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17세기 영성: 아미쉬의 역사와 신앙공동체 / 김태식 박사(침신대 교회사 겸임교수, 수산침례교회 담임목사)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기하성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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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자 작성일17-11-14 10:43본문
21세기의 17세기 영성: 아미쉬의 역사와 신앙공동체
김태식 박사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겸임교수
세종시 수산침례교회 담임목사
1. 들어가는 말
“순종, 겸손, 간소함을 추구하는 현대판 1세기 기독교인,” “남다른 삶의 길을 택한 보통의 사람들,” “나눔의 공동체,” “평원의 사람들”(The Plain People), “땅의 사람들,” “미개한 농사꾼의 무리,” “사교나 사이비 집단,” “가정폭력과 유아노동착취의 사람들,” “완고한 사람들,”“환경오염과 동물학대의 사람들.” 이 모든 호칭들은 아미쉬(The Amish) 신앙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한 신앙공동체가 이처럼 극과 극으로 평가받는 일도 드물 것이다. 이들이 21세기 사회에서 주목 받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과도한 물량주의와 상업주의, 지식추구와 경쟁의식, 성과제일주의와 성공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되며 오히려 무기력해버린 현대사회와 개인들과 정반대의 신앙의 가치들을 가지고 신앙공동체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 폭력, 개인주의, 편리함 추구, 물질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체성(Identity)에 반하여 단순함, 비폭력, 불편함을 추구하고 있다.
아미쉬 신앙공동체는 국가종교체제를 거부하며 유아세례를 반대했던 16세기 유럽의 재침례교(The Anabaptists) 가운데 하나인 스위스 형제단(The Swiss Brethren)으로부터 1693년 야곱 암만(Jakob Ammann, 1644 혹은 1656-1730)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재침례교에 속한 다른 교단인 메노파, 야곱파와 그 신학과 실천면에서 공통적인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 16세기에 초대교회를 회복하려 했던 재침례교운동은 조지 폭스(Goerge Fox, 1624-1691)와 퀘이커교, 경건주의 운동과 형제교회, 존 웨슬리, 청교도운동, 침례교에 이르기 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교권주의에 항거하며 영적인 갱신을 추구했던 12세기 말 프랑스의 왈도파(the Waldensians)와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는 삶”을 살며 진정한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기를 원했던 프란시스코파(Spiritual Franciscans)와도 신학적으로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아미쉬 신앙공동체는 재침례교 그룹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더욱 보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신앙노선을 걷고 있다. 주로 교회의 권징, 예배의 양식, 사회생활, 가정생활에서 다른 그룹들과 큰 차이가 있으며 주요 아미쉬 분파로는 the Old Order Amish, the New Order Amish, the Beachy Amish, Amish Mennonites가 있다. 오늘날 아미쉬는 북미 지역 내에 25개 분파에 대략 1700개의 지역교회가 분산되어 있으며 미국의 28개주와 캐나다에 분포하고 있다. 그룹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며 대표적인 Old Order Amish는 주로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에나 주와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인구는 2017년 기준 318,000명이다. 1992-2013년 동안 아미쉬 인구가 120% 증가했는데, 동일한 기간 미국의 인구 증가율이 23%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들의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Ohio State University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미쉬인구는 2010년에 345,475(429개의 정착지), 2020년에 477,029(557개의 정착지), 2030년에 660,058(684개의 정착지), 2040년에 912,258(812개의 정착지), 2050년에는 100만명(929개의 정착지)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늘날 유럽의 재침례교 신자들은 1937년 마지막 교회가 문을 닫은 이후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주로 미국과 캐나다에 건전하며 성서적인(soundly biblical) 스위스 형제단(아미시), 메노파, 후터파가 존재하고 있다.
본 논문은 아미쉬 신앙공동체의 출발과 그 여정, 주요 신학, 그리고 이에 따른 공동체의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 신앙공동체가 오늘날 현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평가하고자 한다.
II. 아미쉬의 시작과 주요 신학
1. 시작
아미쉬 신앙공동체의 태동기는 1693-1711년으로 스위스 메노파 교회의 한 젊은 장로였던 제이콥 암만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메노파가 당시의 시대분위기에 따라 원래의 교리에서 벗어나 규칙을 엄격히 지키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1644년 2월 12일(?) 스위스의 Simme Valley의 한 작은 마을인 Erlenbach(현 스위스 취리히)에서 재단사 아버지인 미카엘과 안나 러프 암만부부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암만이 재침례교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1693년으로, 프랑스의 알자스(Alsace) 지역의 한 이주민 교회의 지도자요 장로였던 암만은 모교단인 스위스 메노파에 메노 시몬스의 서적들과 도르드레흐트신앙고백(Dordrecht Confession of Faith, 1632)에 명시된 대로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알자스지역에 메노파의 교회가 생기게 된 배경은 초창기 재침례교인에 대한 당국의 무자비한 핍박과 관련이 있다. 1527년 1월 5일 로마가톨릭 사제의 사생아로 태어났고 쯔빙글리의 제자였던 펠릭스 만쯔(Felix Manz)가 재침례교인으로 첫 순교자가 된 이후, 1561년 또 다른 전직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신부였던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 시몬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메노나이트 혹은 메노파로 불림)가 66세의 나이로 죽고, 1550년부터 1625년 사이에 핍박이 고조되자, 대부분의 스위스 재침례교인들은 시골지역이나 산골로 피신했고 그중에 일부는 프랑스의 알자스(Alsace) 지방으로 이주했다. 바로 이곳의 한 지역교회에서 장로였던 암만은 성찬은 1년에 두 번, 세족례시행, 신자들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율, 제명된 구성원들에 대한 기피(avoidance)를 주장하게 된다.
암만은 왜 이러한 주장을 해야만 했을까? 도대체 재침례교의 신학적인 특징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두 가지 주요 재침례교 신앙고백을 알지 못하면 이러한 암만의 개혁정신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주요 신학
재침례교의 신학을 대표하는 신앙고백서는 슐라이타임 신앙고백(Schleitheim Confession, 1527)과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Dordrecht Confession of Faith, 1632)이다. 전자는 1527년 재침례파 지도자들이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지역에 있는 슐라이타임에서 비밀모임을 갖고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7가지로 정리, 발표한 것으로 이후의 대부분의 제침례파 그룹들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후자는 1632년에 4월 21일 네덜란드 메노파 지도자들이 네덜란드의 도르드레히트에서 모임 후, 자신들의 신앙을 18가지 요약, 발표한 것으로 아미쉬를 포함한 대부분의 재침례파 그룹들에게 슐라이타임 신앙고백과 함께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1) 슐라이타임 신앙고백(7조항)
이 신앙고백은 집회내의 질서와 규율, 침례, 제명, 주의 만찬, 세상과의 분리, 목사들, 무력, 서약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침례: 침례는 의식적으로 회개하고 자신들의 삶을 바로잡고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음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유아들은 해당하지 않는다.
* 출교: 그리스도인은 규율과 함께 살아야 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죄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18장의 명령을 따라야 하며, 최종 출교는 빵을 떼기 전에 항상 일어나야 한다.
* 주의만찬: 침례 받은 사람들만이 주의만찬에 참여해야 하며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며 그 속에 실제로 몸과 피는 존재하지 않는다.
* 악으로부터의 분리: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배반의 영을 가진 자와 교제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자들과는 모든 일에 같이 해서는 안 되며 그 어떠한 무기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 목회자들: 좋은 평판의 사람으로 가르치고, 훈육하고, 출교하고, 기도와 주의만찬을 시행한다.
* 비폭력: 그 어떠한 상태에서도 폭력은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이 공직자가 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으며 공직자는 하늘의 규칙이 아닌 이 세상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영적이어야 한다.
* 맹세: 예수님께서 금하신대로 그 어떠한 맹세도 해서는 안 된다.
2)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21개 조항)
이전의 슐라이타임 신앙고백과 모든 면에서 비슷하나 세족식(the Washing of the Saints’s Feet), 결혼(Matrimony), 세속권위의 직분(the Office of the Secular Authority), 복수(Revenge), 파문(Ban 혹은 Separation), 분리된 자들에 대한 기피(Shunning the Separated) 항목이 추가되었고 교회로부터 추방 혹은 분리가 강화되었다. 추가된 항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1조항. 세족식: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겸손의 표시로 신자들은 지켜야 하며, 이것을 통해 그분의 거룩한 피로 씻음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요 13:4-17; 딤전 5:10)
* 12조항. 결혼의 상태에 대하여: 결혼은 두 사람의 믿는 신자가 하는 것으로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한 침례를 받아야 하며, 한 주의만찬에 참여해야 하며, 동일한 신앙, 교리, 실천을 해야 한다. 결혼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후 7:2; 고전 9:5; 창 24:4; 28:2; 고전 7:39)
* 13조항. 세속권위의 직에 대하여: 하나님의 법, 뜻, 명령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세상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대로 관세(custom), 공물(tribute), 세금(taxes)을 바쳐야 하며 국가의 복지와 번영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롬 13:1-7; 딛전 2:1; 3:1; 벧전 2:17; 마 22:21; 17:27)
* 14조항. 복수에 대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기를 금하셨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야 하며 우리의 적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배고프거나 목마르면 적들이라도 먹게 하고 마시게 해야 한다(마 5:39; 롬 12:19-20; 고후 4:2)
* 16조항. 교회의 파문 혹은 분리: 목적은 파괴가 아닌 교정이며 교회 안에서 불순한자들로부터 순수한 자들을 구별하기 위함이다(약 5:19; 딛 3:10; 고전 5:13)
* 17조항. 분리된 자들에 대한 기피: 사악한 생활, 이단의 교리에 빠진 자는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며 그러한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마시지도, 교제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적들이 아니라 형제들이요 훈계하여 회개하면 다시 받아주어야 한다(고전 5:9-11; 살후 3:14)
3. 아미쉬의 시작과 주요 논쟁
1690년 스위스와 라인강((Rhine) 남부에 거주하고 있었던 메노파 일부는 여전히 계속되는 박해로 고향을 떠나 최초 1000여 명의 신자들이 프랑스의 알자스와 팔라틴네이트(Palatinate) 지역으로 이주하여 신앙공동체를 유지했다. 이들 가운데 스위스태생으로 젊은 암만도 속해있었다. 이들의 이주원인으로는 박해 이외에도 군복무를 피하기 위한 것도 포함되었다. 이곳 알자스의 한 메노파 지역교회에 (스위스로부터) 이주 온 장로 암만이 교회의 영적갱신을 주장하자 교회는 순식간에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스위스 메노파와 알자스 이주집단간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1693년 암만은 교회개혁의 방법으로 더욱 자주 주의만찬을 실시할 것(1년에 2회), 세족식 거행, 보다 엄격한 교회규율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동안 메노파는 1년에 단 한차례만 주의만찬을 실시하고 있었고, 세족식은 거의 생략하고 있었고, 교회규율 준수도 시류에 맞춰 완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암만이 주의만찬을 1년에 2회 실시하자고 주장한 이유는 성찬식을 통해 신자 개인의 삶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더욱 자주 갖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세족식은 신자가 겸손함을 체험할 수 있는 의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보다 엄격한 교회규율 준수의 요구는 계속해서 거짓말하고 있는 한 여인에 대한 교회의 관대한 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여인에 대해 교회는 엄격히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허용하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인 기피(Meidung, 혹은 social avoidance로 교회에서 추방된 사람들과의 교류를 금하는 교회법)와 세족식에 대한 스위스 메노파와 프랑스 알자스 공동체의 이견 때문이었다.
스위스 메노파는 사회적 기피와 보다 엄격한 출교가 1527년의 슐라이타임신앙고백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사회적 기피는 ‘새로운 교의’로 이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이들은 또한 문자적인 세족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알자스 공동체는 1632년의 도르드레흐트신앙고백이 규정한 추방에 따른 사회적 기피와 세족식을 엄격히 지키고 있었다. 암만은 스위스 메노파가 이러한 문제들을 잘 지키고 있지 않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순수성을 해치는 것으로 보고 보다 엄격한 집행을 요구했던 것이다.
암만의 이러한 주장에 또 다른 사역자요 나이든 유명한 장로인 한스 라이스트(Hans Reist)와 베네딕트 슈나이더(Benedict Schneider)는 죄에 따른 회피는 “신체적인 것이 아닌 단지 영적인 것”이어야 하며(마 15:11, 예수님도 죄인과 세리들과 식사하셨다고 주장하며) 주의만찬은 1번으로 족하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이에 암만과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세 명의 사역자들(울리 암만, 크리스티안 블랑크, 니콜라스 아우스부르거)은 스위스 메노파가 기피와 세족식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 공동체를 방문하여 보다 엄격한 사회적인 회피를 주장하고, 계속해서 또 다른 지역(Swiss Emme River Valley)를 방문하며 동일한 주장을 반복했다. 이에 화가 난 라이스트와 그를 동조하는 사역자들이 이 문제해결을 위한 모임에 불참하자, 암만은 1694년 2월 20일에 “경고의 편지”(Warning Letter)를 라인강 남부와 스위스 지역에 있는 메노파 교회들에게 보내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출교시키겠다고 공개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출교시켰다.
“목사들, 주교들과 함께 나 야코프 암만은 판단과 결심에 의해 이미 추방되지 않은 이, 남자와 여자, 목사와 평신도에게 이 전갈을 보내는 바이다. 우리 앞에 당장, 또는 2월 20일까지 나타나 당신이 이 논쟁적인 조항들을 믿는지 여부를 밝혀라. 즉 추방된 자들을 기피하고, 거짓말한 자들을 교회에서 추방하고, 신의 말씀에서 멀어진 자들은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그대들이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의 가르침과 강령에 따라 목사와 장로들에 의해 추방될 것이며, 특히 나 야코프 암만이 분리파 교회 신도로서 그렇게 할 것이고 그대가 신의 말씀에 따라 회개하는 그날까지 기피당하고 꺼려질 것이다. 이글을 모두 돌려보도록 한 명 한 명씩 전달하라.”
암만을 대표로하는 알자스 공동체와 스위스와 라인강 너머의 팔라틴 공동체의 지도자들의 이견으로 인한 분열은 결국 스위스 메노파로부터 아미쉬가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분열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아미쉬의 지도자들이 출교를 너무 빨리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여 사과했지만 이미 불신의 골이 깊어진 스위스 메노파는 이 사과를 거절함으로서 양자의 분열은 기정사실화되었다.
1693년에 아미쉬는 알자스, 팔라틴네이트, 스위스를 중심으로 작은 그룹에 불과했다. 이 그룹은 계속해서 추방당하고, 새로 개척되고 있었던 식민지 아메리카의 유혹, 동유럽에 정착할 기회를 맞아 서서히 흩어지게 되었다. 1700년대 까지는 라인강 남부의 계곡(the south Rhine Valley)에 거주하는 작은 공동체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소규모의 아미쉬가 새로운 역사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1736년 북미로 이주를 시작하면부터였다.
4. 신대륙 이주와 발전
스위스 메노파가 1671-1711년 동안 스위스를 떠나 프랑스 알자스와 독일의 팔라틴으로 이주한 이후, 메노파가 본격적으로 이주를 시작한 시기는 유럽 전체에 극심한 추위가 닥쳤던 1709년으로 보고 있다. 리테르사의 한 선박이 이들 지역에서 메노파를 추방하기 위한 일환으로 배 한척에 메노파들을 가득 실고 미국의 캐롤라이나로 출항하려 했으나 네덜란드가 허가를 해주지 않게 되자 곤경에 처한 이들을 베른 당국이 도와주게 된다. 베른당국과 네덜란드 당국간의 협상을 통해 메노파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네덜란드어와 그곳의 교회를 받아들여 결국 네덜란드 메노파와 합병하게 이른다.
아미쉬 사람들이 언제 정확히 미국에 도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1736년에 대략 500여 명의 아미쉬들이 “거룩한 실험”(holy experiment)이었던 펜실베이니아의 Berks County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아미쉬 사람들이 대규모로 미국으로 이주한 시기는 크게 네 가지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앞서 500여 명의 이주와 함께 1737-1754년 사이로 1731년 21가족의 아미쉬 사람들이 차밍 낸시호(Charming Nancy)를 타고 83일간의 긴 항해 끝에 필라델피아 주의 펜실베이니아 Lancaster County에 도착했고 다른 아미쉬들 또한 Hesse, Wittgenstein, Waldeck, Marburg와 같은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이주했다. 두 번째 이주는 1804-1810년 사이로 몇몇 가족들이 미국의 중서부(Midwest)로 이주했다. 세 번째 대규모의 이주는 1817-1860년 사이로 대략 3,000명의 아미쉬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주로 오하이오, 일리노이스, 인디에나, 캐나다 온타리오, 뉴욕, 아이오와 등지에 정착했다. 네 번째 이주는 50여 가족들이 미국의 중서부지역(Midwestern)에 정착했다.
이러한 정착과정을 거친 아미쉬 사람들은 현재 북미 지역 내에 25개 분파에 대략 1,700개의 지역교회, 미국의 28개주와 캐나다에 분포하고 있다. 1920년에 불과 5,000명이었던 아미쉬 신자들이 오늘날 318,000명으로 증가한 것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소규모 종교단체에서 이처럼 놀라운 성장을 가져온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이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신앙에 따른 공동체 생활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들이 공동체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신앙은 앞서 언급했듯이 슐라이타임 신앙고백과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이다. 이 신앙들에 기초해 아미쉬 신앙공동체(가장 큰 그룹인 the Old Order Amish를 중심으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 신앙과 실천에서의 특징을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III. 아미쉬 공동체의 신앙과 실천
아미쉬 공동체가 다른 그룹들과 달리 특이한 점은 세상과의 분리, 파문(분리)과 기피, 세족식, 기타 예배와 생활방식에서의 차이를 들 수 있다.
1. 세상과의 분리(공동체생활)
이 세상을 어떻게 대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으로 이들은 야고보서 1장 27절의 말씀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미쉬가 바라본 세상(세속)은 “이 세상의 주관자가 다스리는 영역”이요 “신자를 유혹하고 파멸로 이끄는 곳”이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빌 2:15)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에 방해”되는 곳이므로 반드시 멀리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하며(마 6:33), 세상의 권위자에게는 복종하지 말아야 하며(행 5:29), 믿지 않는 자와 같이해서도 안 되며 그들 사이에서 떨어져야 하며(고후 6:14-7:1),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신자들도 이 땅에서 완전해야 하며(마 5:48),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신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하며(요 17:14),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약 4:4), 세상의 법정에 호소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6:1-8).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도적 전통을 따라 초대기독교공동체를 이 땅에 이루며 사는 것이다. 번드 랭인(Bernd G. Langin)이 언급한대로, 아미시의 핵심가치 세 가지는 공동체(community), 사랑(love), 평화(peace)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을 적용하려는 노력이 공동체로 나타나며 이러한 공동체는 사랑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여기에서 평화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공동체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의 다음의 언급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공동체를 떠나서 혼자 사는 것은 단지 쓸쓸함에 불과하다”(Solitude without community is merely loneliness).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모든 물건(재산)을 함께 나누는 “물질의 공동체”를 실시하지 않는다. 바로 이점에서 후터파와는 다르다.
공동체생활은 아미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가운데 하나로, 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세상 혹은 세속적인 것들부터 흠이 없게 살기 위함이다. 세상 혹은 세속적인 것들로는 자동차 소유, 텔레비전을 갖는 것, 영화를 보러가는 것, 화장을 하는 것, 전기(이들은 전기 대신 주로 등유, LPG, 나무, 석탄을 사용한다거나 전화를 사용하는 것(실제로는 몇 집 사이에 공동전화를 설치하여 사용함),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 여러 가지 장신구나 보물종류를 소유하는 것, 사회보장보험이나 의료보험가입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것들을 접하거나 소유하게 되면 남들과 다른 것들을 가졌다는 우월감으로 남과 비교하여 교만하게 되고 외부의 편리함과 다양한 정보가 공동체에 유입되면 주변의 환경과 동화되어 공동체가 무너지니 철저히 금해야 하는 항목들이었다. 세상을 사랑하면 교회 혹은 신앙공동체의 순수성은 오염되게 되고 결국 문화에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강력한 장치들인 것이다.
또한 사회보장제도나 의료보험에 들지 않는 것은 공동체 밖의 사회나 국가에 의존할 가능성과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스테틀러(John A. Hosteller)는 세속적인 것들을 다음 세 가지로 정의한다. 1. 즐거움과 편안을 찾는 것. 2. 물질적인 것을 사랑하는 것. 3. 스스로 정신을 맑게 하는 활동. 세상과 분리하기 위해 이들은 독일어, 펜실베니이아 네덜란드어(Pen. Dutch, 독일어 방언), 영어를 주로 사용하고 자녀들의 영유아기인 5-7세까지 영어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교육도 90%는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교구소속 사립학교에서 받는다. 한 학교건물에 대략 25-30여 명의 학생들이 있으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미혼 아미쉬 여선생이 가르친다.
두 번째 이유는 삶으로 신앙을 전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말로나 강요가 아닌 삶으로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신자의 삶(제자도)을 공동체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 과연 이들에게 제자도란 무엇을 의미할까? 한마디로 누가복음 9장 23절의 말씀 따라 사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이들은 제자도를 겸손, 복종, 공동체, 평화주의, 주류사회로부터의 분리(이러한 것들이 산상수훈의 주요내용이라 믿음)로 해석하며 침례의식을 통해 자아(self), 악(the devil), 세상(the world)를 포기한다. 세상을 멀리한다는 것은 폭력, 문란한 성생활, 야동, 낙태, 탐욕, 사기, 이혼, 마약들을 멀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상은 “궁극적인 메시지는 삶 그 자체다”와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보다 삶의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이들의 언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보다 특이한 점은 이들의 구원관이다. 이들에게 있어 구원은 확신보다는 “살아있는 희망,”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매일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들은 옳은 행동에 근거하여 선행이 악행보다 많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약 1:27). 그러므로 악은 그 어떠한 모양이라도 공동체에서 버려야 함으로 그 규칙 혹은 규율은 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러한 특징이 앞서 Regev 교수가 지적한 분파의 특징, 즉 신앙만으로는 구원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구원을 얻기 위해 엄격한 사회적인(혹은 신앙공체) 행동규범이 요구된다.
세 번째 이유는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기술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지구)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이며 그러므로 이들은 화학비료 대신 유기농기법을 사용하고 석유제품류를 쓰는 콤바인 등의 농기구를 쓰지 않는다. 이러한 농업중심의 공동체에서는 “얼굴에 땀 흘려 빵을 먹어야 하고”(창 3:19), “일하지 않으려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살후 3:10). 바로 이점에서 어린이들은 학령기 전부터 간단한 농사(사내아이) 혹은 가사일(여자아이)을 도와야 하며 공식적으로 8학년의 의무교육(컴퓨터, 음악, 미술, 연극, 체육은 제공되지 않음)을 마친 후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농사나 가내수공업 등 관련 직업에 종사한다.
2. 출교(파문)와 기피
신앙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칙 또한 필요하다. 그중에 대표적인 제재가 출교(ordunning, 영어로는 ban 혹은 excommunication)와 기피(Meidung, 영어로는 social avoidance)이다. 출교는 교회 혹은 공동체로부터 쫒아내는 것이며 기피는 출교당한 사람과 교제나 교류를 단절하는 것으로 관련 성경구절은 고린도전서 5장 13절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내쫓으십시오.” 한 개인이 교회의 규칙을 어겼을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출교에 직면하거나 다른 교회로 옮기거나 아주 교회를 떠나는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출교나 기피는 공동체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장치로 그 공동체 안에서는 규칙을 따르거나 출교에 직면하거나 일뿐 그 중간은 없다.
먼저 이 두 가지는 신중하게(“온유한 마음으로” 갈 6:1)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아미쉬 사람들은 도르드레히트 신앙고백을 따르고 있다. 신앙고백은 그 목적, 대상, 절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목적은 다음과 같다. “파괴(destruction)가 아니라 교정(amendment)을 위해서(고후 10:8 “그 권위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우라고 주신 것이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출교, 분리, 그리스도인의 징계(correction)가 있음을 믿고, 고백한다. 이 목적은 불순한 자들로부터 순수한 자들을 구별하기 위해서이다.”(16조항)
징계대상자는 고의적으로 혹은 하나님께 대항해서 혹은 그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어두움의 헛된 일들(the unfruitful works of darkness)에 빠진 신자들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게 된다고 믿는다. 징계절차는 마태복음 18장 15-7절을 따라 은밀하게 단둘이서 훈계한 후,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고, 그 이후에는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지어 교회 공동체에 말하여 출교하는 절차를 밟는다. 먼저 문책이 주어지고 한시적으로 근신기간이 주어지고, 그래도 돌아서지 않으면 투표에 의해 제명이 행해진다. 하지만 만약 징계대상자가 회개하고 뉘우치면 교회는 다시 받아주어야 한다(약 5:19-20)(16조항).
사회적 기피는 출교대상자들에 대한 아미쉬 신자들의 처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관련 성구는 데살로니가후서 3장 14-5절이다: “누가... 복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특별히 조심하여, 그와 사귀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를 원수처럼 여기지 말고, 형제자매에게 하듯이 타이르십시오.” 아미쉬 사람들은 출교대상자를 교회로부터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일체의 음식이나 교제를 금지하며 심지어 가족과 그 배우자(잠자리도 포함)에게까지도 적용시키고 있다.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징계가 주어진다.
3. 세족식
아미쉬 공동체는 1년에 2차례 주의만찬을 실시하는데 이때 세족식이 시행한다. 목회자의 설교와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고 기도가 끝난 후, 목회자가 관련 성경구절(요 13:14; 딤전 5:10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내용)을 읽는 동안 집사와 평신들이 수건과 물동이를 가져온다. 주교의 간단한 설교 후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서로 돌아가며 발을 씻겨준다. 두 발을 다 씻겨준 후에는 서로 악수하고 입맞춤을 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모든 주의만찬 예식을 끝마치게 된다. 이렇게 세족식을 행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겸손을 실천하기 위함이며 형제, 자매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4. 예배와 생활방식의 차이
이들은 특별히 교회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주로 가정이나 그 가정의 헛간에서 2주에 한 번 예배를 드린다(다른 한 주는 성경묵상이나 경건서적을 읽고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헛간은 공동체와 가정 활동의 가장 중심 영역으로 각종 교회의 행사(예배, 결혼식, 장례식, 세례식 등)가 진행되고 먹을 것들을 저장하는 장소이다. 특별히 교회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이유는 초창기 핍박을 피해 비밀리에 예배를 드려야 했던 선조들의 풍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며, 예배 시 사용하는 의자나 식사용품 등 관련 기물들도 예배시작 전에 미리 옮겨 놓는다. 예배는 독일어로 진행되며 악기나 반주는 사용하지 않는다.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회조직은 각 교회당 대략 75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교구당 한 명의 주교와 2-4명의 목사(전도사), 그리고 한 명의 집사가 있다. 주교는 가장 높은 영적 지도자로 각종 모임, 교회의식(세례식, 주의만찬, 결혼식, 안수, 장례식), 교규의 규정집행, 예배의 설교를 감당한다. 목사(전도사)는 설교하거나 주교를 도와 신자들을 섬긴다. 집사는 예배 시에 성경을 읽고, 기도문을 암송하고, 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감독하고, 각종 예식을 보조하고, 신자들의 규율 위반을 조사하고, 교회의 여러 일들의 대표자로 행사한다. 이러한 모든 직분은 제비뽑기로 결정된다(행 1:24-6).
이밖에도 비폭력 평화주의와 의복의 간소화를 들 수 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인되지 않으며 따라서 군대에 입대하는 대신 대체복무(2년)를 실시하고 있다. 곧 닥칠 위험상황 속(전쟁, 강도, 도둑, 폭력)에서 방어(폭력)를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해자에게 비폭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최악의 경우에서도 형사 처분이나 중벌이 아니라 용서와 관용을 베풀고 있다. 따라서 자기방어를 강화하지 않으며, 공직에 지출하지 않으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며, 법률송사나 배심원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남녀 모두 머리를 덮는 모자(남자)나 흰 수건(여자)을 쓰고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는 이유는 무엇보다 권위에 순종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며 자아를 부정하고 검소함, 단순함,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턱수염은 기르나 콧수염을 기르지 않는 이유는 핍박받던 시절 그들을 쫓아다니며 붙잡아 무자비하게 박해하였던 그 당시의 군인 혹은 경찰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소유하고 있지만 사진 찍히기는 거부하며 그 어떠한 그림도 집안에 두지 않는다. “형상이나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 20:4)는 십계명을 따른 결과이다. 이러한 생활규범을 어기는 모든 행위들은 “믿음의 결핍과 교회에 대한 불만이요 속세에 대한 동경”으로 여겨 징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모든 공동체 생활에 귀속하는 결정은 럼스프링가(rumspringa, 10대 후반으로부터 20대 초반의 세속 체험하기)를 거쳐 자원적으로 귀속을 결정, 서약(세속체험자 중 90%가 서약함) 후 침례식(혹은 세례식)과 결혼식이 진행된다. 침례식은 신앙과 아미쉬 교회에 평생 헌신을 약속하는 의식이다. 가정생활은 엄격한 일부일처제와 가부장적인 생활방식(고전 11:3; 엡 5:22, 28, 33)을 따르는 경향이 있으며 죽음 뿐 이혼은 허락되지 않는다.
VI. 마침글: 아미쉬 공동체의 의의와 평가
오늘날 현대사회는 과도한 상업주의, 기술문명에 대한 집착, 지식추구와 경쟁의식, 성과제일주의로 인해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는 시점에 신앙공동체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아미쉬공동체의 이러한 삶은 사도시대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힘겨운 노력으로 비춰짐과 동시에 “21세기의 1세기사람들”로 비춰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생산하는 농산물과 농, 공산품들은 품질 보증수표로 통하고 이것은 이 신앙공동체가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질 좋은 제품들(농산물, 각종 잼, 그네, 미끄럼틀, 농기구 등)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사도적인 신앙에 기초해 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에너지 사용, 자급자족, 상호부조, 전인격적 삶, 검소한 사람, 땅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비판 또한 수없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주로 신학의 차이와 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들 때문이다. 신학적인 차이로는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의 차이이다. 앞서 아미쉬 신자들은 세상을 사탄 혹은 이 땅의 권세자들에게 속한 것으로 여겼음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세속적인 것을 경건하지 못한 것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각종 정치적인 행동이나 세속 권력에의 참여를 금지하며 심지어 전도하는 것도 장려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개혁교회진영을 중심으로 세상 혹은 세속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권력자들 또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것이니 신자들은 세상 속에서 동참하여 사는 것이 성경대로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도 혹은 선교에 대해서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전도하지 않느냐며 비판한다(마 28:19-20; 행 1:8). 또한 구약의 가치를 너무 평가절하 한다는 비판 또한 제기되고 있다.
아미쉬의 잘 드러나지 않는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근친상간, 과도한 여성노동, 어린이, 동물 학대(강아지 공장 운영), 가정폭력, 가축들로 인한 환경오염 등이 제기되기도 한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공동체생활을 하다보니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일 것이다. 하지만 지적인 삶, 경쟁의 삶, 세속과의 융합보다는 미덕과 지혜의 삶, 개인보다는 공동체 번영, 세속과의 융합보다는 분리된 거룩한 사람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 장점과 단점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풍부함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을 궁핍함속에서 그들은 가지고 있다는 한 대학 교수의 일침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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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태식:
충남대학교 철학과 (B.A.)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M.A.)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과 일반대학원 (Th.M.)
미국 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Ph.D.)
현재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역사신학 겸임교수
현재 세종시 수산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서:
「종교와 선택: 로드니 스타크와 기독교」 (2015)
「교회사방법론: 기독교와 역사서술」 (2016)
「21세기 목회론」 (공저, 2013)
「침례교회 정체성」 (공저, 2014)
역서:
Herschel H. Hobbs. 「침례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1997)
Walter B. Shurden. 「침례교의 정체성」 (1999, 2012)
Paul Basden 편. 「침례교신학의 흐름」 (공역, 1999)
Walter B. Shurden. 「침례교 신학논쟁」 (공역, 2000)
Stenton Norman.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침례교의 정체성」 (2010)
Roger Finke and Rodney Stark. 「미국 종교시장에서의 승자와 패자」 (2009. 2014)
그 외 다수의 논문들을 집필함.
21세기의 17세기 영성: 아미쉬의 역사와 신앙공동체에 대한 논찬
김상백 박사(순복음대학원대학교/실천신학/목회와 영성)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에 의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거대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반기(反旗)를 들고 “성경적 교회회복”을 위해 종교개혁의 기치(旗幟)를 높이든지 올해로 꼭 500주년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신학적 성찰과 신앙회복 운동이 강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김태식 박사가 지적한 대로 물량주의, 상업주의, 과도한 경쟁의식과 성공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국교회가 이제 교회성장의 정체(停滯)현상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는 교회의 존립을 걱정할 만큼 심각한 교회의 병리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치유하기 위한 적극적인 신앙적 각성운동으로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미쉬공동체는 오순절교단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퀘이커교, 경건주의운동, 형제교회, 존 웨슬레, 청교도운동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유럽의 재침례교도(The Anabaptists)의 신앙과 신학의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 오순절교단과의 역사적 연관성을 찾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오순절운동 또한 온갖 박해와 순교를 무릅쓰면서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오직 신앙고백을 통해 침례를 받아야하며, 성경만이 모든 신자의 신앙과 행위에 절대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신약성경적 교회회복을 위해 몸부림쳤던 재침례교도의 신앙적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운동의 역사적 뿌리는 종교개혁자 루터를 비롯해 재세례파(재침례교도), 퀘이커 교도(Quakers), 웨슬레, 미국의 근본주의운동, 부흥운동, 성결운동, 영국 케스윅에서 시작된 성결운동인 케스윅 운동 등에 두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순절교단과도 많은 역사적 신앙적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아미쉬공동체에 대한 연구는 현대오순절운동의 역사를 추적하고 탐구하는 일에도 의미가 있다. 특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현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든 한국교회와 오순절교단이 종교개혁의 원형적 신앙형태를 가진 아미쉬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교훈을 얻는다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김태식 박사는 본 논문을 통해 아미쉬 신앙공동체의 역사적 배경, 주요 신학, 그리고 이에 따른 공동체의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이 신앙공동체가 현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평가하고자 했다.
논문의 요약
1) 연구자는 아미쉬 공동체가 1693-1711년 스위스 메노파 교회의 한 젊은 장로였던 제이콥 암만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당시의 메노파가 원래의 교리에서 벗어나 엄격하게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는 메노 시몬스의 서적들과 재침례교 신학의 대표적 신앙고백서인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Dordrecht Confession of Faith, 1632)에 명시된 대로 철저한 개혁을 요구했다. 암만은 성찬은 1년 두 번, 세족식 시행, 신자들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율, 제명된 구성원들에 대한 기피를 주장했다.
2) 연구자는 아미쉬의 신학에 영향을 미친 신앙고백서로는 재침례교의 신학을 대표하는 슐라이타임 신앙고백(Schleitheim Confession, 1527)과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Dordrecht Confession of Faith, 1632)를 꼽았다. 슐라이타임 신앙고백에는 침례, 출교, 주의 만찬, 악으로부터의 분리, 목회자들, 비폭력, 맹세 등에 대한 규칙이 있으며,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 속에는 세족식, 세속적 권위의 직분, 복수, 파문, 분리된 자들에 대한 기피 등의 항목이 추가 되었다고 했다.
3) 암만의 보다 철저한 개혁운동의 요구는 결국 스위스 메노파로부터 아미쉬가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소규모였던 아미쉬는 1736년 북미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성장의 역사적 발판을 가져왔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1736년 대략 500명의 아미쉬들이 펜실베니아의 Berks County에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1737-1754년에 21가족이 펜실베니아의 Lancaster County에 정착했고, 1804-1810년에 몇몇 가족들이 미국 중서부지역에, 1817-1860년에는 대략 3,000명의 아미쉬들이 미국 오하이오, 일리노이스, 인디에나, 캐나다 온타리오, 뉴욕, 아이오와 등지에 정착했다. 현재는 북미 지역 내에 25개 분파에 대략 1,700개의 지역교회가 미국의 28개 주와 캐나다에 분포되어 있으며, 1920년에 불과 5,000명이었던 아미쉬들이 현재는 318,000명으로 증가했다. 그들은 지금도 슐라이타임 신앙고백과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을 공동체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4) 연구자는 아미쉬 공동체의 특이한 점으로 세상과의 분리 파문(분리)과 기피, 세족식, 기타 예배와 생활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아미쉬는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을 따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한 생활을 위해 세상과의 분리를 원하며, 이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 사도적 전통을 따르는 초대기독교공동체를 이 땅에서 이루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아미쉬의 핵심가치는 공동체(community), 사랑(love), 그리고 평화(peace)이다. 아미쉬가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세상 혹은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흠이 없이 살기 위함이며, 둘째 이유는 삶으로 신앙을 전하기 위함이며, 세 번째 이유는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이다.
5) 출교(파문)와 기피는 신앙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엄격한 규칙을 필요하기 때문이다. 출교는 교회 혹은 공동체로부터 쫓아내는 것이며, 기피는 출교당하는 사람과 교제나 교류를 단절하는 것이다(고전 5:13). 주의 만찬은 일 년에 2차례 실시하며, 이 때 세족식을 거행한다. 세족식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겸손을 실천하기 위함이며, 형제, 자매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6) 예배와 생활양식에 있어서는 이들은 특별히 교회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주로 가정이나 그 가정의 헛간에서 2주에 한 번 예배를 드린다(다른 한 주는 성경묵상이나 경건서적을 읽고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헛간은 공동체와 가정 활동의 가장 중심 영역으로 각종 교회의 행사(예배, 결혼식, 장례식, 세례식 등)가 진행되고 먹을 것들을 저장하는 장소이다. 특별히 교회건물을 소유하지 않으며(그 이유는 초창기 핍박을 피해 비밀리에 예배를 드려야 했던 선조들의 풍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 예배 시 사용하는 의자나 식사용품 등 관련 기물들도 예배시작 전에 미리 옮겨 놓는다. 예배는 독일어로 진행되며 악기나 반주는 사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권위순종, 집단정체성, 자아부정, 검소함, 단순함, 근검절약 등의 실천을 위해 남자는 모자, 여자는 흰 수건을 쓰며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
7) 연구자는 아미쉬 공동체의 의의와 평가로서 현대사회의 과도한 상업주의, 기술문명에 대한 집착, 지식추구와 경쟁의식, 성과제일주의로 인해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는 시점에 아미쉬 공동체의 이러한 삶은 신앙공동체를 통한 구원사역을 믿으며, 사도시대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힘겨운 노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신학적인 차이로 세상을 지나치게 악하게 보는 아미쉬의 태도로 각종 정치적인 행동이나 세속 권력에의 참여를 금하고 심지어 전도하는 것도 장려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개혁교회 진영의 비판이 있으며, 또한 구약의 가치를 너무 평가절하 한다는 비판 또한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연구자는 이러한 여러 가지 비판과 문제점들이 아미쉬 공동체에 있지만, 풍부함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을 그들은 궁핍함속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해 연구하고 성찰해 볼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논문의 장점
1) 예배학자 웨버(Robert E. Webber)는 교회의 예배갱신의 가장 강력한 근원은 첫째는 성경이고, 둘째는 교회사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신앙개혁의 기준도 성경과 교회사 가운데 나타난 영적 교훈이어야 한다. 연구자의 아미쉬에 대한 연구는 교회사 가운데 나타난 재침례교도들(Ana-Baptists)의 전통이 살아 있는 아미쉬 공동체의 역사적 배경, 신학, 신앙생활의 특징 등을 소개함으로 참된 신앙공동체의 원형(原形)을 찾아 교회개혁의 교훈을 얻으려는 진지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2) 작금(昨今)의 한국교회는 편협(偏狹)한 교회성장주의의 영향으로 몸집은 비대해졌지만, 체력은 떨어지고 건강이 악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구자는 이렇게 양적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들어가는 현대 한국교회를 향해 개혁신앙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거룩한 공동체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를 소개함으로 진정한 교회성장의 의미를 제시하려고 했다.
3) 연구자는 아미쉬 공동체의 장점만 언급하지 아니하고 논문 말미(末尾)에 그들이 가진 문제점들도 함께 언급함으로서 균형 있는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또한 건강한 교회공동체형성을 위한 종합적인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 아미쉬 공동체는 각박한 도시화의 그늘 가운데 공동체의식이 점차 희박해지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는 오늘날 경건한 교회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꼭 연구가 필요한 신앙공동체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논문의 아쉬운 점
1) 연구자가 하나의 개혁 모델로 개혁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를 소개했지만, 이 신앙공동체를 통해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현대 한국교회가 지켜내야 할 개혁 전통과 변화되고 갱신(更新)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2) 아미쉬의 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슐라이타임 신앙고백(Schleitheim Confession, 1527)과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Dordrecht Confession of Faith, 1632)을 소개하여 참 유익했지만, 오늘날 개신교신학과 비교해서 그들의 신학에 대한 좀 더 면밀한 분석과 비평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슐라이타임 신앙고백에 의하면 목회자들의 조건에서 그저 “좋은 평판의 사람”이라는 말은 너무 광범위하므로 좀 더 세밀한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신학교육의 위기이며, 목회자 선발에 많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도르드레흐트 신앙고백에 의하면 주의 만찬과 세례식 외에 세족식을 교회가 성례전으로 받아드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것도 연구자의 신학적 의견을 첨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 연구자는 아미쉬 공동체의 신앙과 실천에서 세상과의 분리를 그 특징으로 제시했다. 특히 연구자도 특이하게 소개한 아미쉬의 구원관에서 “옳은 행동에 근거하여 선행이 악행보다 많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라는 부분과 “신앙만으로는 구원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 엄격한 사회적인(혹은 신앙공동체) 행동규범이 요구된다.”는 부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과 신학적 비평이 부족하다. 확실히 아미쉬가 변질된 로마가톨릭교회에 저항하여 종교개혁을 이룬 마르틴 루터와 개혁자들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의 개혁(protestant)전통을 잇고 있다면, 오직 믿음(Sola Fide)의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구원관이 분명해야 하는데, 왠지 가톨릭교회의 공덕(功德)축적설을 생각나게 하는 이러한 신학적 주장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
비록 이러한 아쉬움들이 있지만, 김태식 박사의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본 논문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든 한국기독교에 성별된 신앙공동체의 원형을 소개함으로 다시 한 번 흐려져 가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성찰하게 했다. 특히 초대교회의 사도적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20세기 초에 불같이 일어났던 오순절운동의 개혁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좋은 논문이라고 생각한다. 귀한 논문을 위해 수고해주신 김태식 박사에게 감사드린다.
토론을 위한 질문
1) 세속에서 물들지 않기 위해 아미쉬 공동체가 추구하고 있는 신앙적 가치 중에 한국교회의 거룩한 공동체성을 위해 꼭 필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아미쉬 공동체도 완전한 성경적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신교 역사신학자의 관점에서 그들에게도 개혁되어야할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오순절운동도 재침례교도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미쉬 공동체와 역사적으로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성령운동(특히 방언, 신유 등)에 대한 아미쉬 공동체의 신학적 입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 오순절영성은 열정적일 뿐 아니라 경건주의와 금욕주의적 영성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오순절교단은 물질주의, 성장주의 그리고 세속주의에 물들어 이러한 색깔을 점차 잃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다. 종교개혁의 신앙과 경건주의 전통을 지키려는 아미쉬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한국의 오순절교단이 개혁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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