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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해 살펴보는 ‘침례’ > 성경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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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해 살펴보는 ‘침례’ > 성경줌인




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해 살펴보는 ‘침례’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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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5-07-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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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는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등 다양한 문헌에서 언급된다. 이는 침례가 초기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핵심적인 예식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호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침례에 대한 가르침과,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서신서에서 전개한 침례의 신학적 의미에 집중하고자 한다.

 

초대교회에서 침례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나 입교의식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 앞에서 자신이 새 사람되었음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신앙의례였다. 당시의 사회 구조와 문화를 고려할 때, 침례는 개인의 결단을 넘어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는 심각한 행위였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곧, 종교와 정치와 공동체가 얽힌 세상의 질서와 충돌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침례를 뜻하는 헬라어 명사 βάπτισμα’(밥티스마)의 동사형 βαπτίζω’(밥티조)완전히 잠기다’, ‘깊이 잠기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이 단어의 어근이 시사하듯 침례는 단지 표면적인 씻음이나 절차가 아니라, 수혜자가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갔다가 나오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과거의 자아를 벗고 그리스도 안에서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전인격적 표지였다. 이는 성도의 삶이 더 이상 자신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에 철저히 의존하게 되는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침례의 중요성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으나, 초대교회 당시에는 훨씬 더 큰 결단이었다.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신앙적 표현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과 단절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실존적 고백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침례가 단순히 형식적인 입교 예식이나 통과의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복음서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침례 명령을 확인할 수 있다. 마태복음 2819절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명하신다. 여기서 이름’(ὄνομα)이 단수형으로 쓰였다는 점은 삼위 하나님이 서로 구별된 위격이면서도 하나의 본질을 공유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침례는 삼위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시행되는 거룩한 행위로, 성도가 하나님의 내적 교제에 참여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또한 요한복음 35절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물과 성령의 이중적 표현은 오래전부터 침례와 성령 침례를 동시에 암시하는 구절로 해석되어 왔다. 전통적 교회는 이를 물침례를 통한 거듭남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함께 바라보는 통합적 관점에서 이해하였다. , 침례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영적 관문으로서, 단지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성령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통로였다.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서들은 침례를 다양한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바울은 로마서 63-4절에서 침례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단순한 의례적 참여가 아니라, 성도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실제적으로 연합된다는 신비적 의미를 지닌다.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옛 자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의 생명 안에서 새 사람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는 곧 성도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갈라디아서 327절에서 바울은 침례를 의복에 비유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는 침례가 성도의 정체성을 바꾸는 상징임을 보여준다. 고대 사회에서 의복은 신분과 소속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표현은 과거의 모든 사회적 구분을 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재에 참여하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뒤따라 나오는 28절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유인,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선언하며, 침례가 공동체의 동일한 신분을 부여하는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골로새서 212절에서는 침례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앙의 응답으로 해석된다. 바울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함께 일으킴을 받았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침례가 인간의 자격이나 공로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의해 성취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이 곧 침례의 근거이며, 이는 곧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된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321절에서 베드로는 침례를 실천적 차원에서 풀어낸다. 그는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고 말한다. 침례는 단순히 외적 정결의 표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진지한 결단과 믿음의 표현이다. 이는 곧 침례가 구원의 보증 수표가 아님을 시사하며, 오히려 구원받은 자가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임을 밝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침례는 단순한 입교의 절차나 외적 상징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어가는 시작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성결한 삶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자각의 자리이다. 침례는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건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다. 우리 교단이 속한 오순절 전통에서는 침례와 성령 침례, 거룩한 삶의 연계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침례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선언이며, 이는 곧 날마다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실천적 사명이다.

 

목회자 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단지 침례를 집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침례가 성도의 삶 속에서 성화의 열매로 나타나도록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침례 이후의 삶까지도 복음 안에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침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세상을 본받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믿음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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