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으로 위장한 ‘인권’, 상대방 인권·존엄성은 타도의 대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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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는 최고의 가치중 하나가 바로 ‘인권’이다. 막시즘이 몰락할 당시 열혈공산주의자들이 칼 마르크스의 저서 「경제학 철학 수고」를 근거로 그 당시 최고 인기 단어였던 휴머니즘을 막시즘에 결합시켜서 네오-막시즘(신공산주의)라는 사상을 만들었다. 다만, 공산주의 사상을 앞세우면, 국민들의 반감에 부딪히므로,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앞세웠다.
그런데, 휴머니즘 즉, 인권, 평등, 평화,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인권보호 등 아주 그럴싸한 단어를 내세우다보니1), 1968년 프랑스 68혁명을 절정으로 해서, 1960년대 중반부터 서구사회를 이끄는 최대 주류사상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누구도 감히 ‘인권’에 대해서 반대하지 못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인본주의 ‘인권’ 개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원문과 다르게 해석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 네오-막시즘 역시 여전히 유물론, 무신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서기 위한 수단으로 휴머니즘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사용하는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는, 단어만 똑같을 뿐, 그 의미는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첫째로, 이들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인권’은 하나님을 권력을 가진 자로 보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와 틀(frame)을 통해 인간을 억압해 온 것으로 파악한다. 결국, 인간이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권력자인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틀을 ‘투쟁’을 통해서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학교를 권력구조로 파악하고, 계급투쟁의 장소로 가르친다. 즉, 교사들은 권력을 가진 계급, 학생은 억압을 당하는 계급으로 가르친다. 가정도 부모는 권력을 가진 계급, 자녀는 억압을 당하는 계급으로 가르친다. 억압을 당해온 학생이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권력자인 교사와 부모에게 투쟁해야만 자신의 인권을 쟁취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교회에 가라’는 어머니를 자녀가 학생인권조례에서 배운데로 ‘인권’침해라면서, 아동학대죄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생의 인권은 있고, 교사의 인권은 없고 , 학생의 인권은 있고, 부모의 인권은 없다. 권리는 있고, 의무는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막시즘의 계급투쟁이론에 근거한 인권이다. 이 파괴적인 인권은 인권을 모든 인간에게 인정하는 천부적 인권이 아니라, 억압당해왔다고 주장하는 계급의 인권만 있고, 상대방 계급의 인권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타도와 말살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파괴적인 인권이 각 시도의 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인권옹호관, 서울시 자치헌장조례안, 군인권센터등을 통해서 건강한 인권을 대체해 가고 있다. 그래서 이것들을 ‘작은 차별금지법’이라고도 부른다. 동성애자들 역시 자신들은 억압을 받아온 피해자계급, 다수자는 억압을 해온 계급으로 보고, 다수자가 세운 질서를 ‘투쟁’을 통해서 깨뜨려서 ‘인권’을 쟁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상대방인 다수자의 피해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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