노력했고, 교회 안에서 금전거래를 철저하게 금하셨다. 장로교가 한 표면, 순복음교회도 한 표라는 원칙을 정하고, 당당하게 지역 교계에서 순복음교회의 위상을 알렸다. 지역연합 활동의 중요성을 알고, 군산시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교단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부산경상지방회 회장, 전북지방회 회장, 70년 총회 기록 서기, 89년 교단통합헌법 기초위원장, 91년 통합추진위원장, 91년 한세대학교 재단 이사 등 주요 요직들을 거치면서 지방회와 교단 발전에도 기여했다.

 

아버지를 통해 목회를 배우다

 

최병일 목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최경락 목사의 목회를 보며 자랐다. 하루 종일 목양에만 애쓰는 아버지, 그 고단한 목사의 삶이 싫었다.

 

나는 목사가 아니라 교사가 되고 싶다.’

최병일 목사는 교사의 꿈을 갖고 원광대사범대학 상업교육과를 졸업했다. 85년 군대 장기 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교사의 꿈은 산산이 부셔졌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것이다. 12번을 수술할 정도로 심각했다. 1년을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긴 투병의 시간, 그 좋던 친구들도 떠나고, 홀로 남겨졌다. 그때야 비로소 다시 일어나면 보람된 삶을 살고 싶었다.

 

신학은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다. 한세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93829일 순복음중앙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엄격했다. 잘못된 것은 엄하게 꾸짖었다. 교회 안 단칸방에 기거하면서 아버지가 그랬듯이 새벽부터 기도하고, 전도하고, 성도들을 돌아보았다. 세상은 변해도 목회 원칙은 변함이 없다. 모든 것은 성경중심, 교회중심, 교인중심이다.

 

 

성도들과.jpg

 

야유회.jpg

그렇게 부단히 목회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200575일 담임목사로 추대되었다.

목회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늘 그랬듯이 목회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목양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이어가는 것이다. 남을 섬기고, 맡은 바 직임에 충성하는 것이다.

 

최병일 목사는 주보에 중보기도를 실어 실천하고 있다. 매 주일마다 성도들은 그 기도문을 읽으면서 타인의 평안을 구한다. 또한 신앙생활의 기본 원리와 내용을 주보에 실어서 신앙을 교육하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주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목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늘절대 의사는 뛰어다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압니다. 목회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군산시라는 소도시에 있지만 교회의 사명인 세계 선교의 비전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 성도들에게 열방을 향한 비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구역 이름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북아메리카, 남미,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로 명명했다.

 

지금 군산시는 새로운 변화에 요동치고 있다. 신시가지가 조성되고, 혁신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교회 생태계도 노령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세상은 변화해도 교회는 처음처럼,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늘 그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배운 목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성태 기자

 

군산 순복음중앙교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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