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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Ⅲ) > 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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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Ⅲ) > 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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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Ⅲ)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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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5-03-05 09:53

본문


페이지 3의 주제문이 전체 설교의 주제문 역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성경에서 발견해야 

과도한 상상력은 본문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어


조지훈 목사.jpg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월요일에 설교의 통일성을 위한 준비를 했다면 화요일에 페이지 1을, 수요일에 페이지 2를 연구하고 작성했다면 이제 목요일에 페이지 3을 다루어야 한다. ‘네 페이지’ 설교 방법론에서 페이지 1과 2가 성경과 이 세상의 문제에 집중한다면 페이지 3과 4는 성경과 세상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네 페이지 설교 방법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페이지 3이다. 다른 설교 방법론과는 달리 폴 스캇 윌슨이 제시하는 네 페이지 설교는 모두 4개의 주제문을 갖는다. 다시 말해 각 페이지마다 각각의 주제문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폴 스캇 윌슨은 설교의 통일성을 주기 위해서 월요일에 하나의 본문, 하나의 주제문, 하나의 교리, 하나의 필요,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임무(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그는 “The Tiny Dog Now Is Mine”[저 작은 개는 나의 것이다]라고 명명했다)를 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만약 설교가 4개의 주제문을 갖는다면 이 설교는 하나의 통일성을 갖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폴 스캇 윌슨은 4개의 주제문 모두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네 페이지 설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문, 곧 그 설교의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문은 페이지 3의 주제문이라고 말한다. 즉, 페이지 3의 주제문이 설교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문이요, 그런 의미에서 네 페이지 설교에서 페이지 3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윌슨의 주장은 그가 왜 하나님 중심 설교를 강조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페이지 3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은혜, 곧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신 일이야말로 설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설교자들이 이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그는 페이지 3에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 주심이 가장 중요하며 전체 설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페이지 3에서 드러난 하나님을 전체 설교의 중심이 되게 함으로써, 설교자는 청중들로 하여금 세상의 능력을 부인하게 하고,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심을 드러낸다.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시며 어그러진 삶을 회복하시고 억압된 모든 것을 해방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페이지 3의 초점은 성경 본문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행동이다. 따라서 페이지 3에서 사용되는 문장들은 당연히 하나님이 주어가 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설교자는 자신이 선택한 성경 본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발견해야 한다.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의 일하심을 쉽게 찾아진다면 페이지 3을 전개해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창세기나 복음서에서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된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이 어려울 때가 문제이다. 윌슨 교수는 자신이 선택한 본문 이면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 설교를 한다고 하는 설교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행동을 언급한 이후에 이 부분을 좀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곧바로 인간이 행해야 할 임무로 넘어가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행동을 나타낼 때 행동하는 동사(action verb)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십니다.”라거나 “하나님이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십니다.”라는 식이다. 이와 더불어 설교자들이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문제와 은혜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할 경우 많은 설교자가 이런 식의 설교가 청중들이 원하는 내용만을 설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네 페이지 설교가 말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는 것은 무조건 용서하시는 하나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절대로 회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인간이 극복하지 못하는 죄와 고난의 문제를 오직 하나님만이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윌슨 교수가 말하는 네 페이지 설교의 핵심이다. 

 

페이지 3을 만들기 위해서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설교를 시각화해서 영화처럼 만드는 것이다. 묘사하기보다는 하나님과 사람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오감 전부를 포함시킬 필요도 있다. 상상력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 본문과 관련된 역사나 지리에 관한 자료들도 필요하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를 거니셨다면 그 호수가 어떤지를 영화처럼 보여줄 필요도 있다. 페이지 3에서 설교자가 집중해야 할 것은 “청중들이 성경 본문 속의 그 당시로 거의 비슷하게 돌아간 것처럼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행동하시는 실재(reality)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폴 스캇 윌슨, 『네 페이지 설교』, 303).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본문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 본문에 없는 사람들을 임의로 만들어내서도 안 된다. 윌슨 교수는 자신의 학생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눅 19:28-47)에 대해 설교하면서 군중 속에 있는 두 사람의 이름을 짓고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만들었던 것을 예로 든다. 그와 같은 작업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결국은 그런 설교는 청중들의 시선을 예수님이 아니라 설교자가 만들어낸 인물들에게로 향하게 만들고 말았다. 윌슨 교수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먼저 성경 본문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그런 다음 회중들을 도와 그들로[청중들] 하여금 마음속으로 그 장면과 행동을 그려내도록 몇 가지 필수적인 세부사항을 함께 나누ㄹ때 우리는 세 번째 페이지를 가장 잘 구성할 수 있다”(『네 페이지』,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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