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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Ⅲ)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주희 작성일24-01-15 14:05

본문

 

전통적인 설교학에서도 귀납적/이야기식 설교 형식 제시해

귀납적 방식은 논증을 위한 종속적인 역할만 수행

어떤 형식을 사용하건 설교자가 의도한 결론을 맺도록 유도

 

조지훈 목사.jpg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4. 전통적인 설교학이 제시하는 설교의 형식

 

전통적인 설교학은 물론 현대 설교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설교 형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연역적 설교 형식과 귀납적 설교 형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설교 형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전통적인 설교학/케리그마 설교학과 새로운 설교학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연역적 설교 형식은 먼저 일반적인 진리를 말하고 나서 그 진리를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어떤 일반적 명제를 가지고 구체적인 적용을 향해 설명해 가는 설교 양식이 연역적 설교 형식이다(류응렬, “새 설교학: 최근 설교학의 이해와 분석”, 147).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구절을 근거로 연역적 설교 형식을 만든다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이 구절에 대한 성경 해석 과정 역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겠지만 지금은 설교 형식에 대한 부분만 생각하기로 하고 논의를 전개하겠다. 이 구절을 묵상하고 연구한 후에 설교자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라는 주제문 주제문에 대한 내용 역시 이후에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겠다 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설교자는 설교 서두에서 오늘은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라고 일반적인 진리 또는 명제(proposition)를 제시한다. 이후에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사랑하시는지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아들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써 세상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또는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신다.”와 같이 구체적인 예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예들에 맞는 예화를 덧붙이는 것이 연역적 설교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연역적 설교 형식을 단순화하면 일반적인 진리/명제 구체적인 삶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귀납적 설교 형식은 연역적 설교 형식과는 반대의 전개 방식을 따른다. ‘구체적인 사건 일반적인 원리가 귀납적 설교 형식이 따르는 전개 방식이다. 귀납적 설교 형식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젊은이가 사고로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한 후에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이다.”라고 설교를 마쳤다면 이것은 귀납적 설교 형식을 따른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설교학자가 전통적인/케리그마 설교학은 연역적 설교 형식을, 새로운 설교학에서는 귀납적 설교 형식만을 취한 것인양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러나 로즈는 자신의 책에서 전통적인/케리그마 설교학에서도 귀납적 설교 형식이나 이야기 설교 형식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새로운 설교학에서도 연역적 설교 형식의 장점들을 열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설교 형식과 관련해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전통적인 설교학에서는 귀납적 설교 형식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설교학만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는 귀납적 설교 형식이라는 말보다는 귀납적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왜냐하면 연역적 설교 형식을 전개하면서 부분적으로만 귀납적인 방식을 차용하기 때문이다. 설교 전체를 귀납적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설교 형식은 연역적인 형식을 따르고 부분적으로만 귀납적인 서술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음식으로 표현하면 자장소스를 얹은 볶음밥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자장소스를 얹은 볶음밥은 자장면이 아니다. 한쪽에 자장소스가 올라가 있는 볶음밥이다. 다시 말해 연역적 설교 형식에서 귀납적 방법은 논증, 즉 어떤 진리나 중심 사상을 적용하거나 예증할 때만 사용된다. 중심적인 역할이 아니라 논증을 위한 종속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이야기에 대한 전통적인 설교학자들의 생각 역시 비슷하다. 이야기는 설교의 주도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 설교자가 청중을 설득하거나 확신시킬 때만 사용되어야만 한다.

 

물론 전통적인 설교학자 중에 귀납적 설교 형식을 설교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전통적인 설교학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청중들이 설교자가 처음 의도했던 그 결론에 똑같이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귀납적 설교 형식을 채택한 학자들 역시 설교의 결론을 청중들 스스로 내리기 보다는 설교자가 원하는 결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많은 설교학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연역적 설교 형식을 따르면 전통적인 설교학인데 반해 귀납적 설교 형식을 따르면 새로운 설교학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설교 형식을 따르는가가 아니라 어떤 설교 형식이 되었건 간에 청중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가, 아니면 설교자가 의도한 결론을 받아들이는가가 전통적인 설교학과 새로운 설교학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도 설교 형식 가운데 귀납적 형식이나 이야기 형식을 따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첫째, 설교 서두에 핵심적인 진술문을 제시함으로써 청중들이 설교의 진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둘째, 이런 설교 형식을 취하는 목적은 메시지에 담긴 진리를 회중이 지적으로 동의하도록 하는것이다(로즈,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57). 이후에 새로운 설교학에서 제시하는 설교 형식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제시하는 설교 형식에 대한 개념이 무엇인지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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