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청년목사, 예수의 복음 위해 열정으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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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교회가 있다 / 속리산 기슭에 자리잡은 상신순복음교회 (박은영 목사)
62년 교회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미자립
산골목회, 된다 안 된다 조바심 내지 말고 함께 같이 살아라
상신순복음교회는 청천면 장로교회에 다니던 한 집사가 거리가 멀어 더 이상 다니지 못하자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다움을 갖추기 시작해 20평 흙벽돌로 교회를 지었다.
그 사이 여러 교역자들이 지나갔다. 두메 산골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았다.
1983년 10월, 박은영 목사가 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교인 2명만 남아 교회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산골교회 선교사로 파송된 것이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철저한 자기 비움과 개척정신을 배웠다. 그때만 해도 40대라 한 번 해 보자는 야무진 각오로 순종했다.
박 목사는 아산 출신이다. 해군에 입대해 군생활을 했다. 시골생활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거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전기, 수도, 농기구 등 일체의 생활기술을 터득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밭으로, 산으로, 집으로 찾아가 함께 일하며 살아야 했다. 삶이 복음 전파다.
그 무렵 가난한 과부가 암 투명 중 교회를 건축하라며 땅을 기증했다. 열심히 일하며 목회했지만 현실은 고단했다. 청주까지 나갈 차비가 없을 정도로 경제적 궁핍은 심했다.
1989년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순복음교회를 떠나 영농교회를 새롭게 개척했다.
상신순복음교회는 1995년 정철주 목사가 부임해 1997년 12월 20일 지금의 자리에 적벽돌로 교회를 건축했다.
그러다 2006년 박은영 목사는 다시 상신순복음교회로 부임했다. 떠난 사이 교회는 새롭게 건축되었지만 목회환경은 여전히 열악했다.
교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성도가 남아 있는 한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다시 교회에 부임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박 목사는 상신순복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62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미자립교회다. 여느 산골교회가 그러하듯 성도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목회는 행복하다. 그 산골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교회는 건물, 성도의 수와 상관없이 교회로 존재한다.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박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며 양을 위해 그 자리에 있다.
복음은 삶이다
박 목사는 다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청주까지 나가야 하는데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마을에 귀촌한 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청주까지 운전해 줄 수 있느냐고, 흔쾌히 운전해 주었다. 작은 선물이지만 큰 변화다. 목사가 마을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박 목사는 “복음은 삶이다”고 말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화려한 이벤트보다 진솔하게 하나님이 원하는대로 사는 것이다. 아산 출신 목사가 지금까지 산골에서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 없다. 그냥 그곳에서 그 사람들과 같이 살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필요한 것은 다 여기서 배웠다. 교회 토목 일은 기본이요, 농사일도 필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장례를 20번 이상 집례했다. 예전에는 지게를 지고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처음 왔을 때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병원 생활 경험을 살려 일대를 다니며 의료봉사를 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들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했다.
못자리 목회로 족하다
한때 교사 없이 혼자서 20km를 다니면서 아이들을 실어 날렸다. 2010년 무렵에는 주일학교 50명, 중고등학교 20명, 장년 30명까지 부흥하기도 했다. 그때는 신나고 재미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이들은 도시로 떠났다. 지금은 아이들이 없다.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없다.
산골교회 목회가 힘든 것은 생명을 다해도 보이는 열매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은 고령화 되어 가는데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경제적 자립은 묘연하다.
다들 시골목회를 기피한다. 가장 큰 원인은 성장의 불투명성, 생활의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어짜피 목회는 고단한 짐을 지는 것이다”고 답한다. 시골교회가 된다. 안 된다 답을 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용기를 가지고 살라고 조언한다. 핍박과 곤고가 없는 목회가 어디 있는가? 반문하며 용기를 내어 같이 살라 한다.
자꾸만 결과를 내려고 하는 조바심을 버리지 못하면 시골목회는 못한다.
“산골교회는 못자리 교회입니다. 씨를 뿌린 것은 당장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지 못하지만 반드시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비록 열매를 따지 못해도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못자리교회에 충실하면 됩니다.”
산골목회를 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은 안고 산다. 교회 자체적으로 자립이 되지 않는 구조이기에 궁핍은 목회자의 십자가다. 그렇다고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을 위해 목회하면 필요한 양식은 하나님이 채워 주신다.
상신순복음교회는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 고향 교회 출신들이 필요한 재원을 공급해 주었다.
“하나님이 주신 양들을 사랑하고 돌보면 필요한 물질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님의 목회는 양입니다. 목회의 성공은 없습니다. 교회는 성령이 일하십니다.”
79세 목사, 100세까지 30세로 산다
박은영 목사는 올해 79세이다. 남들은 은퇴하고 쉼을 누리고 있지만 아직 청년이다. 교회 주변을 꽃으로 단장했다. 예쁜 자전거도 만들었다.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즐거움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작은 변화지만 행복 바이러스가 된다.
산골은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가곡을 배우고 있다. 감성을 움직이는데 음악만한 것이 없다. 마을회관에서 ‘열린 행복음악회’를 하고 싶다.
박 목사는 30세 청년으로 산다. 청년처럼 생각하고, 청년처럼 행동한다. 나이를 의식하다보면 모든 것이 나른해지고 늙어진다. 안 그래도 요즘 여기저기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 굴복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직은 아니다. 교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교회 마당에 전도차가 있다. 노방전도를 위해 한 권사와 집사가 감동을 받아 기증해 준 것이다. 한때는 그 차를 몰고 청주 무심천에서 노방전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거리 노방전도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전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새로운 전도전략이 필요하다.
박 목사의 비전은 100세까지 살면서 1만 명에게 전도하는 것이다. 또한 통일기도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교회 승합차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행복하고 멋진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더 살면 예수의 복음을 한 번 더 전할 수 있습니다. 빨리 늙지 마세요.”
79세 청년목사 박은영, 오늘도 청바지를 입고 예수의 복음을 위해 산골교회를 지키고 있다.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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