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특별한 존재인가 (창 1:26~27)
김경문 목사(선교지역총연합회장, 순복음중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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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6-07-06 12:49본문

이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피어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우리도 늘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거기 있다. 사자가 곰에게 ‘멍청이 같은 놈’이라고 무시할 수 없으며, 사과나무가 갈대를 보고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절대적인 존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극치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기뻐하시는 존재로 지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존재는 특별하고, 남다르다. 그러면 과연 어떤 특별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1. 우리들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창 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새, 물고기, 나무, 산과 바다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지만,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처럼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각하는 지성, 선과 악을 분별하는 ‘양심’,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창조적 삶과 책임감 있는 삶, 무엇보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존재를 의미한다. 사람의 가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고, ‘누구의 형상을 지니고 있느냐’에 있다. 비록 세상은 우리를 향해 부정적으로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기억’하며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낳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를 ‘아들과 딸로 삼으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아버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우주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청지기’로 세우심으로 축복하셨다. 이렇게 하심은 인간이 우주 만물을 가꾸며 이용하여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더욱 드러내도록 함이었다. 우리가 남의 자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면 그 집안에 대한 주권 침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 한 사람을 누가 뭐라 한다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주권 침해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운명에 처해 있든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난다 할지라도 자학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된다.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답답하고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다. 인생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막길이 있을 때 숨차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면 “야호!”하며 성취감과 정복감을 만끽하는 것이다. 인생은 평안히 달릴 수 있는 평탄한 길, 쉽고 가벼운 내리막길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창조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 사랑받고 있는 특별한 존재임으로 이같이 창조적으로 살기를 축복드린다.
2.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둘째 아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길이 열렸다. 구원의 길을 만드셨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기에 특별하다. 동물들은 본능대로 살아가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할 수 있는 존재이다.
성 어거스틴은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우리의 마음이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다. 돈이 많아도, 성공해도, 명예를 얻어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공허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길 되신 예수님을 통해 마음껏 예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의 영혼은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제2차 세계대전 때 공포의 수용소에서 작업할 수 없는 장애가 있는 어린아이를 가스실로 보낼 때 아이는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부짖었다. 이때 엄마는 “걱정말아라, 내가 함께 간다”며 달래고 가스실로 들어간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느낀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대신해 이해 상관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여 다른 사람을 살리셨다.
3. 우리를 위해 성령께서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롬 8:26)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과테말라 알폰소 대통령은 자신의 신변안전에 남달리 신경을 쓴 인물이다. 그래서 대통령 관저를 중심으로 반경 2km 안에 있는 건물은 무조건 관저 쪽으로 난 창문을 폐쇄하고, 어떤 물건이라도 친위대의 엄격한 사전검사 없이는 절대로 관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음식물은 검사관이 시식한 다음이라야 그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150만 불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대통령 전용의 방탄차를 구입했다. 그런데 이 방탄차를 인수하고 한껏 기분이 좋았던 어느 날 평소에 절대적으로 신임하던 친위대원의 총탄을 맞고 그렇게 가기 싫었던 지옥으로 급행하고 말았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 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깨달아야 한다. 성령과 동행하는 길이 곧 사는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위해 언제나 우리 곁에 와 계신다. 우리가 모든 삶을 성령님께 맡기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특별한 삶이요, 존재인 것이다.
4. 우리가 세상 잣대로 살지 않고, 믿음의 잣대로 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려다가 실패했다. 오히려 사람을 때려 죽였다.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광야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양치기 생활을 하면서 야인의 삶을 살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를 40년 만에 찾아오셨다. “너는 일어나 애굽으로 돌아가 너의 동족을 출애굽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라고 했다. 자신은 그 일을 감당할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재주가 없다고 변명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모세가 전적으로 인간의 잣대로 생각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잣대가 아닌 하나님의 잣대로 믿고 따르기를 원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출애굽 시키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진격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실 때도 같은 원리를 적용하셨다. 인간 잣대로 생각한 빌립이 아닌,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진 안드레를 통해 기적을 베푸셨다. 주님은 믿음이 있는 자와 함께 하신다! 믿음이 있노라 하는 사람들 중에도 살아가면서 때론 어려운 일이라고, 힘든 일이라고, 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세상과 타협하고 무릎 꿇는 사람도 있다. 성령은 세상 잣대가 아닌 믿음의 잣대로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사 40: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하나님은 전 세계에 있는 바닷물을 손바닥 안에 담을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께 있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되에 담을 수 있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300억 광년이나 되는 우주의 길이를 한 뼘으로 재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수가 존재하는데, 그 은하수들이 또 각각 약 1,000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그것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계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시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우리들이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높아지고, 위대해지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더 위대해진다. 이처럼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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