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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경을 넓혀주소서! (역대상 4장 9~10절)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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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경을 넓혀주소서! (역대상 4장 9~10절)

정규식 목사(호남지방회 증경회장, 광립교회)

페이지 정보

24-11-28 09:57

본문

정규식 목사(호남 회계).jpg

오늘 본문은 유다 지파의 야베스라는 사람에 관한 말씀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또는 그가 어떻게, 얼마를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수고로이 낳았다는 사실과 자신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구절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구절과 그의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매우 불행한 환경 가운데 태어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야베스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여 낳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어려움이 가정적인 어려움이었는지, 혹은 나라가 어려웠을 때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무척 고통스러운 환경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6.25때 태어난 사람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때 임신한 어머니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짐을 챙겨들고 이리저리로 정처없이 피난을 다니다가 어디선가 아이를 출산해야 했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야베스의 탄생이 이와 같을지도 모릅니다. 야베스는 그의 이름처럼 고통의 아들로 불행하게 태어났고 고난 중에 많은 환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야베스를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존귀하다’는 말씀의 히브리 원어를 보면 ‘존경받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역대상 2장 55절을 보면 “야베스에 거한 서기관 족속 곧 디랏 족속과 시므앗 족속과 수갓 족속이니 이는 다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야베스’는 한 도시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야베스라는 사람은 보통 존경받는 인물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지금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도시나 거리나 공항의 이름으로 바꾸어 쓰는 예가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세종로, 충무로, 케네디공항, 드골공항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그가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구하시는 것을 허락하셨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야베스가 모든 고통과 불행을 이기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기도 때문입니다. 그의 기도가 그로 하여금 존귀한 자가 되도록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도가 하나님의 축복의 창고 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러한 사실을 진실로 믿는다고 하면 어찌 기도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혹, 기도를 한다 해도 간절함이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주시려면 주시고, 아니면 그만이고 오늘만 날인가요? 내일도 있는 날인데..”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적당히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생활을 소홀히 함으로써 받게 되는 손해가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의 사람들이 받은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야곱은 어찌 보면 야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 놓지 않겠다고 천사와 겨루며 환도뼈의 큰 힘줄이 끊어질 정도로 매달렸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문제를 자신의 방법으로, 자기 수단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적극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야곱이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이삭의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인간적으로 볼 때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기도했다’는 말이 성경에 없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 하나 때문에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서고,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국명도 야곱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이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이름입니까?

 

다니엘도 포로로 잡혀온 불행한 청소년이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비록 사자굴에 던져졌어도 기도로 사자 입을 봉하였습니다. 그 당시 다니엘이란 인물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유대를 침략한 적국의 최고 통치자인 느브갓네살왕이 포로로 잡혀온 소년 다니엘 앞에 엎드려 그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절을 하기까지 했겠습니까? 다니엘이 이처럼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도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릴 때 그의 기도와 정성이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지혜뿐만이 아니라 구하지 않는 부귀영화까지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대선지자 중에 대표적인 선지자인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그가 간절히 기도했더니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자 비가 내렸다고 했습니다. 유다의 역대 왕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부지런히 찾은 왕은 모두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라가 평안했고 전쟁에서 늘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기도하지 않은 왕은 모두가 다 실패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베스는 비록 고난 중에 태어났고, 환난 중에 자라난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응답받지 못한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약 4:2). 마태복음 7장 7~8절을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 아버지보다 하나님을 더 믿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 무슨 공로가 있어서 또는 남보다 뭐가 잘나서, 깨끗해서, 조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 81:10). 

기도의 사람들이 복을 받는 이유입니다.


첫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특별한 것들이 아닙니다. 밤낮 뭘 달라고 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늘 하나님을 귀찮게 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존귀하신 모습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원하시고 인간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심으로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람만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고, 얘기하기를 원하시며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사랑을 기대하십니다. 사실 일방적인 사랑은 재미가 없습니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로써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도가 은혜를 받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마치 사막에서 생수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심령이 사막과 같이 매말라 답답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은혜의 샘이 터져나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거룩해집니다. 순종의 사람이 되고, 감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죄인을 알아주시는 것도 감사하고, 나 같은 죄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도 감사하며, 어려움과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그동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가 흘러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마음의 소원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며, 삶의 목표가 달라지고,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됩니다. 주님 섬기는 일이 즐거워집니다. 야베스가 기도로 인생의 모든 불행을 극복하고, 한나의 기도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였듯이 여러분 중에 근심거리가 있는 가정은 기도함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의 사람이 된다고 하면 고난과 불행과 억울함이 주님 안에서 해결될 것입니다.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달라고 하는 그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성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넓혀가야 할 영역은 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넓혀가야 할 영역들입니다. 

1)사랑의 영역입니다.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지 말고 나와 먼 거리에 있는 사람까지 사랑하며,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만 사랑하지 말고,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며,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한다고 하면 사랑의 영역은 점점 넓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내가 대접을 해도 갚을 길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시지만, 대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접하면 자신이 다시 대접을 받기 때문에 하늘의 상급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 베풀려고 하면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2)교제의 영역입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떤 사람들과 만나십니까? 열왕기상 4장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넓은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지내다 보면 미운 사람도 있고, 내가 원치 않는 사람도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수를 좀 더 넓혀 교제의 폭을 점점 넓혀가시기 바랍니다. 

 

3)중보기도의 영역입니다. 중보기도의 대상을 넓혀갈수록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고 복을 나누어주는 영역이 넓어지게 됩니다. 저는 아침마다 기도할 때 멀리 서울에 계신 분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스페인과 캐나다에 계신 분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은 그분들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소식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정작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아침마다 기도했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그 사람과 실제로는 자주 못 만나지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축복을 나누는 영역이 넓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보기도의 영역을 넓혀가시길 바랍니다. 가족, 친척, 친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북한 동포와 해외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선교의 영역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재벌 가운데 캐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조지와 윌리엄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공부를 잘하여 유명한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큰 아들은 정계 진출했으나 작은 아들 윌리엄은 아버지에게 인도에 가서 선교사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가족들의 반대도 불구하고 인도로 떠났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일생이 다 끝난 후 영국 대백과 사전에 그들이 소개되었습니다. 큰 아들 조지에 대해서는 윌리엄 캐리의 형으로서 상원의원을 지냈다는 단 한 줄의 글귀 밖에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두 페이지나 가득히 적혀 있었습니다. 인도의 선교사로서 그의 아름다운 삶과 헌신적인 활동과 그의 업적과 구원받은 영혼들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살면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으로 선교의 영역을 넓혀나감으로 해서 우리 민족이 복을 받고,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복을 나누어주며 살다가 주님 앞에 영광스럽게 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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