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앞세워 자유를 파괴하는 차별금지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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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8 10:5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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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과잉차별법, 역차별적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숨겨진 정체와 위험성을 알리고 소수의 인권 보호를 위해 다수의 인권 침해가 우려되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자 차별금지법에 대한 연재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질 당시 ‘인권’은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미소 냉전시대에는 개개인의 인권 보다는 안보를 더 중요시하였다. 이후, 교회가 인권단체를 적극 지원해서, 서방 세계는 인권을 무기로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게 된다. 이러한 근대인권은 신학적 인간관이 기반이 되어 형성된 자연법과 자연권에서 파생된 개념이었다.1)1) 이정훈. 「교회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 (킹덤북스 2018, p20 참조).
그런데 현대는 자유를 앞세워 이러한 인권개념을 파괴하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파괴적인 인권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다. 동성애 옹호세력은 이러한 인권개념에 편승해서 동성애 인권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소수자 인권보호’라는 단어에 숨겨진 의도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로, 선한 문화를 역이용하기 위해서 언어학을 결합시켜 만들어진 전략적인 단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동성애자들의 전략 중 놀라운 것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전략이다.
동성애자들은 단순히 ‘인권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 인권보호라는 전략적 용어를 사용하여, 기독교인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유도하려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이 늘 익숙해 있던 선한 문화를 역이용 당하는 것이다. 동성애자 스스로를 ‘소수자’라는 단어로 지칭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늘 억눌렸던 자,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자, ‘피해자’로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소외된 자, 고통과 억눌림에 눌려있던 자를 찾아가셨던 삶을 따르고 싶어 하며 또한 이상으로 가지고 있다. 동성애자들 스스로 자신을 ‘피해자’로 살아온 ‘약자’인 ‘소수자’라고 부각 시키자,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보호를 해줘야 하는 것인지 기독교인들은 혼란을 겪게 된다. 실제로 ‘소수자’라는 약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자 동성애를 인정하는 태도로 바뀌어 버리는 기독교인들을 접하곤 한다.
“성적 소수자”라는 단어는 과거 미국 동성애 활동가들이 미국 국민들의 동성애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 “게이들을 공격적인 도전자들이 아니라 희생자로 묘사하라”는「동성애 어젠다」지침에 따른 것이다.2)2) Kirk and Pill, “The Overhauling of Straight America.”
결국 이 지침대로 행동하자, 미국인들의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둘째로, 소수자라는 용어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동성애는 ‘소수자’라는 단어와는 연관이 없다. 연관이 없는데도, ‘소수자’와 연관을 시키도록 의도적으로 용어를 만들고, 유포시키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오류 속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소수자’라는 단어는 ‘사회적 약자보호’를 함축하고 있다. ‘소수자’라는 단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장애인, 노동법에서 미성년자, 여성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단어이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숫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라는 가면을 쓰고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소수자’이냐 아니냐를 논하기 전에 그에 앞서, ‘동성애’가 과연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논의의 중점이 되어야 한다. ‘소수자’라는 가면을 벗기면 ‘동성애’는 동성애일 뿐이다. ‘동성애’와 ‘소수자’라는 용어를 먼저 분리한 후, ‘동성애’ 자체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소수자’라고 다 보호를 해야 하는가. ‘소수자’니까 무조건 다수자보다 더 보호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성의 대상으로 하는 소아성애자들도 ‘소수자’이므로 자신들의 선택의 자유를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할 경우, 어린아이를 성의 대상으로 할 수 있도록 소아성애를 표현하고 추구할 수 있는 사회와 제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할 뿐 아니라, 협조지 않는 시민들은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소아성애가 과연 사회적 보호를 받을만한 선택의 자유인가 가치판단을 하는 것처럼 동성애도 먼저 보호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현대사회는 최고의 가치의 자리에 ‘인권’이 자리하고 있는 문화의 흐름에 편승하여 ‘인권보호’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동성간 ‘성행위’를 최상위 ‘인권’으로 격상시키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무엇을 인권 개념에 포함시킬 것인지 그 선택의 자유를 개인이 행사한다는 태도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동성애자라 할 찌라도 사람으로서의 그 개인의 인권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천부인권으로서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동성간에 행해지는 ‘성행위’는 동성애자 개인의 ‘인권’과 마땅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성간 ‘성행위’를 ‘인권’에 포함시키는 것이 선택의 자유인 양 자유의 개념을 왜곡시키고 있다.
이러한 인본주의 인권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권’개념을 정립한다는 점이다.. 즉,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서고자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독립적 존재로 서기위해 ‘인권’개념을 정립한다면 하나님은 인권개념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인권’을 하나님보다 더 높은 가치로 올려놓는 것으로서 이 시대의 우상숭배라 할 것이다. 결국 이들이 무기로 삼고 있는 ‘인권’은 진리에서 이탈된 것으로, 인본주의 자유를 앞세워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파괴하는 것이다.
박서영 법무사 약력
- 복음법률가회 실행위원
- 「동성애의 사상적 기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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