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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 ‘헤세드’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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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5-12-19 13:55

본문

 

헤세드’(חֶסֶד)는 구약성경에 약 250회 등장하지만, 누군가에겐 낯선 단어일 것이다. 히브리어로 사랑’, ‘자비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한글 성경에서는 보통 인애인자또는 자비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번역으로는 헤세드가 지닌 그 깊고 넓은 의미를 다 담아내기 어렵다. 그만큼 헤세드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신앙의 원천을 표현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독특하고 신실한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관계의 핵심을 관통하는 헤세드를 단순한 정의를 넘어 성경 원어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헤세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한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체험될 수 있을지 제안하고자 한다.

 

헤세드는 왜 특별한가? 헤세드를 이해하는 것은 구약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하신 언약에 기초한 신실함과 변하지 않는 지속성에 그 핵심이 있다. , 언약 안에서 변함없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드러내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헤세드이다.

 

히브리어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여러 단어가 있다. ‘아하바’(אַהֲבָה)는 흔히 남녀 간의 사랑이나 친구 간의 우정을 나타내지만, ‘헤세드는 이와는 차별화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헤세드의 진정한 의미는 언약적 사랑이다. 이는 쌍방 간의 약속, 즉 언약을 기반으로 하는 사랑으로, 설령 상대방이 약속을 어길지라도 변함없이 지속되는 신실함과 헌신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기초하여 헤세드를 베푸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고 당신의 헤세드를 끊임없이 보여주셨다. 이는 인간의 사랑처럼 조건적이거나 변덕스럽지 않고, 영원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준다. 따라서 헤세드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신실한 사랑’, ‘언약에 기초한 자비라는 깊은 의미를 나타낸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 헤세드가 갖는 핵심적인 의미는 언약, 신실함, 그리고 구원이다. 첫째, 언약에 대한 신실함이다.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만났을 때, 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헤세드를 언급한다. 이는 단순히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결과로 이해된다. 둘째, 헤세드는 구원과 자비의 개념과도 깊이 연결된다. 시편 기자는 수없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찬양하며, 자신이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헤세드로 표현한다. 시편 136편은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를 반복적으로 외치는데, 여기서 인자하심이 바로 헤세드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수많은 구원의 사건이 바로 헤세드의 발현임을 증언한다.

 

헤세드가 사용된 대표적인 구약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야훼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3:10). 이 구절에서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섬긴 행위를 헤세드’(인애)라고 칭찬한다. 이는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약적 신실함을 보인 룻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처럼 헤세드는 단지 하나님께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언약적 사랑의 덕목임을 보여준다. 룻의 헤세드(인애)는 그녀의 삶에 하나님의 헤세드가 임하는 통로가 되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 이 구절은 하나님의 헤세드’(인애)가 단순한 종교적 의식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강조한다. 호세아 선지자는 겉으로는 제사를 드리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헤세드(인애)라는 것을 말한다. 이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나오는 진정한 사랑과 신실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23:6). 다윗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끝없는 돌보심을 선하심과 인자하심’, 헤세드로 표현한다. 여기서 따르리니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추적하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다윗을 적극적으로 좇아와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역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헤세드에 의해 둘러싸여 있음을 고백하며, 그 은혜 안에서 영원히 거하겠다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헤세드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헤세드를 몸소 실천하셨다. 죄인들을 찾아가시고, 약한 자들을 치유하시며,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에 빠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헤세드를 보여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헤세드를 경험하게 되며, 동시에 서로에게 헤세드를 베푸는 삶을 살도록 요구받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헤세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성경의 모든 말씀은 현재적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헤세드는 단순히 과거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세상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헤세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실함이 부족하더라도 변치 않고 우리를 향해 있다.

 

헤세드’, 이 고대 히브리어 단어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존재 의미를 관통하는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다. 결국 헤세드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우리 삶의 근원적인 희망이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 어떤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반석이 되어준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서로를 향한 헤세드를 실천할 때, 이 세상은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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