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시대의 성령운동 (4) / 지성과 신앙의 안셀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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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요 지식의 종교가 아니다. 그러나 지식의 종교가 아니라고 해서 무지한 종교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늘 살펴볼 안셀무스는 신앙과 지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목회자요 철학자이다. 중세에 가장 많고 심오한 저술을 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1.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년)의 생애
안셀무스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아오스타에서 태어났다.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를 지낸 경력으로 인해 캔터베리의 안셈(Anselm of Canterbury)으로도 불린다. 그의 부모는 귀족으로 부유했으며, 부친은 그가 정치활동을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 꿈속에서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산의 궁궐에 가서 자기가 하나님을 찾아온 이유는 진리를 구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거기에서 하늘의 빵을 먹고 힘을 얻어 자기가 얻은 지식을 선포하겠노라고 맹세하며 돌아왔다. 15세 무렵 하나님을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베크의 도미니칸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후 수도원장 란프랑크가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떠나자 그는 베크의 대수도원장이 되었다.
2. 캔터베리 대주교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 왕은 영국을 정복했다. 그는 베크 수도원의 후원자였으며, 그의 치세에 캔터베리 대성당을 건립했다. 그런데 1092년 안셀무스의 스승이던 캔터베리 대주교가 죽음을 맞자 그는 1093년 캔터베리 대주교에 부임했다. 그후 죽을 때까지 16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탁월하게 주교직을 수행하였다. 대주교로 있는 동안 정복왕 윌리엄의 아들인 윌리엄 2세와 서임논쟁으로 갈등을 겪었으며, 그를 이은 헨리 1세와도 팽팽히 맞서다가 추방되기도 한 것이다. 마침내 성직자 임명권 문제가 타결된 후 안셀무스는 평화롭게 여생을 지냈다. 1163년 무렵에 성인으로 추증된 것 같으며, 1720년 교황 클레멘스 6세 때 교회박사로 인정되었다.
3. 목회적 가르침
1) 본성과 인격의 구분
안셀무스는 ‘타락의 자발적 소유’라는 명제에서 개인의 인격이 자신의 원죄성에 대해 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아담의 죄는 인간의 본성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러나 아담의 경우는 그의 본성이 그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이 범죄함으로써 본성이 더러워졌다고 보았다. 그로 인해 아담의 후손들은 본성적으로 타락했으나, 인격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 본성의 경향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인격이 죄성에 물들지 않는다고 보았다.
2) 신앙과 이성
그는 인간의 마음이 기독교 계시의 본질적 합리성을 추구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 이성이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구분해준다고 하였다. 믿음이 이성에 선행하지만, 이성을 활용해서 신앙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나태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고 했다. 이 세상의 만물들은 다양한 등급의 완전성을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최종적인 완전성을 필연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다양한 선들이 최선 최고의 존재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3) 저서
그는 사역 초기에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믿는다’고 선언했지만, 그후로 신앙과 이성에 대해서 다양한 저술을 하였다.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현존과 속성을 논증하는 〈독백론〉을 비롯하여, 신의 현존을 존재론적으로 논증하는 <對語錄〉 등을 저술했다. 1099년에는 속죄론으로 유명한 <왜 신은 사람이 되었는가>를 저술했다.
4. 안셀무스의 신학사상
1) 신 존재 증명
그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라는 관념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의 현존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순서를 보면, (1) 하나님은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2) 마음에만 존재하는 하나님은 마음밖에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덜 완전하다. (3)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존재는 마음속은 물론 실제로도 존재해야 한다. (4) 그러므로 완전한 하나님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존재 증명을 아퀴나스나 칸트는 거부했으나, 데카르트와 헤겔은 긍정했다.
2) 속죄론의 만족설
그는 속죄론에 관한 만족설(Satisfaction theory)을 제시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로 인해 빼앗아간 그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게 하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만족하게 여기셨다고 주장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속죄 없이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의 값으로 형벌을 받든지, 아니면 영광의 손실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무한한 죄값을 인간 스스로 갚을 수도 없으며,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죄값을 갚아주는 것으로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속죄하심으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하나님이요 인간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의를 위한 죽음’의 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로써 믿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죽음에 참여할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영광의 상급의 참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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