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유 (출 17:8~16)
이중근 목사(대전동지방회장, 남대전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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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민족의 최고의 지도자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애굽의 최고의 무술을 연마하고, 최고의 학문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과도 친구처럼 친밀하게 마주보며 대화를 나눌 만큼 아무와도 비교할 수 없이 모든 것을 갖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경험적으로나 학문으로나 무술적인 면에서나 연령적으로나 모세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문은 남의 동네에 쳐들어가 가축이나 재산을 빼앗아오는 불량한 족속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것도 없고, 애굽 노예의 자녀로 태어나 배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마지막 지도자로 사용하시겠다는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아무리 세상적으로 부족하고 나약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무조건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뽑은 것이 아닙니다. 쓰임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대국 아말렉이 쳐들어 와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아말렉과 맞서 맹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피곤에 지쳐서 팔이 내려올 때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히고 하나는 모세의 오른쪽 팔을, 하나는 모세의 왼편 팔을 잡아 올렸습니다
그 결과 하루종일 모세의 기도의 팔이 내려오지 않아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후에 출애굽기 17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어 들리게 하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잘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요, 전략이 좋아서 이긴 것도 아니요, 용감해서 이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결정적인 원인은,오직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겼다는 사실을 여호수아의 가슴속에 머릿속에 새겨지도록 가르쳐 주라는 말씀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오직 기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가장 중요한 기도의 능력을 배웠던 것입니다. 위기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엎드려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세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기도의 사람이 되어 가나안을 정복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천천만만의 군사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고, 하나님의 힘으로 살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질 수가 없습니다.
역대하 16장 19절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기도하는 자를 찾고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셔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절대로 패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었기에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2절로 18절에 “모세가 그 수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만 율법과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도 함께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한 자와 성령의 체험을 경험한 자만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의 체험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체험하는 사람은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성령충만함의 복음, 병고침의 복음, 축복의 복음, 부활과 천국 소망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해서 여호수아와 같이 쓰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 보면, “모세는 진으로 돌아왔으나 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 할 만큼 하나님의 전을 사모했습니다. 회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장소인데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을만큼 여호와의 전을 사모했습니다.
시편 84편 1절로 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요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전을 너무나 사모한 나머지 육체가 쇠약해졌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여, 귀하게 쓰임 받아야만 합니다.
넷째로, 여호수아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8~9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한 그 백성을 두려워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열명의 정탐꾼들은 문제를 바라보고 원망 불평하다가 광야에서 모두 다 죽고 말았지만, 여호수아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문제를 밥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이기고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문제를 밥으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도 밥을 먹어야 힘을 얻고 성장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문제의 밥을 먹을 때 성장하고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떠한 태산 같은 문제가 가로막혀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 떨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문제를 이기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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