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4~17)
박영진 목사(강원제일지방회 증경회장, 순복음속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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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9-10-14 13:26본문
1991년 10월에 생애 첫 승용차로 프라이드 중고를 샀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싸구려 중고차로 보이겠지만 내게는 가장 귀하고, 가장 좋고, 가장 보기 좋은 차였습니다.
아! 얼마나 보기 좋은지!!!
그런데 12월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서울을 다녀오다가 영동고속도로에서 미끄러져 오른쪽 전조등이 깨지고 앞부분이 찌그러졌습니다. 며칠 후 눈은 녹아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지만 그러나 제 차는 변함없이 깨지고 찌그러진 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보기 비참한지!!!
그 당시 차를 수리할 돈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타고 다니려니 깨지고 찌그러진 보잘 것 없는 중고차처럼 제 삶도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한번 무엇엔가 타격을 받으면 그 상처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실패도 경험합니다. 머리가 빠지고 이가 망가집니다. 몸에 장애가 옵니다. 부부 사이에 금이 갑니다. 몸은 늙어가고 힘도 약해집니다. 무언가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였습니다. 그렇게 시들고, 상하고, 흉한 상태로 죽을 때까지 가야하나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믿으면 이전 것은 무엇이든 그치고 완전히 새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합니다. 놀라운 이 약속은 믿는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그렇지만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아직 새것이 된 자신을 경험하지 못한 신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제로 신자를 새롭게 하셨고 매일매일 더욱 새롭게 하십니다.
1. 새것이 되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무엇이 새것이고 무엇을 보라는 말인가요?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달라지는 게 나타납니다.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일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일어나서 걷고 뜁니다. 나면서부터 맹인인 사람이 눈이 고쳐져서 보게 됩니다.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놀랍니다. 곧 소문이 퍼져서 예수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이 외형적인 온전함을 말합니까? 그런 면도 있겠지요.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은 정말로 고쳐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과연 그것이 새로워진 것인지 의문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이 지나갈 때 그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보고 뭐라고 할까요? “야! 새로운 사람이다. 우리와는 다르다”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이나 성해져서는 새롭다고 할 수 없어요.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치고 칠을 다시 하면 새롭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본래부터 사고가 안 난 차보다 새로워진 것이 있나요? 전혀 없어요. 새로워졌다는 것은 잠깐일 뿐입니다. 그 차를 타고 나가면 사람들이 “야, 새로운 차다 신기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워졌다는 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동차의 예를 들어봅시다. 흔해 빠진 외형을 고쳐서는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차와 같지요. 그러나 그 안에 원자력 엔진을 넣고 이제까지 없던 특별한 장치를 넣습니다. 그래서 20년, 30년 기름 넣지 않아도 잘 달리고, 길이 막혔을 때 공중에 떠서 날아갈 수도 있어서 한 시간 거리를 1분에 갈 수 있다면 그게 새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운전하는 사람이 자기 차가 그 정도로 새로워진 것을 모른다면 전혀 그 유익을 못 봅니다. 그러면 보통 차와 차이가 없지요. 휘발유 많이 먹고, 매연 내뿜고, 주차 공간 많이 차지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고장도 많아지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가끔 가다가 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운전할 때마다 불안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늙고, 힘 빠지고, 여기 저기 아픈 인생살이와 같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 피조물, 예수 믿고 거듭난 신자는 새로 창조된 새로운 종류의 인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신자도 욕먹으면 화나고 억울합니다. 신자도 돈이 있어야 삽니다. 성질이 조금 순해지고 온유해진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정도로는 새로운 인종은 아닙니다. 그 정도라면 새 피조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고 광야에 머물 때 텐트가 수도 없이 많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달랐습니다. 겉모양은 특별할 게 없었지만 사람들은 접근하기를 두려워했고 오직 제사장만이 거기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명령이 나왔고, 전쟁도 거기서 조정했습니다. 그 텐트는 하나님이 계신 성막이었습니다. 건물은 외형보다는 그 안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귀신에게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새것이 된 신자 속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하나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새로워졌습니까? 망가졌던 몸이 고쳐졌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내면이 새로워졌습니다. 이제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나는 그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 새로운 존재로 살기
바울이 외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겨 싸여도 벗어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습니다. 거꾸러뜨려도 망하지 않습니다. 한 두 번 하다가 그치는 게 아닙니다. 백 번, 천 번, 만 번,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모든 죄와 저주에 대해 이미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의 생명이 들어와 있기에 수없이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3. 믿음을 크게 하라
이제 새 피조물을 다시 정의해 봅시다. 새 피조물은 분명히 내면적인 것입니다. 보라! 어떻게 보라는 말입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벧전 2:9).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로, 얼마나 크게, 얼마나 아름답게 보느냐가가 그 새 피조물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믿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마음이 새로워야 몸도 새롭습니다.
그리고 새 피조물은 예수 믿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것으로 바뀐 다음에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6-17). 살면서 만나는 역경에, 힘든 상황에,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도전할수록 그 사람은 더 새로워집니다.
어떤 분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문제가 없다고 부정하면 ‘정신병’/ 문제를 회피하면 ‘신경증 노이로제’/ 문제를 수용하면 ‘보통사람’/ 나 자신이, 내 삶 자체가 바로 문제라면 ‘성숙한 사람’/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다면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못 사는 이유를 남에게 댑니다. 부모를 잘못만나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나는 똑똑하지만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채용되지 않는다. 속아서 돈을 다 빼앗겼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나는 안 될까? 무엇이 꼬였는가? 나보다 실력 없는 사람들도 잘 되는데 나는 왜 그런가? 무엇 때문인가?
내게 필요한 것은 이제 하나뿐입니다. 믿음을 최대한 발휘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신 내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닙니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들어와 계시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가요? 아닙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 창조된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게 나쁜 것들은 다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의 생명은 천 번을 죽여도 일어납니다. 무서운 고난을 이깁니다. 멸시와 천대도 극복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무덤을 깨뜨리고 찬란하게 살아나옵니다. 언제나 이 믿음 안에 머물면 나도 이긴 자, 승리자입니다.
새것이 되는 신비한 변화를 육신의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믿고 선언하세요. 아름다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오늘 하루만 그러지 말고 내일도 그렇게 하세요. 하다가 실패했나요? 마음대로 되지 않나요? 다시 새롭게 하세요. 천번 만번 성령님과 함께 예수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일어나세요.
“나는 죄와 저주, 실패와 불행의 멍에를 지고 살았던 과거와 결별한다. 나는 믿음으로 완전히 새로워진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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