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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공정과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 (마 1:3-6, 11:12)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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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공정과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 (마 1:3-6, 11:12)

오세광 목사(서울강서지방회 증경회장, 성산순복음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1-05-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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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광 목사.jpg

요즘 우리나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과연 이 나라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공의로울 것이라고 하는 표어대로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오 목사가 단언하건대 절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관리하는 나라에서는 평등과 공정과 공의가 될 수가 없습니다. ‘평등과 공정과 공의는 오로지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마태복음 1:3-6의 예수님의 족보 중에서 나오는 이방인 여자 중에 다말과 라합을 통해서 평등과 공정과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다말

 

다말은 정말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꿈을 안고 결혼을 하였지만, 그의 남편인 엘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죽이시므로 다말은 과부가 되었습니다(38:7). 유다는 엘의 동생 오난에게 다말에게서 자녀를 낳아서 다말이 형의 대를 잇도록 하게 했으나, 오난은 그것이 싫어서 거부함으로 하나님께서 오난도 죽이셨습니다(38:8-10).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잃은 유다 입장에서는 셋째 아들도 죽을까 봐 염려되어 셋째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면서 다말을 친정집으로 보냈습니다(38:11).

 

유다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생각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남편과 시동생이 죽은 것은 자기와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시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남자 죽이는 여자로 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다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의 며느리로 와서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고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그래서 다말은 유다의 집안에서 대를 이을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남아있는 소망은 셀라를 통해서 대를 잇는 아들이 있어야만 남은 여생을 평탄하게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인 유다는 셀라를 통해서 대를 잇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말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다말은 자신의 대를 이을 수 있는 권리가 거부당하자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즉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유다에게 직접 대를 잇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다말은 기생으로 변장하여 부인을 잃어 슬퍼하는 유다를 유혹하여 잉태합니다(38:12-18). 이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불륜이고, 정당하지 못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다말의 입장에서는 오직 남편의 가문에서 대를 이어야 하므로, 그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기 싫었고, 셀라 자신도 형들처럼 죽을까 봐 거부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셀라가 유다에게 말하여 다말에게 들어가서 엘의 대를 잇겠다라고 했으면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랬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가 셀라를 낳고, 셀라가이렇게 나가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죽음을 두려워한 셀라는 유다의 남은 아들로서 예수님의 조상이 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말이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말의 행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행위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즉 다말이 시아버지를 택한 것은 음란해서가 아니며, 자기의 남편이 죽은 것이 자기의 허물이 아님과 셋째 아들 셀라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보다 더 큰 목적은 유다의 맏며느리로서 그 혈통을 계승할 책임과 만일 이 일을 이행치 못하면 자기가 축복받은 민족에게서 끊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다말의 행위가 옳았다는 것을 확인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유다는 다말이 임신한 것을 알고 당시의 법에 따라 다말을 화형시키려고 했을 때, 다말이 준 자기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고서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38:26)라고 했습니다. 즉 다말의 행위는 유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옳은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 행위는 위에서 말한 대로 유다의 약속을 믿은 것,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다말의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의 계통이 셀라가 아닌 다말을 통해서 이어지게 되고, 다말의 이름이 당당하게 기록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라합

 

라합의 직업은 기생입니다(2:1). ‘기생이란 단어의 히브리 원어 자나는 동사로 기본어근이며, '간음하다, 매춘하다, 창녀이다'를 의미합니다. 자나는 보수를 받았으며(3:19), 신원을 밝혀주는 표시를 지녔고(38:15; 7:10; 3:3), 그들 자신의 집을 소유하였는데(5:7), 신전 창녀와는 다른 신분이었습니다. 신전 창녀의 경우는 히브리어 명사 케데샤’(23:17)라는 말이 달리 있으므로, 라합은 보통 창녀로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여호수아의 인솔 아래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정탐꾼이 여리고 성에 들어갔다가 들키게 되자 라합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라합은 정탐꾼들을 고발하지 않고 숨겨주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것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전해 들은 소문만으로 하나님을 믿고 인정했습니다(2:9-11). 기독교 신앙은 단지 믿음이나 신앙고백이 아니라 삶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큰일들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도 타락하고, 범죄하고, 불평하며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라합은 이방 여인으로서 하나님의 손길을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전해 들은 말로써 하나님을 믿고 인정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으며, 또한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살려주면서 요구한 것은 아버지와 형제들, 즉 가정을 구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2:12). 그러면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라합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한 것을 보면 라합이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히브리서 11:31과 야고보서 2:25에는 라합이 믿음과 행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8:5-13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과 같은 것입니다(8:10).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과 같은 믿음으로 가진 라합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이셨을까요? 최고의 선물을 주시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라합의 직업이 기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라합의 과거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라합의 많은 허물을 덮어줄 뿐만 아니라, 라합을 사랑하되 자녀를 낳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살몬(살마)이었습니다(1:4; 대상 2:11). 살몬의 이름이 역대상 2:11에서는 살마로 나오는데, 살마의 뜻은 강함, 을 의미하고, 살몬은 의복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의 이름은 그 사람의 됨됨이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몬의 이름의 뜻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강한 힘으로, 덮어주는 옷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살몬은 라합의 모든 허물을 강한 의지와 사랑으로 덮어주고,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의 아들 보아스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살몬과 라합의 아들인 보아스의 인품은 룻기를 통해서 보면 매우 훌륭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말이 있는데, 보아스의 훌륭한 성품은 그의 아버지 살몬으로부터 배우고 훈련받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두드린 라합을 높이시길 원하셨고, 그래서 성품 좋은 살몬을 준비하셔서 라합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다윗의 고조모가 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말, 라합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말, 라합이 하나님 나라에서 빛날 수 있는 것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지는 평등과 공정과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들어가고자 하면 들어가는 나라, 믿으면 거저 주어지는 나라, 이것보다 더 평등과 공정과 공의로운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라고 하셨습니다.

 

천국, 평등과 공정과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침략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사람들의 삶은 이 비밀을 널리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말과 라합이 예수님 족보에 올라간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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