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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 28:1~10)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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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 28:1~10) > 설교




말씀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 28:1~10)

권동준 목사(경기동지방회 증경회장, 성남순복음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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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27 10:55

본문

권동준목사.jpg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기독교 최고의 축제일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려움을 당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특별히 코로나로 고통을 당하는 분들과 수고하는 의료진들에게 새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부활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 깨뜨리시고 부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복음 중에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인간은 죽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아무 일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는 아무런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랑하던 제자들이 실망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왜 주님은 그렇게 죽어야 했었는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를 중심으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죽은 시체라도 보고 향유를 발라드리려고 했는데 무덤에 가까이 가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흰옷 입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마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저주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 종파들이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는 있어도 부활절 절기는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만 부활절 예배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아무리 험한 시험과 역경이 몰아친다고 할지라도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에 새로운 용기와 소망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로, 부활은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구약의 많은 선지자로부터 예언되어 왔으며 예수님 자신도 ‘내가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을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여러 번 예언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인들을 찾아오셔서 여인들에게 이르시되 “평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나아가 무릎을 꿇고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반대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사설-예수님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 직전 상태에 이르렀다가 후에 깨어났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십자가를 지키고 있던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부활을 부인하려는 것은 마귀의 주장입니다. 

 

둘째는 도거설-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많은 사람과 제자들에게 자기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다가 부활을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7명씩 세 겹으로 지키고 있었고 무엇보다 제자들이 썩은 시체를 믿고 순교했겠습니까? 

 

셋째는 환상설-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나도 간절히 사모하니까 아마 환상으로 나타났다는 가설입니다.

 

넷째는 지진설-예수가 무덤에 장사 되어 묻혀있는데 지진이 나서 예수님의 시체를 삼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활은 세상 임금을 추방하는 승리인 것입니다.

 

(요 12:31) “이제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부활은 세상 임금인 마귀추방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마귀의 사망 권세를 무효화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부활이 가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평화로운 어느 마을에 갑자기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큰 호랑이가 나타나 농작물과 가축에 피해를 입히고 인명 피해까지 주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심각하게 의논한 결과 매년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매년 제비를 뽑아 선택된 집에서는 슬픔의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홀아버지와 외동딸이 살고 있는 집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집은 매일 매일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그때 그 마을에 아주 용감한 젊은이가 안타까워하다가 “내가 이 처녀를 구하겠습니다. 내가 반드시 그 호랑이를 잡고 말겠습니다”라며 처녀 복장으로 위장하고 호랑이굴에 들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의심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이 호랑이와 싸워서 이긴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새벽 온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굴로 몰려갔습니다. 굴속은 적막하기만 했습니다. ‘역시 이 젊은이도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구나’ 하고 생각할 때 죽은 호랑이를 등에 진 젊은이가 당당하게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슬픔에 잠겼던 마을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호랑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마귀는 더이상 세상 임금이 아닙니다. 그는 사망 권세를 예수님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마귀가 의기양양하게 사용하던 무기인 사망 권세는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승리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며, 영생의 부활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나의 죄, 너의 죄, 인류의 죄, 아담의 죄, 원죄, 자범죄, 모든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요 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은 죽음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승리입니다.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주일 아침 설교 제목을 ‘예수가 오신다면’ 그렇게 잡았답니다. 인쇄소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목사님, 설교 제목이 이상해서요.” “왜요?” “예수가 오신다면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와야 될 것 같아서요.” “아니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목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 가지 일로 힘들었거든요. 외로웠거든요. 절망스러웠거든요. 교인들이 이러저러한 일로 힘들어 하는데 도와줄 수 없었거든요. 목사님 스스로 무너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예수가 오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한데 내가 왜 절망했을까? 내가 왜 낙심했을까? 부활하신 ‘예수가 오신다면’ 그분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셔서 가난과 질병과 저주와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가 오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베드로는 가는 곳마다 중풍 병자를 고치고 베드로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바울 사도는 유라굴로 태풍도 잔잔케 하고 바울 사도의 손수건만 올려놓아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이상 가련한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죽어서 부활할 뿐 아니라 현재에도 부활의 권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으로 예수님은 도마에게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않고 믿는 우리들은 이미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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