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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탁상공론 아닌 육화되어 열매 맺는 것” > 한상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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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인 목사

“신앙생활은 탁상공론 아닌 육화되어 열매 맺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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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2 10:47

본문

한상인 목사.jpg

 한상인 교수

한세대학교 구약학 정교수
신학대학원장 역임
순복음 영산신학원 학장 역임
일본 동경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역임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과 목회, 교육, 개척담당 수석부목사
현재 광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본 칼럼은 사도행전 이후의 성령운동을 인물과 교파를 중심으로 살펴보려는 것이다. 본래 현대 오순절 운동까지 고찰하려고 했으나 지면의 한계로 인해 압축시켜 진행하고자 한다. 교부들인 이그나티우스와 암부로시우스, 그레고리, 크리소스톰 등을 비롯해서 교회사를 통해 잘 알려진 인물들을 거론할 것이다. 그 초점이 성령에 관한 것이므로 다른 것들은 간략하게 언급될 것이다.
본고를 통해서 우리 교단의 성령운동이 단순히 20세기에 일어난 시대사조가 아닌 것을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성령의 위대한 역사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교회사 시대 내내 소멸되지 않고 지속되어온 점을 되새기려는 데 목적이 있다.                              <편집자주>

 

 

사도시대의 마지막 사도는 요한이다. 그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요한은 바울의 선교에 의해 교회가 소아시아 지방에서 세력을 얻게 되자, 교회의 초빙을 받아 에베소에 갔다. 프랑스 리용의 감독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요한은 에베소에서 트라야누스 황제 때까지 살았다. 노경에 이르러 그는 종종 교회에 부축을 받고 출석했다. 그는 말도 잘 할 수 없었지만, “젊은 아들아, 서로 사랑하라” 라고 거듭 말했다고 제롬은 전한다.


요한의 성령님은 진리의 예수님을 드러내시는 다른 보혜사이시다(요 14:26). 숨어계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밝히 계시되었으며, 성령님은 예수님을 나타나게 하신다. 그러나 자신은 숨어계신 분처럼 역사하심으로 세상이 알지 못한다(요 14:17). 그처럼 요한은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말한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임하신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다고 말씀한다(요 1:32). 요한이 말하는 비둘기는 산비둘기(dove)이다. 산비둘기는 조금만 시끄럽고 방해를 하면 떠나가 버린다. 그것은 도시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집비둘기(pigeon)와 전혀 다르다. 성령님은 산비둘기처럼 매우 민감하시며 작은 일에도 슬퍼하신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담임목사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는 “성령님은 걸어오셨다가 말을 타고 떠나신다” 라고 표현했다.


요한의 사역은 사도시대의 종말과 교부시대의 개막을 나누는 표지가 되었다. 교부란 교회의 아버지란 뜻이며, 특히 사도들의 제자 교부들은 속사도 교부(Apostolic Fathers)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로마의 클레멘트를 비롯하여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의 폴리카르포스, 알렉산드리아의 바나바, 로마의 헤르마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등이다.


안디옥의 제3대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베드로를 이어 안디옥에서 사역했으며, 사도 요한과 바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요한을 직접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주교의 권위를 강조하고, 교회의 성직 위계체제를 옹호하였다. 그는 이 땅에서 주교가 자기 교회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대표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믿음과 예배로 주교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공동의 띠를 주장한다. 그는 하나 됨을 사랑하고 분열을 피하라고 하였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이단인 가현설주의자들(Docetists)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단지 인간처럼 보였다는 주장을 비판하며 예수님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가현설주의자들은 사랑의 실천이 없기 때문에 가짜라고 했다. 그는 영혼이 육체와 대립한다기보다는 그 위에 있다고 보았다. 심지어 ‘영적인 사람’이 ‘육체를 따라’ 행하는 것도 영적이라고 보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천되고 육화되어 열매를 맺는 것이어야 한다.


그의 성령충만한 영성은 순교자의 영성이었다. 안디옥 교회가 박해를 당할 때 이그나티우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슬에 묶인 채 로마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 일행은 지나는 길에 서머나에서 폴리카르포스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그들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네압볼리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빌립보를 지난 다음 에그나티안 길을 이용해 로마로 향해갔다. 그는 로마 교인들에게 “맹수들을 통해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나는 하나님의 밀이다. 나는 야수들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순결한 떡으로 나타나리라.”고 말했다. 그는 로마로 가는 길에서 마침내 “참 제자가 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그가 순교에 이렇게 애착을 가진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그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롬 8:16~18). 이처럼 당시 성령충만의 표지는 순교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었다. 약 47년 후(155경) 서머나의 폴리카르포스도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 순교의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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