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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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4-04-24 08:39본문
역대 최저 출산율을 경신하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는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어린이를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여자와 같이 약하고 비천하게 여겼으며,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사회적으로 노예처럼 취급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에 속해있던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셨을 뿐 아니라 어린이와 관련된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다. 성경에서 ‘어린이’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이번 호에서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어린이’라는 헬라어 단어의 원어적 의미와 용례를 살펴보려고 한다.
신약성경에서 ‘어린이’와 관련된 단어들은 파이디온(παιδίον), 파이스(παῖς), 테크논(τέκνον), 브레포스(βρέφος) 등으로 다양하다. 단어의 뜻은 갓난아기, 어린아이, 아이 등이다. 이 단어들의 여러 가지 용례 중에서 예수님과 관련된 본문을 알아보자.
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 기사 및 어린 시절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파이디온)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 2:8).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브레포스)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 2:12).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파이디온)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눅 2:27).
특히 누가복음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신 열두 살의 예수님이 등장한다. “아기(파이디온)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파이스)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테크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0-48). 이처럼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우리와 같이 탄생하시어 어린 시절을 지내시면서 외로움, 배고픔, 피로,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을 모두 느끼셨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이의 성품에 빗대어 설명하셨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파이디온)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요한 말씀과 함께 어린이들을 안고 안수하시며 축복해 주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파이디온)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 10:15-16).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젖을 간절히 바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때문이다. “갓난 아기들(브레포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한편, 어린이와 같은 마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사건에서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제자들 가운데서 누가 크냐는 논쟁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데려다 놓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파이디온)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파이디온)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파이디온)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파이디온)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 18:2-5).
천국에서 큰 자는 자신을 낮추는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사람이다. 또한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파이디온)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눅 9:48). 결론적으로 공동체에서 작고 연약한 자를 돌보고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며 나아가 구원의 문제에까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성경이 어린이 같은 마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어린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들은 작고 힘이 없는 존재임을 알기에 교만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을 돌보고 지켜주는 부모님을 자기보다 나은 존재로 생각하면서, 부모님만 있다면 어떤 일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는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한 어린이의 헌신에서 시작된 것처럼, 어린이는 이것저것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어린이처럼 겸손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모든 근심, 걱정, 염려에서 벗어나 부모님 옆에 있는 어린이처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흔히 부모-자식 간의 관계로 설명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테크논)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고 돌보신다. 간혹 육신의 부모가 자녀를 잊어버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사 49:15). 이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극치를 이룬다.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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