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으로 받는 하늘의 복, ‘바라크’(בָּרַךְ)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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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6-03-04 10:41본문
히브리어 동사 ‘바라크’(בָּרַךְ)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약 330회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주로 ‘복을 주다’ 혹은 ‘찬양하다’로 번역되는 이 단어의 어원을 추적하면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무릎’과 ‘복’의 기묘한 만남이다. 히브리어 사전은 이 동사의 어근이 ‘무릎’을 뜻하는 명사 ‘베레크’(בֶּרֶךְ)와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언어적 뿌리가 같다는 사실은 구약성경 저자들이 생각한 ‘복’의 개념이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넘어 인간의 신체적 태도, 즉 ‘무릎을 꿇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고대 근동의 맥락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대를 향한 전적인 예우와 항복, 그리고 겸손히 그의 통치 아래 자신을 맡긴다는 신뢰의 표현이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자만이 그분이 부어주시는 하늘의 생명력을 담을 수 있다는 영적 원리가 이 단어 하나에 담겨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 신학 사전인 TDOT(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는 ‘바라크’를 단순한 심리적인 위안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며, 두 가지 신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먼저 ‘관계적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서의 축복은 개별적인 소유가 아니라 복을 주는 주체와 받는 대상 사이의 강력한 연대감을 전제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실 때,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인간과 특별한 언약 관계를 맺으시고 당신의 생명력을 공급하시겠다는 ‘언약적 동행’의 선포다. 다음으로 ‘실재적 관점’에서 히브리적 사고의 복은 말뿐인 덕담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자녀가 번성하고 땅이 소산을 내며 질병이 물러가는 ‘역동적인 실재적 능력’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는 순간 그 말씀이 지닌 창조적 에너지가 현실 세계에 구체적인 열매로 나타나는 현상,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의 실체다.
구약성경에서 ‘바라크’는 주체와 대상에 따라 세 가지 방향으로 다양화되며 그 풍성함을 더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창조의 절정에서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명령이자 약속인 ‘복’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가 개입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표현으로서의 ‘송축’이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1-2).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무언가를 보태드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그 이름을 높여 드리는 찬양의 행위가 곧 ‘바라크’로 승화된다. 하나님 앞에 기꺼이 무릎 꿇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께는 최고의 축복이 된다는 역설이다. 셋째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빌어주는 축복이다.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3-27). 제사장이 백성을 향해 손을 들고 축복할 때, 하나님은 그 선포를 통해 당신의 복을 확증하신다. 이처럼 인간의 축복 기도는 하나님의 복을 이 땅으로 흘려보내는 대리적 통로가 된다.
‘바라크’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존재의 회복’에 있다. 현대인들은 흔히 복을 물질적 풍요나 사회적 지위로 생각한다. 그래서 소유가 적거나 고난 중에 있으면 복이 없는 상태로 성급하게 결론짓곤 한다. 그러나 ‘바라크’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림 아래 거하는 생명의 안전망이다. 진정한 복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는 우월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질서의 회복’인 것이다. 소유가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복의 근원인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가 바라크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이 진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무릎’(בֶּרֶךְ)을 점검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나 자신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하나님의 거대한 생명력과 연결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복 자체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물질과 재능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기 위한 도구다. 타인을 향해 축복의 손을 펴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바라크’를 가장 풍성하게 경험하게 된다. 모든 성취의 순간에 그것이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복이었음을 인정하며, 성공의 자리에서조차 무릎을 꿇는 자만이 그 복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다. 결국 ‘바라크’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땅의 현실로 연결되는 신비로운 통로이자,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거창한 구호나 외형적인 화려함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진실하게 무릎을 꿇는 한 사람의 예배자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낮아져 그분의 통치를 구하며 무릎을 꿇을 때, 하늘의 ‘바라크’는 우리 삶을 통해 세상에 증거될 것이다. 야훼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그 풍성한 ‘바라크’가 오늘 우리의 낮아진 무릎과 인생 위에 영원히 머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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