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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습니다

김경호 목사(경기북인천지역연합회 재무, 순복음은혜바다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19-12-23 12:17

본문

김경호 목사 .jpg

오늘(12월 2일) 아침 신문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징글벨 등 크리스마스 캐롤 14곡을 인터넷 사이트 ‘공유마당’을 통하여 음원을 공개했다고 밝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거리에서 캐롤송이 사라지면서 성탄절은 잊혀져가는 추억 속의 절기가 되는듯하여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기억 저편에 그렇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봄 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아련히 떠오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가슴도 살짝 저미어옵니다. 벌써 35~6년 정도는 되었나 봅니다. 신학교 시절 안성에서 목회하시는 선배 목사님 교회로 봉사를 다닐 때 이야기입니다. 시골인지라 좀 떨어진 세 개 마을의 중간쯤 되는 언덕 위에 아주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물씬 나도록 눈이 참 많이도 왔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성탄절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성탄절 별 등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가느다란 나무막대기를 이리 엮고 저리 엮고 그리고 겉에는 창호지를 발라서 별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안에는 전깃불로 불을 밝힐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생각해보건대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그 시절에서 본다면 꽤 수준 높은 성탄절 소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며칠을 아이들과 애쓴 결과 제법 그럴싸한 성탄절 별 등을 교우 가정 수만큼 만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 때는 성탄절 새벽에는 어김없이 새벽송으로 성탄절의 새벽을 깨웠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도록 하얀 눈이 많이 내린 성탄절 새벽에 우리는 별 등을 들고 교우님들 집 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러면 교우님들은 불 밝힌 안방에서 환한 얼굴로 뛰어나오셔서 반갑게 맞아주시고, 따뜻한 어묵 국물에 사랑을 듬뿍 담아서 뻘겋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얼굴과 두 손을 녹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어묵이 아니라 하얀 봉투였습니다. 이미 성탄절 별 등은 판매하기로 광고가 되어 있었습니다. 딱히 가격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서 집집마다 성의대로 주시면 그만입니다. 아이들이 만든 것이 뭐 대단한 것이었겠습니까만, 교우님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하얀 봉투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 돈으로 불우이웃돕기를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흐른 어느 날, 진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잘 생긴 청년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해 중학교 1학년이던 아이가 자라서 벌써 청년이 되고 괜찮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가 와서 그 때 그 해, 눈이 엄청나게 왔던 그 해,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성탄절 별 등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나는 별 등을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함께 만든 별 등속에는 크리스마스가 들어있고, 발이 푹푹 빠지도록 수북이 내린 눈도 들어있으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어묵도 들어있고, 뻘겋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얼굴도 들어있으며, 하얀 봉투 속에 담긴 교우들의 사랑도 들어있는 등….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목사로서 교우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변하니 교회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아이들과 교우들의 가슴 속에 고이고이 간직할 만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슬픈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산으로 목회지를 옮긴 후부터 해마다 송구영신예배를 마친 후에는 자원하는 교우들과 함께 임진각으로 달려갑니다. 새해 첫 날 새벽에, 임진각으로 달려가서 북풍이 휘몰아치는 북녘땅을 바라보며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참 많은 것들을 호소합니다. 이에는 세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이며, 또 다른 하나는 추억 만들기입니다. 새해 첫날 새벽에 임진각에서 벌벌 떨면서 먹는 어묵 맛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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