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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운동(19) / 20세기 늦은 비 성령운동의 선구자들 > 한상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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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운동(19) / 20세기 늦은 비 성령운동의 선구자들 > 한상인 목사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운동(19) / 20세기 늦은 비 성령운동의 선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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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1-12-22 13:32

본문


19세기에 들어와 마지막 추수를 위한 ‘늦은 비’ 성령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20세기의 성령운동에 비추어볼 때 19세기 성령사역자들을 성령운동의 선구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1. 찰스 피니의 성령운동


1)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의 생애

 

피니는 1792년 미국 코네티컷 워린에서 출생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참조하다가 성서를 공부하게 되었고, 1821년 변호사 생활을 포기하고 부흥사가 되었다. 그는 법정에서 배심원들 앞에서 진술하던 방법을 사용하여 회중들에게 설교함으로써 영적인 부흥을 일으켰다. 1832년 뉴욕에서 '제2 자유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으며, 1835년 오하이오주 오벌린에서 신학교수가 되어 목회와 교수생활을 동시에 했다. 1851~66년 오벌린대학의 총장이 되었다 

 

2) 성령 사역자로의 특징

 

그는 성결과 능력 모두에 관심을 가졌으나 능력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또한 그는 자아를 개혁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 능력과 상식을 강조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성령침례를 통하여 능력을 주심으로 지상명령을 수행하게 하시며, 능력으로 입히는 것은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절대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강한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 …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 성령의 파도가 몇 번이고 나를 덮치고 지나갔다. 나는 마침내 ‘주여 멈추지 않으면 내가 죽겠나이다’라고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2. 무디의 성령운동


1) 무디(D.L. Moody, 1837-1899)의 생애

 

무디는 1837년 미국 노스필드에서 출생했다. 그가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므로 자연히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7세 때 돈을 벌기 위해 보스턴에 있는 삼촌의 구두 가게에서 일을 했다. 1855년 보스턴에 있는 교회에 나가고 있을 때 그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의 질문을 통해서 무디는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거듭난 후에도 한동안 10만달러를 벌겠다는 포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멸망하는 영혼을 보았을 때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버리고, 하루에 한 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했다.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나 전쟁터로 달려간 무디는 군인 교회에서 1,500여회 집회를 가졌다. 무디는 그의 생애를 통해 2억 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2) 대 설교가로서 성장하는 무디

 

1867년 무디는 영국을 처음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무디는 죠지 뮬러와 찰스 스펄전, 헨리 발리 목사를 만났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무디의 정열적인 전도 방법과 교회사업에 대해 듣고는 “무디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디를 통해서 무엇을 하셨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찰스 스펄젼의 설교를 듣고, 또 헨리 발리 목사의 기도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명성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1873년 무디가 다시 영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에 대한 종교가들의 비방과 복음전도방식에 대한 비난,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모함 등으로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무디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시도록 맡김으로써 3년간의 전도여행을 통해 영국 전체를 진동시키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전도 집회에서 그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3) 무디의 성령이해

 

무디는 성령침례가 두 번째 체험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성령의 역사를 매우 강조하였다. 그는 성화가 순간적인 체험이 아니라 점진적인 체험이라고 믿었다. 그는 성령침례를 ‘봉사를 위한 오순절적 능력의 부여’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토레이 목사에게 성령침례에 대해 깊이 연구하도록 부탁했다.


3. 토레이의 성령운동 


1) 토레이 1세(R.A. Torrey: 1856-1928)의 생애

 

토레이 1세는 한국에서 활동한 대천덕 신부의 할아버지이다. 그는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고 1883년에 회중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1889년에 무디 성경연구원 초대교장으로 초빙 받았으며, 1912년 L.A. 바이올라 성경연구원의 원장으로 사역했다.

 

2) 성령침례의 의미

 

그는 성령침례를 받은 여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체험이며,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과 다른 것으로 보았다. 성령침례의 구체적인 나타남은 사람마다 다르며(고전 12:27-30), 성령으로 침례 받은 자는 어떤 종류든지 은사를 받는다고 여겼다. 특히 성령침례는 증거와 봉사를 위한 권능과 담대함을 주시며(행 4:8-12),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3) 성령 침례의 당위성과 조건

 

성령침례는 예수님의 명령이므로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행 5:32), 전적으로 헌신하는 자에게(행 8:15-16), 의심 없는 믿음의 기도를 하는 자에게 성령침례를 주신다(약 1:6-7). 또한 한번 성령침례를 받은 후에도 계속 성령의 재충만을 받아야 한다. 사도들이 적어도 세 번 성령충만을 받은 것처럼(행 2:1-4; 4:8, 31), 능력의 사역을 위하여 항상 재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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