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을 향하여 (히 12:1~3)
전상균 목사(광주지방회장, 신광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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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1-10-25 14:17본문
1945년 3명의 젊은 복음 전도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래함, 템플턴, 클리포드.
1945년에 이 세 사람 모두는 마치 막 비상하기 위하여 연료를 분사하는 로켓과 같이 폭발적으로 사역의 전면에 나타났습니다.
빌리 그래함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척 템플턴이나 클리포드는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들 모두 1945년도를 기점으로 그토록 화려하게 등장했는데도 말입니다.
5년 후 템플턴은 라디오, 텔레비전 해설가와 신문 논설위원 쪽의 직업을 찾아서 설교 사역에서 떠나게 되었습다. 이때 템플턴은 규범적, 보수적 의미에서 예수를 믿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1950년경, 장래가 촉망되던 이 설교자는 더 이상 강단에 서지 않았고, 예수를 믿는 확고한 신앙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클리포드는 1954년경에 가족, 사역, 건강, 그리고 급기야는 생명까지도 잃게 되었습니다. 음주와 금전에 대한 무책임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한때 위대한 설교자였던 그는,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후미지고 허름한 여인숙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마지막 직업은 텍사스 주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1945년 특별한 은사를 가진 세 명의 젊은이가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그들 중 단 한 명만이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의 길에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단 한 명,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는 2018년 2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몬트리트에 위치한 자택에서 99세로 평안하게 소천했습니다.
빌리 그래함의 손자 윌 그레이엄은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빌리 그래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이전보다 더욱 살아있을 것입니다. 방금 이사를 완료했습니다. 오늘 할아버지가 죽음의 땅에서 살아있는 땅으로 이사한 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할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에 대한 약속을 전하는데 그분의 전 생애를 헌신하셨습니다. 오늘 그분은 당신이 소원하셨던 일, 구주 예수 앞에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셨습니다. 나의 가족은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작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끝마치는가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계속해서 주님께 신실하게 살아왔으나 템플턴과 클리포드는 중도에서 탈락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완주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굳건하게 인생을 끝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해 주는 것이 바로 ‘인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장거리 경주이며, 속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구력과 뚝심, 그리고 완주하는 능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라톤과 비유하기보다 조정 경기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결승선이 보이질 않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은 결승선이 보입니다. 얼마만큼 왔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결승선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조정 선수들은 결승선을 등지고 경주합니다. 우리 모두 결승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 결승선을 향해 나갈 수 있습니까?
조정 선수는 결승선을 등지고 경기하지만 그들에게는 타수가 있습니다. 키를 조정하는 타수는 뱃머리를 향하여 앉고, 노를 젓는 조수는 타수를 향하여 앉아서 노를 저어 갑니다. 조수는 타수만 잘 바라보면 됩니다. 그들은 타수가 강력한 방법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인생의 경주를 굳건하게 마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킬 때, 우리는 경기를 굳건하게 마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결승점을 굳건하게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주님의 보호하심과 능력으로부터 스스로 격리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경주가 끝나 우리는 결승선을 통과하고, 이 땅에서의 삶도 끝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며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 그의 인생 후반기에 남긴 말입니다(빌 3장 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결승선을 향하여 사력을 다해 매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으로 살 때 ‘굳건하게’ 인생을 끝마치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절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허다한 증인들 그들은 주님을 바라보며 경주를 마친 믿음의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경기장의 관중석에 앉아 자신들처럼 우리들 역시 최종 골인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인내로서 참고 열심히 경주를 할 것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경주를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믿음의 주님이시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베드로가 잠시 물 위를 걸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 큰 위기를 겪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물 위를 걸어서 찾아오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뜬금없는 청을 드립니다. 자기도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셔서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해서 물 위로 나갔습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강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베드로가 그 바람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주님께서 저를 건져주셨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시선의 중요성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풍랑이 이는 바다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바람과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믿음이 흔들립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며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엄습해 오는 위기 상황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에 한눈을 팔게 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위기 상황을 바라보게 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도 주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찬407장 2절) 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 주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아멘
이 찬양이 우리의 고백이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만 바라보며 인생의 경주를 잘 마쳐 증인들의 반열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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