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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만 보고 물 위를 걸으라! (마 14:22~33)

윤노원 목사(경기제일지방회장, 성문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2-10-14 09:04

본문

20221014090433_74ce456ae0ee161e59853042e1a72f0d_0xsr.jpg예수님께서 하나님 그 분으로서 기적을 행하신 것을 표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실 때 의도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행하신 표적도 있고, 의도를 가지고 행하신 표적도 있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나 빈 들판에서 오병이어를 행하신 표적은 의도치 않은 표적입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물위를 걷는 기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행하신 표적입니다.

마태복음 14:13~21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행하시니 무리들이 억지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께 환호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했습니다. 제자들은 가기 싫어서 머뭇거리는데 억지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22-23절).

 

예수님이 이렇게 의도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배만 채우시는 분이 아니라 물 위를 걷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모든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바람이 그치고 배에 있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절하고 경배했습니다. 하나님께만 드리는 경배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고백했습니다(32-33절).


1. 구약에 믿음으로 홍해를 가르고 요단강을 건넌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1)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홍해 앞으로 나아가라 명령했습니다(출 14:16).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 때 홍해는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는데 홍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2)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야 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지시하자 순종했더니 물이 끊어지고 여리고로 건너갔습니다(수 3:16).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데 요단강은 결코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3)선지자 엘리야가 사명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그의 수종 엘리사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이때, 선지자 엘리야가 자기의 겉옷으로 물을 치니 요단강이 갈라졌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건너갔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엘리사도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니 갈라져 다시 건너게 하셨습니다(왕하 2:1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갑절의 능력을 구하는 일에 요단강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2.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나 여호수아나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하지 않으셨습니다.

 

1)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해결하신 방식은 광풍과 파도가 불어도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상식을 초월하고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재촉으로 제자들이 바다 한가운데 쯤 왔을 때 거센 바람으로 파도가 일어 배를 삼킬 듯했습니다. 제자들이 파도로 인해 당한 고난은 마치 귀신 들린 것처럼 매우 고통이 심했습니다(24절). 유대인들은 갈릴리 바다에 세차게 부는 맞바람을 ‘리워야단’이라는 마귀가 일으키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시 74:13-14). 이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실 때 유령이라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26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27). 여기서 ‘안심하라’는 말은 ‘담대하라, 용기를 내라’는 뜻입니다. ‘나니’는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로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예수님께 ‘주님,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물 위를 걸어 주님께로 오라고 명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걸어갔습니다.

 

2)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길이 되시고, 믿음의 도전을 통해 더 탁월한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이 거센 바람으로 풍랑이 이는 물 위를 걸어오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만 보고 세상의 물 위를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거센 파도와 강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를 걷는 것은 어떤 장애물이나 어려운 일을 만나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많은 시험의 바람과 환난의 파도를 만나도 물 위를 걸으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막 9:23, 빌 4:13). 성도가 시험과 환난의 광풍과 파도를 만날 때 예수님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길을 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길이십니다.

 

원수 마귀가 일으키는 환난의 바람과 파도를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던 것처럼 물 위를 걸어가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어려움과 역경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입니다. 시험과 환난의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지 말고 예수님과 함께 그 위를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하셨습니다.

물 위를 걸었던 믿음은 적은 믿음이 아닙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의심하였기에 적은 믿음입니다.

‘의심’의 뜻은 ‘서로 분리된 생각, 두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나누어진 마음, 두 마음’을 가지면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여 물에 빠집니다. 진정한 믿음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한 마음’으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키시기를 바랍니다. 폭풍과 풍랑 가운데서도 더욱 철저히 예수님의 약속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히 12:2, 시 25:15).

 

왜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까?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만물의 창조자,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엡 1:21-22). 

여러분이 기도하고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기도하고 난 후에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약 1:6~8).

 

첫째, 주님만 바라보고 물 위를 걷기 원한다면 어려울 때도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담대해야 합니다(27절). 

 

예수님이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하시니 실패했어도, 물에 빠져도 내가 즉시 너를 붙들어 주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담대함을 가져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만났다 하더라도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요 16:33, 찬 406장).

 

둘째, 주님만 바라보고 물 위를 걷기 원한다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모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라>하시면 배에서 내리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기적을 체험하려면 배에서 나와야 합니다. 배에서 나오면 바다 위를 걸어 예수님께 걸어가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안전한 배 안에서>만 있기를 원합니다. 배 안에 있으면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지금 환난 중에 있다면, 거센 파도를 만났을 때 예수님만 바라보리라. 예수님만 의지하리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말씀대로 이제 살리라.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주님만 바라보고 물 위를 걷기 원한다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함을 믿어야 합니다. 

 

배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한 것(든든한 재정, 안정된 직장, 후원자)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결론

신앙은 도전입니다. 모험입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의 임재와 능력, 기적을 체험합니다.

 

능력을 체험하는 데는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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