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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서 (요나 2장 1~4절)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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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서 (요나 2장 1~4절)

장동철 목사(전라지방회 증경회장, 여수능력교회)

페이지 정보

22-09-27 10:30

본문

장동철 목사.jpg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욘 2:1~4).


여러분!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나는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온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이야기는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많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람이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살아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처럼 이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자유주의신학을 가진 이들은 이와 같은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하여 요나의 물고기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고 이솝의 우화처럼 교훈을 주기 위하여 지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비유나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할 경우 항상 명시하거나 전체적인 문맥을 통하여 그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가공인물이 아니라 기원전 8세기경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왕하 14:25)입니다. 그러므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2019년 3월 8일 영국의 매체인 텔레그래프 TV에서 고래에게 먹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레이너 쉼프라는 사람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레이너 쉼프 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으로 바닷가에서 15년 동안 다이버로 활동해 온 인물입니다. 

 

레이너는 3월 2일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정어리 떼를 촬영하기 위해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고래 한 마리가 레이너를 집어삼킨 것입니다. 레이너를 집어삼킨 고래는 몸길이가 최대 14m에 이르는 브라이드고래였습니다. 브라이드고래는 정어리나 꽁치 같은 어류를 좋아하는데 이 고래가 먹잇감인 정어리 떼를 쫓다가 마침 정어리 촬영팀과 마주치면서 레이너를 집어삼킨 것입니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간 레이너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분명 빠져나갈 길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얼마 안 있다가 고래가 물을 뿜어낼 때 기적적으로 탈출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본 팀원인 하인즈는 “이것은 현대판 요나의 기적이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요나의 이야기는 가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물고기 뱃속에서”라고 정했다가 “막다른 골목에서”라고 바꾸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에게 물고기 뱃속은 “막다른 골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배에서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버렸습니다. 이것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고 인생이 끝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나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므로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했는지 본문에서 생각해봅시다.


첫째,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보세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하였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선지자로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요나서를 읽어보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기도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할 때도 기도하지 않고 도망을 쳤던 선지자입니다. 솔직히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니느웨로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괴롭히고 못살게 한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멸망을 받아야 될 사람들입니다. 요나의 말에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이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순종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때 요나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정말 가기 싫습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까? 하며 기도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나는 기도하지 않고 도망하였습니다.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고 도망가니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겠습니까? 그냥 두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지자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목사가 기도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교인들은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목사는 잠만 자고 기도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시키려고 혼을 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들어가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느 일을 하든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병을 얻었을 때 병원에서 어떤 병도 다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고치는 병도 있고 못 고치는 병도 있습니다.못 고치는 병은 인간의 한계 때문에 못 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막다른 골목에서” 

1)길을 뚫고 나가는 방법과 2)문을 열고 나가는 방법은 오직 기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고사성어 가운데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한마디로 일이 잘 안 풀릴 때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생겨난 유래는 이렇습니다. 중국 북쪽 변방에 ‘호’라는 오랑캐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지역 근처에 나이 많은 노인네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 노인이 키우고 있던 말이 오랑캐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말이 큰 재산이었던 시대에 말이 달아난 것은 큰 손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를 하자 그 노인네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더랍니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난 어느날 집을 나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명마 한 마리와 함께 돌아온 것입니다. 요즘말로 말하면 중형차 한 대를 잃어 버렸지만 나중에 중형차와 함께 고급차 한 대와 같이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말타기를 좋아하던 아들이 오랑캐의 명마를 타다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를 하니까 그 노인네는 이번에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더랍니다. 그리고 일년 쯤 지났을 때, 북방의 오랑캐들이 쳐 들어오는 바람에 그 동네 청년들이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 전쟁터에서 동네 청년들은 다 죽었는데 노인네의 아들만이 절름발이였기에 징집되지 않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막다른 골목길에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막다른 골목에서 기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요나는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요나는 막다른 골목에서 주의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4절). 

 

이 말씀에서 요나는 무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①먼저 “내가 주의 목전에 쫓겨났을지라도” 무슨 말입니까? 요나는 지금 자신의 신세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신세라고 고백합니다. 

②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하고있습니까?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부모님 생각을 먼저 한 것이 아닙니다. 

처, 자식 생각을 먼저 한 것이 아닙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의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왜요?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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