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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

국제신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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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3-02-24 09:52

본문

 

경건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예배에 잘 참석하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인가? 예의 바른 사람, 혹은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경건한 사람인지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건을 뜻하는 헬라어 유세베이아’(εσέβεια)존경이라는 단어에 좋은이라는 접두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낱말이다. , 경건이란 좋은 존경또는 적절한 존경을 의미하는 말로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신들에 대한 인간의 바람직한 태도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헬레니즘 시대에서도 제의에 참여하는 사람의 태도로 사용되다가, 점차 황제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경건’(εσέβεια, 유세베이아)이라는 명사형 단어는 총 15회 언급된다. 흥미롭게도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고대 그리스 시대나 헬레니즘 시대에 사용된 경건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경건을 설명한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경건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감춰진 비밀이었지만, 깨닫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신비였다. 따라서 경건이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삶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진 복음을 깨닫는 자들이 얻게 되는 신비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제사를 정성껏 드려도, 아무리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해도 그것 자체를 경건이라고 볼 수 없다. 성경적 경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건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도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한 말씀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딤전 6:11). 참된 경건은 행함으로 완성돼야 한다. 그러나 당시 초대교회 안에는 말로는 경건한 척하면서 경건에 관한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자들을 향해 바울은 엄중하게 경고한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딤전 6:3-4).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그 믿음은 반쪽짜리이다. 초대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행위는 경건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만했고 시기와 분쟁을 일삼았으며 가는 곳마다 논쟁을 벌였다. 또한 마음이 부패하여 진리에서 떠나있었다. 그들은 경건을 따른 것이 아니라 단지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을 뿐이다(딤전 6:4-5). 바울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라고 질타하면서 이들에게서 돌아서라고 권면했다(딤후 3:5).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에 따르는 실천이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저울을 떠올려보자. 저울 양쪽에 믿음과 행함이 있다면 경건은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믿음과 행함이 균형을 이루며 성장하는 것이 곧 경건에 이르는 삶이며 영적 성장의 과정이다. 다만, 경건에 이르는 삶을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첫째, 경건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딤전 4:7). 그 연단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이다. 베드로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열매 맺는 성숙의 단계를 여덟 가지로 설명하면서 그중 하나인 경건을 인내 뒤에 두었다(벧후 1:5-7). 인내의 단계를 통과한 사람만이 경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내가 없으면 경건도 없고 영적 성장도 없다. 우리는 믿음 생활 가운데 다가오는 모든 고난을 인내하며 경건에 이르기 위한 연단의 과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의 힘과 의지로 경건을 따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벧후 1:3)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 우리는 비로소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 특히 경건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말세에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경건하게 살라고 당부했다(벧후 3:11-12).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사탄은 우리를 경건한 삶으로부터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깨어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경건에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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