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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운동(22) / 고전적 오순절 운동 > 한상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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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인 목사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운동(22) / 고전적 오순절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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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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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오순절 운동은 웨슬리의 성령운동에 뿌리를 둔 성결운동에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 신학의 형성에 있어서는 능력을 강조하는 장로교 계통의 부흥운동가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오순절 운동이 성결과 능력을 강조하는 양쪽 진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통전적인 오순절 운동은 성결과 능력을 함께 강조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초기 오순절운동 사역자들은 방언을 성령충만의 증거로 삼았으므로 고전적 오순절 운동이라고 한다.


1. 찰스 팔함(Charles Parham)

 

1) 토페카 부흥운동

1897년 병에서 신유를 체험한 팔함은 성결과 신유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은 유전죄 뿐만 아니라 유전병에서도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고 하였다. 그는 1898년 캔사스 토페카에 ‘벧엘 치유의 집’을 시작했다. 그는 성결운동을 하고 있던 샌포드(Frank Sanford)에게서 방언(xenolalia)를 말하는 선교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900년 9월 학기에 팔함은 벧엘신학교 학생들에게 사도행전에서 성령 받은 증거가 무엇인지 과제물로 내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받은 증거로 나타난 것은 방언이었다(행 2:4; 8:16-17; 9:17과 고전 14:18; 10:44-46; 19:6). 그는 성경학교 학생들과 함께 방언을 달라고 기도했다. 1901년 1월 1일 아그네스 오즈만(Ms. Agnes N. Ozman) 양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오즈만은 성령 침례를 받은 며칠 동안 입을 열기만 하면 중국방언이 나왔으며, 글로 대화를 하려 해도 배운 적이 없는 한문을 쓰게 되었다. 이를 본 다른 학생들도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기 시작했고, 1월 3일 12명의 학생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토페카 부흥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토페카 부흥 운동에 참여하였다.

 

2) 팔함의 성령충만과 방언

그는 중생한 후 성령침례를 받게 되며,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이라고 했다. 그는 성령침례와 방언을 통해 사도들의 신앙을 재현하자고 했다. 또한 말세가 가까왔기 때문에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기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종말론적 신앙을 강조했다. 그는 외국어 방언을 받은 것은 선교에 대한 명령이라고 했다. 그는 1905년에 텍사스 주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신학교를 세웠다.


2. 윌리엄 시무어(William Joseph Seymour)

 

1) 아주사 부흥운동(Azusa Revival, 1906)

팔함이 1905년 성경학교를 토페카에서 텍사스 휴스턴으로 옮겼을 때, 흑인 시무어가 이 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팔함의 강의를 듣고 방언이 성령침례의 증거라고 확신했다. 그후 시무어는 L.A.에 있는 흑인 나사렛교회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시무어의 가르침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그의 집회가 취소되었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시무어는 리차드 에즈베리(Richard Asbery)라는 성도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1906년 4월 9일 에즈베리의 집에서 기도회를 갖던 7명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909년까지 아주사 스트리트(街) 312번지의 마구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오전부터 자정까지 기도회를 시작하였고, 점차 큰 부흥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아주사 부흥운동이 고전적 오순절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2) 시무어의 신학적 입장

아주사 집회는 하루 세 번씩 예배를 드렸으며, 즉흥적인 설교를 하였고, 찬송을 강조했다. 그의 집회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가득했으며, 흑백 인종의 장벽이 없었다. 그는 중생과 성결, 신유, 재림, 방언으로 증거되는 성령침례를 주장했다. 성령침례는 성결에 이은 제3의 축복으로 시무어는 성결보다는 복음 전파를 위한 능력을 강조했다. 아주사 부흥운동을 통해서 많은 교단들이 탄생하였고, 성령의 불이 크게 타올랐다. 


3. 더함(William H. Durham)

 

더함은 시카고에서 사역하다가 1907년 3월 2일에 아주사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방언을 받았다. 그후 놀랍게도 많은 오순절의 지도자들이 더함의 집회에서 성령을 받고 신유를 체험하게 되었다. 더함은 그리스도의 ‘끝나버린 사역’(finished work on Calvary)을 강조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요 19:30). 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예수님 앞에 나가서 죄악의 짐, 질병의 짐, 의식주의 무거운 짐, 불안과 공포의 짐, 삶의 무의미와 허무의 짐, 절망과 죽음의 짐들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할 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일어났다.


4. 고전적 오순절운동의 특징

 

초기 오순절운동은 미국 사회에서 변두리에 있는 자들, 혜택 받지 못한 자들에 의하여 일어났다. 윌리엄 시무어는 노예 가문의 이름 없는 흑인이었으며, 그가 인도한 아주사 부흥운동은 소수 민족들이 모여 있는 L.A. 지방에서, 그것도 마구간에서 일어났다. 이처럼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의 하나님은 교회 안이나 서재에서 만나주시는 분이 아니라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었다. 초기의 오순절운동은 제2, 제3의 은혜로써 성결과 능력을 강조하였다. 그 운동은 복고적인 동시에 종말론적이었다. 복고적으로는 사도적 신앙으로의 회복일 뿐만 아니라, 미래적으로는 종말론적 선교의 열정으로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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