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부활의 생명을 남깁니다”
서동근 목사(동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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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9-04-17 13:52본문
조선시대 한양에는 노량진, 동작진, 한강진, 송파진, 양화진, 총 5개의 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양화진은 인천과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해상 통로의 전진기지이자,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조선에 들어오는 길목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곳에는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었고, 선교사이자 고종의 시의로서, 광혜원 2대 원장으로 있던 존 헤론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는 34세의 나이에 전염병에 감염되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이 곳 빈터에 묻히게 되면서부터 양화진은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된 것입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총 15개국 417명의 외국인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 중 선교사는 90명, 선교사 가족은 55명, 나머지 272명은 선교사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저는 가끔 2호선 전철을 타고 이 곳 ‘양화진 묘원’을 갑니다. 이 곳에서 혼자 걸으며 사색에 잠기곤 합니다. 그리고 묘원을 걷다 종종 묘비에 쓰여 있는 글을 읽을 때마다 저의 가슴은 저미어 옵니다.
그 중에서도 루비 레이첼 켄드릭 선교사님의 묘비 앞에만 설 때면 발걸음이 늘 멈추곤 합니다.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개성 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고아들을 돌보았던 그녀는 1907년 8월 28일 시애틀에서 아시아로 출항하는 미네소타라는 배를 타고 조선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녀는 영어 교사로 고아들을 돌보다가 그만 맹장염에 걸려 1908년 6월 20일 25세의 짧은 생애를 마치고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녀는 죽기 한 달 전에 친구들과 지인들에 쓴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에게 선교사의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설명할 단어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에는 추수할 것은 많고 일꾼들이 너무나 적습니다. 여러분들이 수십 명씩, 이십 명씩 이 곳으로 올 것을 부탁합니다.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더라도 조선을 위해 모두 바칠 것입니다.’
루비 레이첼 켄트릭 선교사는 25세의 나이에, 조선에 온 지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텍사스로 보내지 말고, 조선 땅에 묻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어쩌면 그녀는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조선에 살기 위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선 땅에서 한 알의 밀알로 심기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3~15절의 배경을 살펴보면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라는 이기적인 다툼에 혈안이 된 제자들에게 친히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옳으니라’라는 단어는 ‘빚을 졌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뒤이어 15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본을 보였다는 것은 이런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영적이며 인격적인 겸손과 사랑의 봉사 정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랑을 ‘안다’에서 ‘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기노스코’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을 통하여 체득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고, 이후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사는 생명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남길 것은 바로 부활의 예수입니다.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실패했든지 혹은 성공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라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곳에서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아낸다면 그는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새 생명이 살아나는 부활의 아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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