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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일꾼 (고전 4:1~5)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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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일꾼 (고전 4:1~5) > 설교




그리스도의 일꾼 (고전 4:1~5)

서동근 목사(교육위원장, 동신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19-11-11 15: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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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성공한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지만, 실패한 사람은 자기의 직분을 멸시하고 한탄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라(롬 11:13)’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행복감에 잠겨 살고 있기에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라’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주님을 위한 고생이나 죽음을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소명의식이 있었습니다. 소명 의식이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는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 성경적인 의미는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되었고 일을 맡기시려고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확신이 소명 의식입니다. 믿음은 확신입니다. 일을 맡기시려고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두 번 태어나는데 한번은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으로서 이것을 신학적으로 ‘구원적 소명’이라고 합니다.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에 소명이라고 합니다. 또 한 번은 영적인 일을 위해서 태어나는데 이것을 ‘사명적 소명’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구원적 소명에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는(직분자들) 영적인 일을 위해 사명자로 또 한 번 부르심(Calling)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철학자인 루소는 ‘사람은 두 번 태어나는데 한 번은 생존하기 위해서 태어나고 다른 한 번은 일을 하기 위해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두 가지 명사로 표현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일꾼’이라는 말과 두 번째는 ‘비밀을 맡은 자’라는 말입니다.

 

①‘일꾼’이란 말은 헬라어로 ‘휘페레테스’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배의 맨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지칭할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그러니까 노예 가운데서도 제일 힘든 일을 하는 노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②‘비밀을 맡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오이코노모스’는 오이코스-집, 네모-다루다, 분배하다, 관리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즉 ‘오이코노모스’란 집을 관리하며 식솔들에게 필요를 공급해 주는 자라는 의미로, 다시 말해 청지기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을 배의 맨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보았을 뿐더러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사역을 관리하는 청지기(집사), 머슴으로 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직분자의 양면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직분자란 노예선의 배 밑창에서 노를 열심히 젓는 노예와 같이 낮아지고 섬기는 자이어야 하며, 한편 천사에게도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복음과 거룩한 교회를 관리하고 섬기는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직분자란 특권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 특권을 누림으로 행복이 있고 기쁨과 축복이 있습니다.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일하지 않고 섬기지 않고 서 있어 보십시오. 단번에 눈총이 따갑고, 여기저기서 격멸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절까지 확대하여 살펴보면, 7절과 8절, 11절에 ‘주셨으니, 주셨다, 주셨나니’라는 표현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각자 맡은 직분들을 생각할 때 단순히 ‘임명하셨다’고만 믿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 직분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 성도들에게 각각 ‘주셨으니, 주셨다, 주셨나니’ 주신 큰 선물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장·차관은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 합니다. 그러나 성직은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목사님께서 임명장을 수여합니다. 민수기 18장 7절에서는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난날에 죄 짓고 살았던 생활에 비하면 이런 직분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물이 선물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선물이 ‘악물’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날 성령세례 받은 후 천국복음을 전하며 유대인들을 위해 마태복음을 기록하며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랑의 빚을 갚는 헌신된 제자의 삶을 살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변합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팔자가 변하고 운명이 변하고 삶이 변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7~9절에는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었는데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말합니다.


칼뱅이 ‘우리가 복음에 대한 직무를 갖게 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진 빚이다’라고 하였듯이 우리가 맡은 청지기 직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청지기 직분을 잘 감당하여 주님께 진 빚을 다 갚고 이 세상을 떠납시다. 빚쟁이로 주님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는 청지기의 존재 목적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①‘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②‘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③‘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즉, 성도를 온전케하며 그 결과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교회) 성장시키고 성숙시켜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직분자로 세우신 첫 번째 목적은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입니다.


공동번역으로는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라고 번역했는데, 11절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세워’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직분자들을 세워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는데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 주님의 소원입니다. ‘온전’(타밈) 완전하고 완벽하며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온전함’이 철저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하나님이 온전함의 원형이시며, 하나님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뜻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살아있는 작은 예수로(온전한) 만들어 가라는 명령입니다. 성경에 ‘온전케 한다’ 헬라어 ‘카탈티조’ 동사인데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을 수리하다’ 혹은 ‘타락한 사람에게 영적 건강을 회복시켜주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두 번째 목적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입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를 ‘봉사의 일을 위하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봉사의 일을 위하여 청지기 직분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까지 섬김으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우리 예수님은 주와 선생이 되어 우리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고 섬김과 봉사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섬김과 봉사의 정신을 본 받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 섬김을 다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 간에 서로 돕고 서로를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교권 행사하라고 주신 직분이 아니고 봉사하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집사(執事) 라는 말의 사전적인 뜻은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입니다. 헬라어 종, 시중 드는 자, 수종자, 보조자입니다. 한문으로는 잡을 집, 일사 자입니다. 일을 손에 잡은 사람이 집사입니다. 반대로 일을 손에서 논 사람은 죽사입니다(죽은 사람). 헬라어로 집사는(디아코니아) 다름 아니라 봉사를 의미한 단어입니다. 집사라는 단어 ‘디아코니아’는 디아코노스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먼지 속에서 일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디아 ‘통하여, 가운데로 와’, 콘 ‘먼지’,  오스 ‘일군, 사역자’ 세 단어가 합해서 명사 ‘디아코니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사란 먼지를 피우면서 분주히 바쁘게 가운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주님과 이웃과 교회, 성도들을 섬기며 봉사하라고 직분을 주셨습니다.

 

세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역시 교회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에는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몸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개성과 은사와 직분을 주셨습니다. 똑같은 생각을 강조하고 똑같은 스타일을 강조할 때 우리 공동체는 상처와 갈등만 남습니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이어서 아름답습니다. 흑백이 아니라 총천연색 칼라여서 아름답습니다. 건물이 크다고 큰 교회가 아닙니다. 신앙의 거인들이 많은 교회가 큰 교회입니다. 그래서 직분자들이 성도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목사님과 사모님을 세워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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