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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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주희 작성일22-10-13 13:55본문
성경에서 ‘건축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오이코도메오’(οἰκοδομέω)이다. 이 단어는 ‘집, 가정, 가족’이라는 뜻을 가진 ‘오이코스’(οἶκος)와 ‘세우다’라는 뜻을 가진 ‘데모’(δέμω)가 합하여 만들어졌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41회 언급되었는데, 다음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먼저 집이나 건물 등의 단어와 함께 ‘짓다, 세우다, 건축하다’라는 일차적인 의미로 쓰였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무리에게 자신의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는데(마 7:25-26), 여기서 ‘짓다’라고 번역된 단어가 바로 오이코도메오이다. 예수님이 포도원 비유를 말씀하실 때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막 12:1)라는 표현이나, 예수님이 율법 교사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눅 11:47)라는 표현에서도 모두 오이코도메오가 쓰였다.
또한 이 단어는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집’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일컬어질 수 있는 것은 모세가 지은 ‘성막’과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의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었다(요 2:19-2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와 성도의 공동체가 성전이며(고전 3:16),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성전의 역할을 했다(엡 1:23). 이 같은 경우 오이코도메오는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
더 나아가 오이코도메오는 성도 개인과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장을 설명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신약의 서신서를 보면 교회마다 교파 간의 분쟁, 차별, 음행, 고소 등 여러 현실적인 어려운 문제들을 겪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 기자들은 오이코도메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영적인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함께 지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에베소서 2장 22절 말씀이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건축은 하나의 돌이나 나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돌과 돌이 만나고 나무와 나무가 서로 이어져야 건축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그것으로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 실제적인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성화의 과정이 마치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처럼 성도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공동체의 영적 성숙을 위해 서로 덕을 ‘세우라’고 강조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여기서 ‘세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가 오이코도메오이다. 바울은 본래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문학과 철학에 능통했던 인재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고, 과거의 자신처럼 지식을 쌓는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착각하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교훈하면서 지식이 아닌 사랑을 강조했다. 즉, 덕은 사랑으로 세우는 것이다. 덕을 세우려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고기를 먹는 일이 다른 형제를 시험 들게 한다면 차라리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까지 말했다(고전 8:13).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오이코도메오’의정신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같은 오이코도메오의 정신이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오이코도메오의 삶이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철저히 희생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위하여 나를 부인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개인과 교회마다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오이코도메오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 안에서의 연합하고 성장하는 오이코도메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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